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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전교조] ④ 나의 전교조 선생님 –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가 정부로부터 ‘노조 아님’을 통보받은지 한 달이 지났다. 전교조, 정부, 전문가, 국제단체까지 나서 법리적 문제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법원은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전교조는 당분간 노조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그러나 전교조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집행정지 결정이 ‘법외 노조’결정에 대한 미봉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교조는 탄생부터 줄곧 한국 사회와 한국의 교육 문제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어왔기 때문이다. 전교조를 둘러싼 ‘참교육’과 ‘이념편향수업’이라는 두 시각 속엔 사회의 다양한 모습이 응축되어 있다. 이번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도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봐야 옳다. 고함20은 전교조를 바라보는데 도움이 될 더 큰 밑그림을 4회에 걸쳐 준비했다.
 

2008년은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로 첫 정권 심판에 직면한 해였다. 그해 6월, 대한민국은 ‘광우병 파동’으로 들끓었다. 한미 FTA 수입을 반대하며 촛불을 든 이들과 광우병 파동이 선동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 바빴다. 2008년의 6월은 온 사회가 그러한 이분법 속에 매몰된 것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는 점차 한미 FTA에 반대하는 전교조 선생님들과 비전교조 선생님들로 나뉘어 갔다. 그 속에서 가장 민감한 시기인 고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어떤 정의감에서인지 광우병 파동의 심각성에 동조하는 친구들 몇을 모아 주변 친구들을 설득하기에 나섰다.

당시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은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나 정치 이야기를 어른들의 세계인 듯 여기곤 했다. 어른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면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방에 들어가곤 했던 것이다.

절친하지는 않았던 어떤 친구 또한, 나의 지루한 설명에 어린 우리가 관심 가질 일이 아니라며 나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나의 말을 무시하던 그 친구는 조용히 다가와 나에게 한 마디 건넸다. ‘00아. 이 문제 심각한 것 같아. 우리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루아침에 바뀐 친구의 태도에 의아해했지만 누군가의 동조에 신이 났던 나는 몇 번 가보지도 않았던 서울시청에 가기 위해 친구와 함께 나서게 된다.

처음 가본 시위 현장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처음 본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긴장된 학교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겐 낯설고 조금은 두려운 광경이었다. 게다가 점차 어두워지는 날씨에 겁을 먹은 나는 친구에게 집에 가자고 말한다. 그곳에서 내내 들떠 보이던 친구는 좀 더 있다가 가겠다며 기어코 나를 먼저 보내고야 만다. 그렇게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왔고 그 친구는 그 이후로도 야자를 빼먹고 시위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일이 있는 직후인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야자를 빼기 위해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시위현장에 나선 친구는 그곳에서 담임선생님과 마주치게 된다. 평소 ‘호랑이 선생님’으로 정평이 나 있던 분으로, 같은 반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야자를 빼먹을라치면 야자 시간 내내 그 친구만 감시하곤 했었다. 그런 선생님이었기에 잔뜩 ‘쫄아 있던’ 친구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번쩍 뜬다. 선생님은 친구를 혼내는 대신 ‘잘했다’고 다독여줬다. 다음 날이 되어서도 그 일에 대해선 모른 체한 것은 물론이다.

다음 날 들뜬 모습으로 다가온 친구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그때 처음 선생님이 전교조 소속 교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제가 바로 전교조 교사들이 모여 현장에 나갔던 날이었던 것이었다. 당시 나는 어떤 정의감에서인지 시위갔을 때 받았던 FTA 반대 스티커를 책상에 붙여놨는데, 지나갈 때마다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비웃음 섞인 야단과 질타를 받곤 했다. 그때에도 담임선생님은 나를 혼내지도, 떼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이분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았던 나는 차라리 선생님이 우리에게 ‘뚜렷한 거짓’에 대해서 말해주길 바랐었다. 정치 이야기를 꺼내려 하면 손사래 치며 누가 옳고 그름을 말하길 거부하시던 선생님이 때론 의아하기도 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선생님의 그런 일관성 있는 모습은 자신의 생각을 학생들에게 주입하지 않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으며, 또 학생들에게 이분법적인 시각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전교조는 정부로부터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가, 법원에 의해 해당 통보가 집행정지 되면서 다시 법외노조에서 벗어났다. 전교조와 관련된 일련의 과정들은 5년 전 나의 고교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옳고 그름만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분법적인 시각에 매몰된 사람들이 만연했던 때.

전교조 교사를 향한 날 선 비판들은 그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은 채 편향된 시각을 주입할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지난날 나의 담임선생님을 떠올리며 모든 선생님을 좋은 선생님, 나쁜 선생님으로 판단할 수 없듯이, 전교조에 소속된 교사들 또한 좋은 선생님, 나쁜 선생님으로 구분할 수 없음을 생각했다. 이번 사태를 보며 그 시절 담임선생님이 떠오른 이유다. 선생님은 정말 ‘아무 말도 없었다’.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2 Comments
  1. Avatar
    철없던학생

    2013년 11월 29일 00:10

    저는 학교 다니면서 누가 전교조 선생님이고, 아닌지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정다ㅡ 나이든 지금도요. 다만 선생님 한분한분이 저희를 아끼시던 훌륭하신 은사님이셨다는 기억밖에요.

  2. Avatar
    아닌데...

    2014년 3월 21일 12:24

    내가 겪은 선생은 비전향 장기수 얘기하며 찔찔 짰는데요. 국군포로 얘기는 한마디도 안 했고요. 그뿐인가요.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수행평가내서 보수적 의견 내는 아이들은 가차없이 낮은 점수 주시던 분, 거기에 조중동은 절대 보지말아라 하던 교사, 새누리당 까는 이야기로 30분이나 할애하시던 분도요. 다 전교조였습니다. 물론 선생님들도 정치적 신념이 있고, 거기에 토를 달 생각은 없습니다만,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정치신념을 주입 시키는 목적의 행동을 수업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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