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음표에서는 ‘한 명의 20대로서 살아가는’ 고함20 기자들의 삶 속에, 한순간 운명처럼 다가온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밀어주세요.”
 
어떤 머리로 해줄까 물어보는 미용실 아줌마의 물음에 빠르고 크게 대답했다. 면도기 소리가 지지직 나면서 검은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졌다. 누구는 눈물도 흘리고 온갖 감상에 젖어든다고 하지만,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머리를 감고 난 뒤 멋쩍은 듯 까슬까슬한 머리를 만지며 미용실을 나왔다. 그리고 한동안 보지 못하게 될 우리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5월이었지만 밤이라 머리가 서늘했다.
집에 와서 알 수 없는 피로감에 곯아떨어졌고, 일어나보니 벌써 이른 아침이었다. 마침 그 날은 생애 한 번 맞는 ‘성년의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년이 뭔 소용이랴. 나는 논산훈련소에 가야 했다. ‘터벅터벅’ 집을 나와서 부모님 승용차에 탔다. 차가 서울톨게이트를 지나가는 걸 보면서 두려움 대신 체념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래 가야지,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 다 망해버리면 좋겠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책을 보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간간히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았던 것을 제외하곤, 차 안에선 이어폰을 귀에 낀 채 음악만 들으며 상념에 잠겼다. 잘 버텨낼 수 있을까, 2년은 언제 가려나, 어느 부대로 가게 될까, 내가 군대 가는 걸 섭섭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마골피의 비행소녀였다.
“내가 가는 길이 너무나도 힘든 이별의 길이지만 후회하지 않고 웃으면서 떠나가죠 (…) 안녕 추억 안녕 너무나 눈물이 나요. 영원히 그댈 사랑해요 안녕”

       마골피는 ‘비행소녀’이후 5년 동안 가수 활동을 중단했다가, 2012년에서야 한 장의 싱글앨범을 냈다. 
 
비행소녀’는 최근 보이스 코리아 키즈 참가자인 박예은 양이 부르면서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누구나 떠나야할 때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내가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노래였다. 가사처럼 나 역시 이 노래의 후렴구를 입술로 되뇌었다. 상투적이었지만, 그게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을 울렸다. 익숙했고, 사랑했던 것들과의 작별을 나누는 비행소녀처럼, 나 역시 그래야 하니까.
내 또래의 남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가득 찬 식당에서 아무 맛도 안 느껴지는 갈비탕을 먹고, 짝사랑하던 여자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딱히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잘 있어라, 휴가 나오면 보자”라고 말하니, 여자애는 “잘 지내”라고 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별말이 아니었지만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입소대대 운동장이 ‘잘 헤어지기 위해’ 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때서야 군대를 가는 것이 실감이 났다. 이젠 정말 ‘안녕’이었다.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운동장에 내려가서 집합을 했다. 간단한 입영행사가 끝난 뒤, 나를 포함해 이제 막 군인이 된 이들은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는, 이미 울음바다가 돼버린 운동장 스탠드 쪽으로 손을 흔들며 부대 안으로 걸어갔다. “낯설은 도시는 사실 많이 두렵지만, 저기 어딘가에 내가 아는 사람 손 흔들고 있을까 마지막에 인사를 해요”
아직도 마골피의 ‘비행소녀’를 들으면 막 입대를 앞두고 있던 그 순간들이 생생히 떠오른다. 수많은 이별이 이뤄지는 곳에서, 그 이별의 당사자가 나라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했던 안타까운 마음이 이 노래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예비군 4년 차인 지금, 이제 군대를 가는 동생들, 늦깎이 군대에 가는 친구들을 보면 “금방 끝나, 군대 별거 아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청춘의 한복판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속해있던 집단과의 이별을 고한다는 게 어쩌면 군대 생활보다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안녕, 추억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