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넓은 화면과 음향 시스템이라니, 제 영화가 엉망일지언정 영화관 탓은 못하겠군요!”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지안프랑코 로시는 너스레를 떨며 겸손하게 자신의 영화 상영 소감을 전했다. 로시 감독의 영화 <성스러운 도로(Sacro GRA)>는 다큐멘터리 최초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대됐다. 그는 지난 9일 GV(관객과의 대화)에서 부산 센텀시티 내 영화관 시설을 언급하며 연신 감탄했다.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지난 12일 폐막작 ‘만찬’(김동현 감독)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18년의 명성에 걸맞게 70개국 301개 영화가 부산 해운대 앞바다부터 남포동 부산극장까지 총 35개 상영관에서 상영됐다. 지안프랑코 로시 감독의 말처럼 상영관의 시설은 그야말로 ‘훌륭’ 했다. 마치 이를 증명하려는 듯 영화 <더 엑스>는 세계 최초로 기존 스크린 1면과 좌우 양옆의 스크린 2면을 이어 붙여 상영하는 ‘스크린X’ 기법을 염두에 두고 제작돼 관객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중구 남포동에 위치한 대영시네마에서는 영화제 영화가 아닌 일반 개봉작을 상영하고 있었다. ⓒ 고함20


부산극장은 1934년 부산 최초로 영화가 상영된 극장이다. 1950년부터 1년간 임시국회로 사용된 적도 있다. 지금은 메가박스에 편입돼 운영되고 있다. ⓒ고함20

 
나날이 기술의 진보와 세련을 거듭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1996년,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제1회 개막식을 진행했다. 2002년까지의 출품작들은 부산극장, 대영극장 등 중구 남포동 내 유서 깊은 영화관에서 상영됐다. 외연을 확장한 영화제는 2002년부터 출품작들을 남포동과 해운대로 분리해 상영한다. 그러던 중 2011년, 해운대 영화의전당이 건립되면서 영화 상영 및 크고 작은 행사 전반을 해운대로 옮기게 된다. 아직도 작은 규모이나 남포동 BIFF 거리에는 영화제 관련 행사가 진행되고, 부산 최초의 영화관인 부산극장에서는 영화제 출품작들을 상영한다.


부산을 찾은 관객들 그리고 남포동-해운대 간에 부산국제영화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1999년부터 2010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징적 존재였던 요트경기장 내 시네마테크는 내년 철거된다. 올해 남포동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부산극장만 영화제 영화들을 상영했다. 그것도 영화제 기간인 3일부터 12일 열흘 중 4일부터 6일 3일간 26편의 영화만을 상영하고 그쳤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중심 거점이었던 남포동에 대한 ‘예우’나 ‘전통’이라기보다는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에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관객들은 ‘부산’영화제가 아닌 ‘해운대’영화제로 전락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로부터 한참 멀어져 있었다. 

남포동 부산극장은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된 해운대, 센텀시티 멀티플렉스 극장들에 비해 많이 낡은 것도 사실이다. 해운대에서 남포동으로 이동하려면 30분에서 1시간까지 소요돼, 지리적으로도 불편하다. 그렇기에 영화제의 가능성과 상업성을 위해 남포동의 부족한 역량을 해운대로 집중시켜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부산영화제 자체를 키워 아시아 ‘창조경제’의 대표적 사례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눈에 띈다. 이는 예술에 상업성이 필연적인 첨가물이 된 지금,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반론이다. 우리는 바야흐로 여기까지 왔다.

안타깝지만, 오랜 영화관들이 문을 닫거나 외면받고 있는 이 시점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은 그리 많지 않다. 예술은 어떻게 상업을 입고도 그 나름의 정체성과 색깔을 유지할 수 있는가. 18해를 보낸 부산국제영화제는 ‘눈부시게’ 성장해가고 있다. 하지만 빠른 확장만큼 무거운 신중함 또한 필요하다. 

‘아시아 영화의 창’이 되겠다고 선언한 부산국제영화제 앞에 조금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18년 치 숙제가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