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시네요. 잘가요, ‘알바렐라’.

8개월 동안 수많은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과연 개성 넘치는 그들의 이야기는 단 한 명의 개인적인 이야기였을까? 아니었다. ‘알바렐라’들의 이야기는 저마다 공통점을 갖고 있었고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사각지대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혼자 말하는 넋두리가 아닌, ‘알바렐라’ 모두의 고함이다.


최저시급 ‘만’ 잘 지키는 사장님들. 이러니 최저임금에 목매달 수밖에

4대보험을 보장한 사업주는 단 한 명, ‘청년사업가’뿐

그동안 진행된 알바렐라 인터뷰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아르바이트생에게 최저임금 이상으로 사례는 모두 26건으로 96.2%에 달했다. 그러나 최저임금과 달리 다른 고용조건은 여전히 아르바이트생에게 불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서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나 이를 지키는 업주는 38.4%(10건)에 불과했다.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다 보니 기본적인 노동조건도 보장하지 않는 사업주가 대부분이었다. “계약된대로 노동시간을 지켰나?”라는 질문에서 무려 응답자의 50%인 12명이 노동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답변하였다. 4대보험의 경우 24명 중에 단 한 명만(0.04%)이 4대 보험을 보장받았다고 대답했다.

4대보험을 보장 받았다고 대답한 아르바이트생이 일한 곳은 다름 아닌 한 청년사업가가 운영하는 밥버거 전문점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이전에 했던 아르바이트에 대해 “회사에서 알바 할 때는 계약서도 없고…한 마디로 부조리했어요.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에도 불려 나오고…. 좋은 알바 찾기가 쉽지는 않아요”라고 증언한다. 그만큼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기성세대의 대우가 열악하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4대보험은 1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이 의무 가입대상이다. 요컨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라도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했다면 4대보험의 의무가입 대상자다.

아르바이트생은 만능요원, ‘스파이’부터 ‘부황뜨기’까지 못하는 게 없어요

여의도의 한 브런치 카페에서 일한 박렐라(24)씨는 업무 중에 다짜고짜 ‘스파이’를 하게 된 적이 있다고 한다. “같은 건물에 수제 버거집이 있었는데, (매니저님이) 그 버거집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셨나 봐요. 저희 가게에서 샌드위치도 파니까요.” “평소보다 손님이 없는 날에는 저를 그 가게로 염탐을 보내요. 다들 거기로 간 거 아닌가 하고. 그럼 전 유니폼 입고 앞치마 두른 상태로 그 가게 앞을 기웃거려야 해요. 완전 창피했죠.”

입시학원에서 조교로 일한 최렐라(23)씨는 단언컨대 알바렐라 중 가장 고생스러운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학원강사를 따라 돌아다니며 조교 업무를 보는 일. 일견 쉬워 보이는 일이지만 문제는 수도권 전역을 대중교통만으로 이동하며, 무려 교통비마저 본인이 전액 부담했다는 것이다. “강사님이 소속되어있는 대형입시학원 지부가 여러 곳에 있었어요. 그래서 각 지역 학원으로 수업하러 가실 때마다 저는 따라가야 했어요. 그때는 저도 선생님을 따라 강남, 평촌, 과천으로 출근했죠.” 강사의 강의가 늘어나자 최렐라 씨는 강남, 평촌, 과천, 김포까지 종횡무진 돌아다녀야했다. “한 달 교통비가 1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전부 제가 부담해야 했어요. 그리고 또 웃겼던 게, 강사님은 저랑 같이 이동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제가 수업 교재나 유인물을 다 짊어 매고 버스나 지하철로 먼저 출발하면, 강사님은 나중에 택시를 타고 학원으로 오는 식이었어요. ”

한의원에서 진료보조로 일하는 손렐라씨는 직원 의료행위를 하라는 권유(?)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일 시작하기 전에 원장님이랑 면담을 했는데, 부항 뜨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많이 놀랐죠. 부항 맞아본 적도 없는 저보고 부항을 놓으라고 하니까요. 그런데 다시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하마터면 고용주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의료법을 위반할 뻔한 것이다.

아르바이트생이 보는 우리 사회


키즈카페에 양육을 일임하는 부모

공사장 일에 대한 사회에 시선

프랜차이즈 때문에 구두쇠가 된 사장님

“예전에는 집에서 밥 먹고 산책을 하거나, 퇴근하는 가족 맞이하고 자는 저녁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에도 가족들이 키즈카페에 와서 서너 시간 앉아 있다 가요.” 키즈카페에서 일했던 황렐라(24)씨는 양육에 대해 새로운 시선이 생겼다고 한다. 부모들이 키즈카페에 너무 의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골손님도 많고 비 오는 날엔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어린이를 둔 부모들이 많이 의지하는 거 같아요. 그만큼 부모가 아이 돌봐줄 시간이 없다는 거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게다가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마저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게 안타까웠어요.”

공사장에서 일하는 최렐라(25)씨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꼈다. 사람들은 여전히 공사장을 더럽고 피해야 할 무언가로 보고 있었다고 한다. “TV에 나오는 공사장 현장의 모습을 보면 벽돌이나 흙을 가득 담아서 1층부터 짊어지고 가는 모습이 나오는데, 실제론 그렇지가 않아요. 레미콘이나 크레인 등 많은 기계가 사람 일을 대신한다고 보면 됩니다. ” 편견을 직접 맞닥뜨린 경우가 있느냐고 묻자, “전에 한번은 소개팅 기회가 있었는데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더니 표정이 많이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 공사장 노동을 건축의 한 분야라고 생각 하는 것이 아니라, 막노동이라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라고 답했다.

한 아이스크림 점에서 일했던 유렐라(23)씨는 전 직장의 사장을 까다롭지만 동시에 불쌍한 사람이라고 회상한다. “사실 사장님이 굉장히 깐깐한 성격이라 사장님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알바들이 많았어요. 매장 물건들도 정말 아껴 쓰셔서 비닐봉지 묶는 끈 같은 것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다시 쓰셨어요. 또 시급도 최저시급만 주시고요. ” 하지만 이런 사장의 행동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한다. “본사와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고 나면, 가게를 운영할 때 필요한 물건들은 무조건 본사에서 구매해야 해요. 아이스크림 기계부터 시작해서 신제품 아이스크림 광고 포스터, 매장 점원 티셔츠, 머리망 같은 사소한 물건까지 전부요. 그러다 보니 장사가 잘 되어도 남는 게 없어요.” 이것은 프랜차이즈 전성시대라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프랜차이즈 업주에 대한 착취가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전가되고 있다.

품위 없는 대한민국, ‘진상집합소’


“술 파는 년”은 기본, 성추행마저 빈번해

일하다 말고 “술 파는 년”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알바렐라가 있다. 바로 대형마트에서 와인코너를 담당하고 있는 신렐라(22)씨가 그 주인공. “한번은 좀 취하신 것 같은 아저씨 두 분이 오셔서 길을 물어봤는데, 제가 담당하시는 분께 여쭤보고 오겠다고 했거든요? 근데 한 분이 “야, 됐어. 술 파는 년한테 뭘 물어봐?” 라는 거예요! 술 파는 년이라니요. 더 충격적인 것은 옆에 있던 분이 “하긴, 그것도 그렇지” 이러면서 그냥 가버리는 거예요. 정말 너무 기가 막히더라고요.”

이런 사례는 아르바이트생들 사이에선 이미 흔한 일이다.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진상’ 손님 보기 정말 쉽다고 말한다. “음식 다 먹었으니 리필해 달라는 손님, 크림 파스타 시켜놓고 느끼해서 못 먹겠다는 손님, 원래 그을려서 나오는 스모크 음식인데 겉이 탔다며 바꿔 달라는 손님, 스프 하나만 시켜놓고 왜 하나만 주냐, 더러워서 어떻게 둘이 하나로 먹겠느냐는 부부…”

손님을 일대일로 상대해야 하는 직종은 노골적인 성추행을 당하기도 한다. 골프장 캐디로 근무한 알바렐라는 이런 손님이 한둘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요즘은 감시도 심하게 하고 캐디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어서 성희롱하면 신고도 가능하지만, 카트에 타서 캐디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든지, 캐디가 앉는 자리에 미리 손을 가져다 댄다든지, 짓궂은 농담을 하는 고객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직설적으로는 ‘여자를 닮아서 구멍이 잘 안 들어가’라든지.” 팁을 받아야 하는 업무 특성상 어디다 하소연할 곳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 아르바이트란 어떤 존재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한 알바렐라의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알바를 하면서 많이 달라진 점이, 알바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됐단 거예요. 예전에는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살 때 그 아이스크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아이스크림을 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저 사람은 그냥 아이스크림을 주는 사람이 아닌, 나름대로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보게 돼요. 그래서 알바 일이 힘든 점도 많았지만, 참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아르바이트생은 과연 조선시대의 노비, 고대 그리스 시대의 노예와 같은 존재일까. 미래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에게 노예와 다름없는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내일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 보여준다. 어느 선거에서도, 국정감사에서조차도 청년은 외면받고 있다. ‘알바렐라 시즌3’에서는 더 행복하게 일하는 ‘알바렐라’의 모습을 발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