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전 어제, 한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질렀다. 자신의 친구들과 근로기준법을 위한 시위를 준비했지만 경찰의 방해로 무산되기 직전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죽어갔다. 그의 나이 스물 둘이었다.

전태일 열사 43주기를 맞이해 전태일 열사 동상에 삼성전자서비스 유니폼이 입혀져 있다. ⓒ 연합뉴스

그의 이름 전태일. 어제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3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은 어땠을까 생각해보는 과정은 지금의 한국 노동 사회가 처해있는 처절한 현실을 마주 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그의 외침이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43년째 허공을 맴돌고 있다.

그 사이 여러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씨가 309일만에 드디어 땅 위를 밟았다. 같은 날 쌍용자동차 희망퇴직자의 아내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렇게 쌍용차 사태는 노동자 24명의 죽음을 불러왔다. 김진숙 의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온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올해 2월에는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최강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타의에 의해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의 마지막 선택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뿐임을 지난날 노동자들의 죽음이 말해주고 있다.

지난 31일 삼성서비스센터 노동자 최아무개씨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협력업체 사장의 욕설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낙인이 찍혀 표적 감사를 당하고 있던 터였다. 앞서 협력업체 사장은 소비자의 불만족스러운 ‘해피콜’을 올리자 직원들에게 욕설을 했다고 전해졌다. 그가 죽기 전 천안분회 회원들과 공유하는 SNS에 남긴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라는 글은 이 사회가 노동자를 어떻게 내모는지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한국 사회의 노동환경의 비인간성은 그저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상징적’ 전태일로 만들고 있다. 이 또한 전태일 열사가 꿈꾸던 세상은 아닐 터였다. 그가 꿈꾼 세상은 노동자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도, 어떤 큰 이념이 온 사회를 지배하는 세상도 아니었다. 그저 여동생과 같은 어린 여공들이 막차가 끊겨 추운 날 집에 걸어가는 일이 없도록, 일하다 생긴 병으로 죽어가는 일이 없도록, 최소한의 인간의 권리를 위한 세상을 꿈꿨다. 비상식이 상식이 된 세상에서 전태일이 꿈꾼 세상은 여전히 오지 못했다.

그렇게 전태일 열사의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외침은 노동자들의 유서들로 메아리 되어 돌아왔다. 그들의 마지막 외침에 대한 응답은 현실적인 대안과 개선된 노동환경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은 마땅히 국가에게 있다. 한 명의 노동자라도 삶을 그저 ‘견뎌내기’ 위해서 살아간다면 전태일이 꿈꾸던 세상은 지금보다도, 또 1970년 그때보다도 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