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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이 비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학과구조조정을 추진하자, 대학평의원회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대학들은 대부분 학과를 통폐합하는 결정을 하면서 학생들의 의견을 일절 수렴하지 않고 결정한다. 그리고는 이를 학생들에게 강요해왔다. 이에 학생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절차의 필요성과 당위를 주장했고, 대학평의원회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구로 거론됐다. 최근 고려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대학평의원회 구성을 학교 측에 요구한 바 있다. 



대학평의원회는 2005년 개정된 사립학교법에 의해 사립학교에 설치하게 되어있다. 사립학교법 26조는 대학평의원회가 대학의 발전계획, 학칙 개정, 교육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는 기구이고, 대학헌장의 제‧개정과 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자문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설명한다. 또한 대학평의원회는 예산안을 자문하는 기구의 역할도 가진다. 무엇보다 대학평의원회가 절차정 민주성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그 구성에 있다. 대학평의원회는 교직원과 교수뿐 아니라 학생들도 그 구성원으로서 참여하도록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심의와 자문기구인 대학평의원회의 설치가 사립학교에 의무화되자 크게 두 가지 의견이 대두했다. 대학평의원회가 원활한 학교 운영을 방해하는 요소라는 의견과 학내 운영의 민주성 확보를 위해 설치 의무화를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자는 보통 대학 총장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지난 2월 전국 대학 총장 간담회에서 대학평의원회에 대한 총장들의 부정적인 의견은 육성을 통해 구체화됐다. 김영길 한동대 총장은 “교무회의의 상급기구인 양 의결사항을 반려하기 일쑤”라며 대학평의원회가 학교 운영에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한 총장은 대학평의원회의 역할을 ‘심의기구’가 아니라 ‘자문기구’로 격하해야 한다는 의견도 표출했다.



한편 후자는 학교 운영에 의견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았던 학생들에게 대학평의원회는 제도적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보호해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하는 입장이다. 이는 최근 서울에 소재한 대학 중 대학평의원회가 설치되지 않은 대학 총학생회들의 주장을 통해 육화됐다. 대학평의원회 설치를 위해 연세대 학생들로 구성된 ‘2013 연세대학교 대학평의원회 세움단’은 대학의 정책과 운영을 학교 당국과 이사회에서만 논의하고 결정해,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비판했다. 세움단은 지난 9월부터 주요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연세대 백양로 사태 역시 대학평의원회의 부재로 문제가 심화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대학평의원회가 과연 ‘심의기구’로써 대학운영에 적절하게 참여하고 있는지, 또 대학평의원회 설치가 의무화된 취지처럼 학생들의 의견이 학내 운영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학평의원회에 대한 이와 같은 두 가지 의문은 근래에 벌어진 학과구조조정에서, 대학평의원회가 자리하는 위치와 역할을 상기해볼 때 필요한 작업이다.



먼저 대학평의원회의 구성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다. 대학평의원회는 사립학교법 시행령에 따라 최소 11명 이상의 평의원으로 구성되며, “교원·직원 및 학생 중에서 각각의 구성단위를 대표할 수 있는 자”와 “동문 및 학교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로 평의원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다. 대다수 사립대학이 대학평의원회를 11명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럴 경우 평의원회에서 학생 단위의 비율은 10% 내외, 실질적으로 평의원 한 자리에 머물게 된다. 2007년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실에서 제작한 자료에 의하면 대학평의원회에서 학생의 비율은 약 14%에 불과했다. 동아대 학과구조조정 비상대책위에 따르면 2012년 7월까지도 대학평의원회 구성인원에서 학생단위는 전체의 13.2%였다. 교수의 비율이 39.1%, 교직원이 23.4%를 차지하고, 동문 및 기타 구성단위가 24.3%를 차지하는 것을 유념할 때 학생단위의 비율은 분명 초라하다.



대학평의원회에서 학생단위가 차지하는 비율을 고려할 때, 학생들의 의견은 학내 운영에 반영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심지어 대학평의원회에 참석하는 학생대표가 보통 총학생회장인데, 총학생회가 학내 정책과 운영에서 모든 학생을 대표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지난 6월 경남대의 학과구조조정 과정에서 폐과 위기에 있던 철학과 비상대책위는 대학평의원회에 참석하여 입장을 피력하고,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물을 제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박재규 총장이 의장으로 있는 대학평의원회는 당사자인 철학과 비대위의 입장을 불허하고, 철학과 폐지안을 가결했다.



또 다른 문제는 대학평의원회의 성격과 역할에 대한 상이한 입장과 그에 따른 해석으로 발생한다. 사립학교법에서는 대학평의원회의 성격을 ‘심의기구’로 규정하고 있으며, 학내 운영 전반을 심의하도록 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학평의원회가 심의기구로써 역할에 이해하고 있지만, 단순히 ‘심의’하는 것으로는실제 학교운영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음을 몇 개의 사례를 통해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중앙대의 경우 대학평의원회가 학과구조조정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들, 특히 학생들과의 의견수렴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중앙대 대학평의원회는 학교 당국의 학과구조조정안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중앙대 당국은 대학평의원회의 결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원안대로 처리해버렸다. 이에 중앙대 학생들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법원은 학교 당국 입장을 옹호했다. 다시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대학평의원회는 의견기관이 아니라 심의기관”이며, 대학평의원회가 심의를 보류할 경우 학교 당국의 학칙 개정을 무산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중앙대에서는 ‘보류’였지만, 한남대의 경우에는 ‘반대’였다. 한남대 대학평의원회에서는 철학과 폐과를 골자로 하는 학과구조조정안에 평의원 11명 중 9명이 반대의사를 밝혔다. 대학평의원회가 심의에서 반대의사를 확정했지만, 한남대 측은 “교무위원회가 두 번이나 심의를 해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는 이유로 대학평의원회의 의사를 가볍게 무시하고 철학과 폐지를 진행하고 있다. 학내 운영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도입과,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대학평의원회 설치를 의무화한 것이지만, 현실은 그런 의도와 완전히 엇나가고 있다. ‘심의’라는 역할의 한계로 대학평의원회는 학생사회의 목소리를 학교운영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왼쪽은 정태영 중앙대 구조조종공동대책위원장, 오른쪽은 정진리 동아대 학과구조조정 비상대책위원장ⓒ 21세기 대학뉴스

결국 대학평의원회는 사실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무의미한 기구로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동아대의 경우에는, 대학평의원회에서 학교 측이 제시한 원안을 그대로 가결했다. 그 결과, 현재 문예창작과가 폐지되는 등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있다. 이에 정진리 동아대 학과구조조정 비상대책위원장은 <고함20>과의 질의를 통해 “대학평의원회에 학생이 참여하는 것은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서 “현재의 대학평의원회가 학교 본부의 무분별한 행동을 거들기만 하는 어용 단체의 수준으로 전락했다. 다만 절차의 정당성만 학교 측에 부여할 뿐이다.”라며 대학평의원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