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이마트에서 일할 때였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트 냉동기 창고에서 보수작업을 하던 20대 청년이 숨졌다는 이야기를 신문을 통해 접했다. 마스크와 같은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이 이유였다. 청년이 일하던 곳이 내가 일하는 마트 지점과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다음 날이었다. 사건이 있는 직후, 아침 조회 시간에서 점장이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말고 조용히 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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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한 사람의 죽음은 회사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성가신 일에 불과했다. 하청업체의 부주의한 실수일 뿐 자신들과는 관련 없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마트 주변은 온통 피켓을 든 유가족들의 울부짖음과 그것을 찍기 위해 온 몇몇 방송사로 들끓었지만 유독 매장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마치 금기어라도 된 듯 누구 하나 밖에서 일어나는 엄연한 사실을 입에 올리는 이는 없었다. 철저히 억압된 침묵이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매장 공기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마트는 대표적인 신세계 계열 기업으로, 삼성으로부터 분리된 지는 꽤 되었다. 그러나 범(凡)삼성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노조에 대해서 같은 대응방식을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 삼성 노조 무력화 문건이 심상정 의원에 의해 폭로됐다. 그동안 의혹만 불거져오던 삼성의 불법적인 노조 탄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문건이어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문건은 노조 설립과 관련된 ‘문제 직원’의 개인 취향, 자산 현황 등 사찰 내용은 물론이고 노조가 설립됐을 경우 대응 지침도 포함되어 있다. 심 의원은 실제 이 문건에서 나타난 전략이 실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에버랜드 노조가 사측의 대응으로 무력화된 사례가 문건에서 ‘모범사례’로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에 대해 “우리가 작성한 문건이 맞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조직 문화에 관해 토론하기 위한 단순한 자료일 뿐, ‘노조 와해용’은 아니며 문건 내용대로 실행된 경우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심상정 의원은 “문건을 보면 ‘노조 와해’, ‘조기 와해’, ‘고사화’와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심상정 의원의 삼성 노조 탄압 문건이 폭로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삼성은 어떠한 공식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심상정 의원 말대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 빼고 다 바꾸겠다’고 말했지만 ‘노동자’와 관련된 문제에선 어떤 개혁도 하지 않은 채 경영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 대응 방식으로 ‘침묵’은 가장 좋은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는 노동 환경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타 업종 여성 종사자들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자연유산을 많이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반도체 노동자와 관련된 환경적 문제가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 중 사망자는 79명을 웃돌며 이 중 삼성 출신은 69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삼성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산재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사과 또한 하지 않고 있다.

지금껏 그래 왔듯이 이번에 드러난 노조 탄압 문건에 대해서도 삼성은 계속해서 ‘침묵’이라는 무기를 쓸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침묵 뒤에 숨어있는 ‘조용한 탄압’이 삼성의 침묵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번에도 삼성은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