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음표에서는 ‘한 명의 20대로서 살아가는’ 고함20 기자들의 삶 속에, 한순간 운명처럼 다가온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네 언니 입술 부르튼 것 좀 봐. 스트레스가 심했나 봐.”

아빠의 말은 동생을 향하고 있었지만 걱정스런 눈빛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2010년 겨울, 나는 그 해의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있었다. 나는 세 번째 수능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성적표는 나오지 않았지만 가채점 결과로, 무엇보다도 직감적으로 ‘망했다’는 걸 느꼈다.

죽음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루 종일 잠을 자도 입술의 물집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밤, 잠이 오지 않아 텔레비전을 켰다. 마침 TV에서는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인디밴드가 2집 앨범 졸업의 신곡 ‘울지 마’를 공연하고 있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울지 마. 네가 울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작은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세상이 원래 그런 거라는 말은 할 수가 없고 아니라고 하면 왜 거짓말 같지.”  




노래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21살의 나는 일찌감치 세상이 원래 그런 거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22살을 맞고 있었다. 예쁜 옷을 사고 싶으면 엄마에게 조르면 됐고, 조금만 노력하면 성적도 올릴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었던 세상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함께 끝나버렸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한 대학을, 세상은 끝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지독하리만치 잘 알고 있던 나에게, 노랫말은 차마 그 말만은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니라는 거짓말은 하지 못한다고 했다. 너무도 솔직하고 진실된 위로였다. 수능이 끝난 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잘 될 거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텅 빈 그 말들. ‘그건 말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 공허한 위로에 미래를 기대했고, 그랬기에 다음 날 눈을 떴다.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가슴 아파하는지, 그 눈물을 참아내는 건 너의 몫이 아닌데, 왜 네가 하지도 않은 일들에 사과해야 하는지, 약한 사람은 왜 더.”

이미 1년의 수험 생활 동안 완벽히 혼자라는 고독에 익숙했던 터였다. 무엇이든 혼자 견뎌내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눈물을 참아내는 건 너의 몫이 아니라고 ‘누군가’가 속삭이고 있었다. 약한 사람이 왜 더 아파해야 하는지 공감해주었다.

그때서야 내가 흘린 눈물들을 곁에서 지켜봐 주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함께 맥주를 마셔준 친구, 같이 욕해준 친구, 가족들은 널 사랑한다고 했던 아빠, 같이 밥 먹고 돌아서는 네 뒷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 마음 아팠다고 말해준 친구. 물론 그 사람들이 내 심정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함께 아파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처음 삼수를 시작할 때의 상황도 떠올랐다. 가고 싶었던 대학에 도전하기 위해 시작했던 반수가 실패했고, 학교는 실패를 용납지 않았다. 분명 잘못하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그 동안 나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다. 그 동안 마음 한 구석에 웅크려 있던 원망도 그제야 뛰쳐나올 수 있었다.

그로부터 4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시간은 흐를수록 기억들을 지워갔다. 지워진 기억들만큼이나 그 때의 감정들도 어디론가 휩쓸려 갔다. 이제는 ‘울지 마’를 다시 들으며 울지 않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세상에 지쳐 울고 있을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울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