어느 시점부터 언론이 대학을 평가하고 있다. 언론사 대학평가가 수험생, 학부모에게 영향을 주면서 대학도 언론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중앙일보가 대학평가로 꽤나 재미를 보자 다른 신문사도 줄지어 대학평가에 뛰어들었다. 고함20도 염치없이 이 축제에 밥숟가락 하나 올리고자 한다.

 
다만 논문인용지수, 평판, 재정상황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방법은 거부한다. 조금 더 주관적이지만 더 학생친화적인 방법으로 대학을 평가하려 한다. 강의실에선 우리가 평가받는 입장이지만 이젠 우리가 A부터 F학점으로 대학을 평가할 계획이다. 비록 고함20에게 A학점을 받는다고 해도 학보사가 대서특필 한다든가 F학점을 받는다고 해도 ‘훌리건’이 평가항목에 이의를 제기하는 촌극은 없겠지만, 고함20의 대학평가가 많은 사람에게 하나의 일침이 되길 기대한다. 

정글을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이라는 정글 사회의 정의(正義)는 정글에서 생활하는 짐승을 지배한다. 그런데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사바나를 벗어나 하필이면 한국의 대학에까지 안착했다. 대학은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이라는 법칙을 돌파하기 위한 마약(痲藥)을 들고 나왔다. 약품명은 ‘학과 구조조정’, 대학평가에서 다룰 5번째 주제다. 이번 평가는 각 학교의 학과 구조조정 진행과정에 있어, 얼마나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평가했다. 아무리 짐승의 법을 따른다지만, ‘대학(大學)’이라는 체면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지가 평가의 기준이다.
B-학점 / “기말 잘 보면 뭐하니, 중간을 죽 썼는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고려대
고려대는 올해 4월부터 학과 구조조정을 준비했다. 그 결과물은 정보통신대학 단과대학을 ‘소프트웨어대학’으로 개명하고 정보통신대학 소속의 컴퓨터‧통신공학부를 소프트웨어 학과로 변경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안이었다. 학교 당국은 이를 6월 20일 이사회에 상정하여 의결하려 했으나, 상정 직전에 학생사회에 공개됐다. 학생의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구조조정안에 해당 학부 학생들은 19일 즉각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고려대 당국이 교무위원회를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원안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학생사회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원안을 중단한 것은 분명 기쁘게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본래 그렇게 진행되었어야 했다. 2005년 개정된 사립학교법에 따라 사립대는 학교의 업무를 교수, 교직원과 더불어 학생단위가 참여하여 민주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고려대 당국은 이를 무시한 채, 지금까지 철옹성처럼 꿋꿋하게 버텨왔다. 이사회 상정 직전까지 학생사회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았다. 학생사회가 반발하니 ‘원점 재검토’하겠다고 물러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D학점 / “말 좀 들어… 제발” 
한번 폐과했는데 두 번 못할 건 없지, 경남대
재작년에 왔던 구조조정이라는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경남대 철학과를 찾아왔다. 6월 21일 경남대 당국은 대학평의원회를 열고 철학과 폐지를 포함하는 구조조정안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2011년 경남대 당국은 사회학과와 철학과를 폐과 조치했으나, 학교 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반발한 학생사회와 교수진들의 의견으로 중단한 바 있다. 하지만 경남대는 자체적인 평가를 지속했고, 그 결과 올해 다시 한 번 철학과 폐지가 결정됐다.
경남대는 2013년 교육역량강화 평가 1위에 선정됐다. 1년 동안 38억 원의 지원금도 받는다. 또 대학교육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경남대의 적립금 순위는 전국 15위에 달한다. 돈 많고, ‘잘 나가는’ 학교가 학과 구조조정은 ‘벤뎅이 소갈딱지’보다 작은 심보를 가지고 진행한다. 경남대는 6월 19일 구조조정위원회를 열어 철학과 폐과를 확정하고, 곧바로 21일 대학평의원회을 개최해 최종확정 지었다. 당시 철학과 학생 측은 대학 당국과의 대화를 통한 해결을 위해 경남대 학생 3,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하고 회의에서 의견을 개진하려 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철학과 학생대표가 참여하기 전에 문을 걸어 잠그고서 회의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밀실회의 끝에 기획조정처장은 “불가피한 결정”을 학생들이 알아서 받아드리라는 것뿐이었다.
허울만 좋은 구조조정 설명회, 조선대
작년 10월 서재홍 총장이 취임한 이후 조선대는 곧바로 정글에서 살아남겠다고 발버둥을 쳤다.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교직원 및 일부 교수와 논의하여 만들었다고 홍보해온 구조조정안을 지난 5월 발표했다. 구조조정안은 15개 학과를 8개로 통‧폐합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7개 학과의 정원을 10% 감축하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도 밝혔다. 여기서 멈출 수 없었는지 매년 자체 학과평가를 시행하여 지속해서 정원을 감축하고, 2번 연속으로 하위 10%로 속하는 학과는 폐지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학과 간의 경쟁을 반복하게 만들고, 대학은 이를 앉아서 평가하겠다는 ‘베짱이 심보’이다.
조선대는 구조조정안을 최종적으로 의결하기 전까지 수차례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교직원과 교수를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를 진행했고, 간담회와 공청회도 열어 학내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단위가 빠져있다. 정작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학과 학생들과의 의견교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로벌법학과 학생들에게 ‘구조조정 설명회’ 전날 저녁에 일괄 문자로 통보한 것이 고작이었다. 학생사회를 배제한 설명회, 공청회, 간담회 모두 이름만 좋고 허울만 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빈껍데기 같은 것이다.
형식만 있는, 형식만을 위한 설명회, 동아대
동아대는 2학기 개강일에 맞추어 ‘2015년 학제개편 기본계획안’을 공개했다. 학력인구 감소에 대비하고 경쟁력을 강화 등의 목적에서였다. 2011년에는 무용학과를 폐과하고, 올해 초에는 51년 전통의 축구부를 사실상 폐지한 동아대는 연이어 학과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학제개편 기본계획안’의 주요 내용은 예술체육대학과 인문과학대학, 생명자원과학대학의 학과는 줄이는 반면, 건강과학대학, 디자인환경대학, 글로벌비즈니스 대학을 신설하는 것이다. 동아대는 이번 학과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위해 6월과 7월에 각각 총학생회와 단대 학생회에 설명회를 했다며 사전에 학생들과 의견을 교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아대 역시 학과구조조정의 당사자인 학과 학생들과의 의견교류는 전무했다. 동아대 구조조정 비상대책위원회 측의 설명에 따르면, 동아대 당국이 주최한 구조조정 설명회는 형식만을 위한, 형식만 있는 자리였다. 이미 결정된 구조조정안을 학생들을 모아두고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설명회에서 대학발전추진기획단은 “계획의 90% 이상이 이미 완성되었으니 학과 구성원인 교수와 학생들은 나머지 10% 그림을 그려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설명회는 학생들이 학교를 비우는 방학기간에 열렸다. 그렇게 ‘어물쩍’ 설명회라는 구실을 만든 동아대 측은 9월 초 개강 시점에 구조조정안을 확정해서 발표했고, 곧바로 16일 대학평의원회에서 이를 통과시켰다. 이후에도 비상대책위원회는 학과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 등과 연계하여 학교 당국에 의견을 전달하고 있지만 수렴되고 있지는 않다.

ⓒ 동아대 비상대책위원회 페이스북계정
F학점 / “재수강해라”
누가 뭐라든 난 내 갈길 가련다, 한남대‧중앙대
대학평의원회는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모든 사립대에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개정안은 학교의 계획안이나 학칙 개정, 예산 편성을 하기에 앞서 대학평의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권고한다. 대학평의원회는 교직원과 교수, 그리고 학생단위의 대표자로 구성된 11명이 심의에 참여하기 때문에 대학의 ‘민주적 운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중앙대와 한남대의 사례에서 간단히 짓밟힌다.
한남대는 5월 28일 교무위원회에서 철학과 폐과 조치를 결정한다. 하지만 6월 4일 대학평의원회의 구성원 11명 중 9명이 교무위원회의 일방적인 폐과 조치에 반대했다. 구조조정안을 부결한 것이다. 그런 한남대 당국은 대학평의원회의 부결 결정에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교무위원회에서 결정된 사안을 그대로 추진했다. 중앙대도 마찬가지다. 중앙대는 6월 14일 이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학과 집중 육성’을 이유로 비교민속학과, 아동복지학과, 가족복지학과, 청소년복지학과의 폐지를 결정했다. 이사회의 결정에 대학평의원회는 구조조정안이 학내 구성원의 의견 수렴 절차 없이 비민주적으로 진행됐다면서 심의를 보류했다. 하지만 중앙대 당국은 구조조정안을 강행했다.
특히 중앙대는 2010년 학생사회와 교수진의 의견을 무시한 채 77개 학과를 46개 학과로 ‘통 큰’ 구조조정을 진행한 바 있다. 2011년에는 가정교육학과가 중앙대의 폐과 결정에 따라 사라졌다. 학생사회는 지속해서 이에 반대했으나 중앙대 당국은 이런 목소리를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지난 구조조정 때 반대의견을 개진했던 총학생회 학생은 무기정학의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번 역시 중앙대는 ‘비민주적 의사 결정’이라는 비판에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매년 학과 구조조정이 ‘장미칼’이라도 되는 듯이 학과를 도려내고 있다. 

ⓒ 고함20
 
학교는 학과 구조조정이 정글의 법칙에서 살아남기 위한 해결책인양 말한다. 학내인구 감소, 학교의 재정 위기, ‘부실대학 선정’의 위기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학교는 학과 구조조정이라는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학교 측의 설명에 따르면 학과 구조조정은 대학의 만병통치약, 신비의 묘약(妙藥)쯤 되는 것 같다. 학과구조조정이라는 ‘약’의 효력이 그렇게 신통방통하다면 학생들과의 의견교류를 통해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애초부터 해당 학과 학생들을 포함한 학생사회와 적극적인 의견을 교류하여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대학은 없다. 약장수조차 약이 못미더운지, 무슨 약인지 설명도 못하는데 일단 먹어나 보자고 들이대고 있다. 애초에 환자인지조차 불명확한데 약을 억지로 복용한 사람들은 모두 복통과 두통을 호소하고 있다. ‘약빨’이 ‘0’에 수렴하는 학과구조조정은 약이 아니라 약장수가 속여 파는 불량품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