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음표에서는 ‘한 명의 20대로서 살아가는’ 고함20 기자들의 삶 속에, 한순간 운명처럼 다가온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도시는 나에게 특별하지 않았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이 나왔을때만 해도 그랬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아파트’가 있는 중소도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서울은 동경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친근한 장소에 가까웠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지하철을 타고 공연을 보러 다녔고, 나는 대도시를 별장이라도 있는 양 들락거렸다. 10대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는 ‘서울특별시’를 스스로와 가깝게 여겼던 치기일 것이다.
청소년기를 보내온 도시를 떠나려고 할 때 서울은 비로소 목적이 되었다. 가족들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고 어떻게든 지금보다 많은 자유를 얻으리라 믿었다. 매일아침 새로운 풍경을 맞이하고, 수험생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의지를 끌어올려 주리라 기대했다. 긍정적인 가능성이 널려있는, 역동적인 이 도시는 곧 새로운 ‘홈타운’이 될 예정이었다. 근거없는 확신이었다.
‘빗 소리가 내 맘속에 고요히 잠길때 이 도시가 내 삶속의 고요를 삼키네’
20대와 도시는 같은 속성을 가지는 것일까. 혹은 단순히 시기가 겹쳤던 것 뿐일까. 이곳에서는 확실히 매일마다 새롭고도 당황스러운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순리나 이치 따위는 화석과도 같았다. 도시는 ‘혼란’을 컨셉삼아 굴러가는 듯 했다. 그 스케일은 고등학생 티를 채 벗지 못한 20대의 시야를 초월했다.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다 맞거나 거처를 잃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버스로 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서의 일이었다. 서울에서 확보한 자신의 한 뼘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 일부는 그 땅따먹기 놀음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버렸다. 강의실에서는 아르바이트로 밤을 샌 친구들이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곯아떨어졌다. 비싼 등록금을 월급으로 받았을 교수님은 그 친구들에게 F를 주었다. 
물론 짧은 예로 이곳의 모든 조각을 요약할 수는 없다. 다만 지하철 역사안에서 급하게 밥을 삼키던 노숙인과 그 역 근처에서 ‘불금’을 즐기던 내 또래들, 누가봐도 쉬어야 할 나이에 편의점에서 물건을 채우는 이와 거기서 물건을 사는 나, 화려한 반려견 센터와 버려진 동물들. 그런 풍경들이 오래도록 서울의 잔상으로 남았다. 너무 좁은 곳에 너무 많은 것이 맥락없이 모아져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살 수 있었다. 서울은 당연히 시끄럽고, 당연히 수많은 갈등이 발생했고, 당연히 더러워야 하는 도시였다.

‘한없이 차가워도 난 그댈 벗어나지 못하죠
끝없이 달려봐도 난 그댈 떠나가지 못하죠’
서울에서 지낸 몇년 간 나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하숙집으로, 또다시 기숙사에서 원룸으로 살 곳을 옮긴 탓도 있었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확신이 옅어진 때문이기도 했다. 이곳에 발을 붙인다고 결정한 순간의 호기로움은 사라졌다. 아주 다양한 표정을 한 도시의 모순들이 끝모르게 나의 반경으로 접근했다. 나는 그것들이 내 일이기에 슬펐고, 또 남의 일이기에 슬펐다. 도시의 환상에 금이 갈 때 이 노래는 피부로 다가왔다. 나는 상상으로 더듬었던 가사속의 공간을 맞닥뜨릴 준비를 해야했다.


‘도시가 너와 나의 손바닥 안에’

특별시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그 모든것을 깨달았을 수 있다. 그러나 서울은 거의 신격화된 공간이었다.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믿음과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동시에 나를 삼켰다. ‘신’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가며 내렸다. 그때마다 나는 결국 머무는 것을 선택했다. 
이 곡은 나에게 비 갠 서울의 화려한 밤, 그 속을 촘촘히 파고든 길들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도시의 가장 작은 단위는 개인이었다. 나는 그 당연한것을 아쉬워하며 서울에 정을 붙여보려 했다. 애정과 증오가 뭉쳐진 이곳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역설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지난한 장면의 반복을 헤치며, 나는 아직 이 도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