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3ㆍ1 운동 당시 피살자 명부’, ‘일본 간토 대지진 당시 피살자 명부’, ‘일제 강점기 당시 피징용자 명부’ 등 3종 67권에 대한 분석결과가 공개됐다. 대략의 숫자만 추정됐던 이제까지의 상황과 달리, 발견된 3종류의 문서에는 피해자의 인적사항과 피살 상황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피해보상 절차에 필요한 사실 확인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막상 희생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정부다. 
정부가 이들 명부를 토대로 한 추가 배상 문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현재 미쓰비시를 상대로 3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2건, 후지쿠시에 대해 1건 등 총 6건의 대일 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이들이 자료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명부 제공을 거절한 상황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강제동원피해 조사위원회가 33만명에 달하는 피해자 자료를 수집하고도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정부가 공개를 제한해 피해보상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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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가 피해배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피해배상 문제가 65년 한일협정으로 이미 끝난 사안이라는 입장 때문이다. 정부는 2005년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피해 가운데 일본군 군대위안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등 3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해결됐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는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과연 한일협정이 ‘충분한’ 사과와 배상이 되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 조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접수된 일제강제동원 피해신고 건수는 국내 22만 6,000건, 해외 6만 8,833건에 이른다. 그러나 이중 해외 피해자들만 총 5,522억 9,000만원 상당의 보상을 받은 상태다(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법). 한일협정으로 국가간 배상이 완결되었다고 주장하기엔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개인들이 너무나 많이 남았다.

여기에 최근 일본이 한국인 4,700여명이 강제 노역을 했었던 하시마 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고, 회담 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은 범죄자”라는 발언을 하는 등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한 한국의 분노가 축적되어가고 있는 상태다.

미국 법정 드라마 <보스턴 리갈>에서 주인공인 앨런 쇼어는 대기업의 만행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에게 “받아낼 수 있는 것은 돈 뿐”이라고 설명하며, “그러나 그 액수가 그들에게 교훈을 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피해배상의 문제는 단순히 돈의 액수 문제를 넘어선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학계측의 주장대로, “정부가 지레짐작으로 일본을 압박할 수도 있는 새 카드를 버리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