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TV업다운은 고함20 기자들의 날카로운 눈으로 지난 한 주간 방영된 TV프로그램을 비평하는 연재입니다. 재밌고, 참신하고, 감각 있는 프로그램에겐 UP을, 재미없고, 지루하고, 편향적인 프로그램에겐 DOWN을 날립니다. 공중파부터 케이블까지, 예능부터 다큐멘터리까지 장르와 채널에 구애받지 않는 무자비한 칭찬과 비판을 하겠습니다.

[이번주 UP]  tvN <섬마을 쌤> (10월 9일 방송분)

 
조금 오글거려도 괜찮은 이유

네명의 섬마을 쌤. 왼쪽부터 샘 오취리, 샘 해밍턴, 브래드, 아비가일. ⓒtvN

어린이들은 마법과도 같다. ‘쎈’ 예능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풀이 죽은 프로그램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면 최고의 시청률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위험하지는 않다. 억지 웃음, 연예인의 사생활 팔이 보다 자연스럽게 시청자를 집중하게 하는 힘이 어린이에게는 있다. 일단 보게 만드는 데에 성공하면, 다음은 그들의 ‘매력 발산’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흥행이 좌우된다.

여기 또 다른 유소년(?) 중심의 예능이 있다. 지난 9일 종영한 tvN의 <섬마을 쌤> 이다. 샘 해밍턴, 아비가일, 브래드, 샘 오취리 까지 ‘한국 사람 다 된 외국인’ 네명이 섬마을 분교로 출근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물론 담당과목은 영어다. 이들은 나흘간 마을에 머물며 아이들, 마을주민들과 어울린다. 마지막 화에서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발표회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잔디밭에서 어린이들은 선생님들과 함께 영어 노래와 율동을 선보였다.

이쯤되면 웃음의 요소가 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자극이 없다. 배경은 섬마을 ‘호도’의 분교. 아이들은 많지 않고, 화면 역시 고즈넉하다. 물론 큰 웃음의 연쇄작용은 여타 예능에 비해 확연히 적지만, 그것을 상쇄하는 힘은 선생님들에게 있다. 영어 울렁증이 있는 샘 해밍턴, 뭐든지 잘 먹는 샘 오취리, 귀여운 매력의 아비가일, 샘 해밍턴이 경계할 정도로 뛰어난 예능감을 보이는 ‘버스커버스커’ 브래드까지. 네 명의 외국인 선생님들은 현지인 못지않게 섬마을에 녹아드는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국에서 지내온 일상과 학생들에게 갖는 애정의 시너지다.

<섬마을 쌤>은 분명 훈훈하다. 누군가에겐 ‘오글거림’으로 다가올수도 있겠다. 그러나 장면의 어딘가에서 사람을 찡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넓은 마루에 할머니와 선생님들이 함께 저녁을 먹는 장면에서, 그들이 떠난 뒤 텅 빈 밥상이 떠올려지는 부분이 그렇다. 아이들이 섬마을 선생님들이 떠날 때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부분 역시 그렇다. 특히 선생님들이 평생 자신의 이름을 읽지 못했던 할머니께 한글이름 쓰는 법을 알려주는 장면은 총 회차를 통틀어 꼽을만한 명장면 이었다. 애청자들은 정규 편성을 요청하고 있다.

관전 포인트 : 게장 다리 한쪽을 손에 들고 출근하는 샘 해밍턴. 이들의 엄청난 한국음식욕(!)을 보라.

[이번주 DOWN]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10월 9일 방송분)
 
이 연사, 그의 혼외아들설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지겹도록 깐다. 지난 9일 방영된 TV조선의 <돌아온 저격수다> 얘기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한달여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핫이슈’를 캐왔다. 9일 방영분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막판 굳히기를 시전한다. 혼외아들 이라는 단어의 선정성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사퇴해야만 하는 인물임을 동시에 지적하는 것이다.


<돌아온 저격수다> 캡쳐화면. ⓒTV조선

‘노는 정치’의 흐름은 이제 미디어를 삼켰다. 시사이슈 프로그램은 더 이상 무겁지 않다. ‘멍석’만 깔리면 누구든 정치평론가가 된다. <돌아온 저격수다>또한 예의 그 ‘쿨’한 발화 형식을 선택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시사 전반의 쟁점을 꼬집고, 재밌는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목표달성은 순조로울까? 이 프로그램은 평일동안 쭉 방송된다. 시청자를 휘어잡을 헤드라인을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표제에 집중하기 위해 다양한 이슈를 다룰 기회는 버려지는 듯 하다. 지난 한 달여간 <돌아온 저격수다>는 하루에 크게 두 가지의 이슈를 다뤄왔다. 채 전 총장 사건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된다. ‘후폭풍’, ‘진실’, ‘의혹’ 등 회차마다 붙는 수식어도 다양하다. 패널들은 특히 9일 방영분에서 오지랖 넓게도 ‘가장’으로서 채 전 총장의 위치를 재정의한다. 아버지로서의 의무와 도리를 강조하며 채 전 총장을 비난하기도 한다. 흡사 웅변대회를 보는 듯한 장면들이다.

또한 패널들이 시종일관 사용하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알려졌다” 등 ‘마법의 치트키’는 아무 근거가 없다. 모두 ‘어떤’, ‘어느’, ‘소문’과 같은 추상적 수식일 뿐이다. 사안의 선정성에 기대 편견을 조장하는 발언들도 아무런 정제없이 방송된다. “채 군이 다녔다는 학교의 학부모들은 수준이 높다”와 같은 발언이 대표적이다. 단어 또한 자극적이다. ‘결손가정’, ‘제왕절개’ 등 지적할 부분은 말 그대로 양파껍질처럼 나온다. 약 한시간의 방송시간동안 ‘시사이슈’ 프로그램을 채우는 것은 좋게말해 추측과 단정, 솔직히는 ‘막말’에 가깝다. 

이들은 채 전 총장의 뒷면을 까발린 데 자부심을 갖는 듯 하다. 9일 방영분을 반 정도 보고있으면, 패널들이 해당 내용을 보도한 자사를 합리화하는 것인지, 채 전 총장의 의혹에 대한 논평을 하는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조선일보와 법무부, 그것을 ‘감독’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호막’을 씌우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하나의 거대한 변호인단인 셈이다.

이들의 발언에서 파악할 수 있는 명분 역시 사생활의 차원에서 그쳐야할 부분들이다. ‘밝은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는 패널들의 주제의식은 언론이 채 전 총장 의혹을 국민감정 호소에 이용함을 역설한다. 사생활은 어떻게 ‘대한민국의 미래’와 연결되는가? 제작진과 패널들은 공직자의 사생활 역시 공공소유물로 인식한다. 부정(父情)을 강요하며 확실치 않은 혼외아들의 조기유학을 걱정하는 것이 법대를 졸업한 패널의 논리인가? 이들은 채 전 총장의 가족사까지 드러내는 치졸함을 보인다. 실로 대단한 그물치기다. 패널들의 말대로라면 채 전 총장과 검찰당국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수다의 멋이 사라지는 순간은 그것이 주장을 지나 강요로 덧칠될 때다. 시청자는 패널들이 그린 추상화 속에서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돌아온 저격수다>의 제작진의 다음 ‘떡밥’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관전포인트 :  음이탈까지 내가며 채 전 총장을 비난하는 패널들. 기승전은 없다. 오로지 ‘결’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