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총학생회 선거를 치를 때마다 굉장한 비중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가장 무분별하게 등장하는 복지 관련 공약. 복지는 사전적 정의로 ‘행복한 삶’을 의미한다. ‘삶의 질적 수준을 고양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을, 우리는 복지라 말한다. 하지만 이런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범위 내에서는 사실 거의 모든 공약이 ‘복지’라는 항목 안에 포함될 수 있다. 복지 관련 공약 중에서도 학교 본부와의 협상 혹은 투쟁을 통해 얻어내야 한다고 판단한 공약들, 다시 말해 총학생회의 ‘협상력’이 필요한 공약만을 뽑아 나열했다. 

△ '복지'하면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한국 근로복지공단


 


있는 공간은 바꾸고 없는 공간은 만들거나 늘리고 : 팀플학습공간/학생자치공간 확보



모든 학생이 양껏 쓰고 남을 정도로 널찍한 공간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문제는 이미 대학 정원수 이상 학생들을 꽉꽉 채워넣어 캠퍼스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데에 있다. 학생들의 자치 공간이 이 틈바구니에서 보장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성신여자대학교의 경우 학생회관을 리모델링하면서 학습 공간을 늘렸지만, 그 공간을 대신해 과방을 싹 밀어버리면서 해당 단과대 학생회실이랑 통합해버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총학생회가 공간 확보를 공약으로 갖고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몇몇 선거운동본부는 건물 옥상 위에 휴게 공간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안전상의 문제가 따른다. 게다가 이미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는 공간들을 ‘자치’공간이나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자는 주장은 근거를 마련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공간 공약은 어떻게든 자치 공간을 얻어내겠다는 생각들이 눈에 띈다.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 ‘액션’ 선본, 연세대학교 ‘포커스온’ 선본, 숭실대학교 ‘Let’s 숭실’ 선본의 경우 앞으로 신축될 건물을 위한 협의위원회를 구상해서 학생들이 원하는 공간을 얻어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학교 면적당 학생 수가 가장 적은 강원대학교조차도 학생회관에 학생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문제 삼고(“당신의” 선본) ‘동문학생회관 건립 추진위원회 설치’ 공약을 들고 나왔다. 



공간 부족 문제를 제도적으로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존재한다. 이미 존재하는 건물의 빈강의실이나 교내 유휴 공간을 비어있는 시간에만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공약이 그것이다. 세종대학교 ‘액션’ 선본의 경우 학생회관 빈방을 스터디룸으로 이용할 것을 공약으로 명시한 한편, 국민대학교 ‘리필’ 선본의 경우 시험기간마다 부족한 도서관 열람실 대신 비어있는 대형 강의실을 열람실로 만들 계획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어떤 선본은 빈 강의실을 전산 처리해 학생들이 ‘총학생회 애플리케이션’이나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자유롭게 빌릴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는 ‘애플리케이션+공간’이라는 ‘통합적’ 공약을 내세웠다. 



한편 학교 내부로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갈 만한 공간이 사라지자 학교 밖 공간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중앙대학교 ‘마스터키’ 선본은 없어진 중앙대 운동장을 대신해 주변의 기타 체육 시설과 협의해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경희대학교 ‘경희의 조건’ 선본의 경우 학교 앞 카페와 제휴를 맺어 세미나실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이 정도쯤이면, 대학 공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겠다. 

△ 2004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논스톱5'에도 학생회관 이전으로 인해 동아리방이 합쳐지게 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스포츠조선


 


학점관리로 교육권을 보장해준다던 : 학점세이브제/학점이월제 



학점이월제 혹은 학점세이브제란 수강신청이 끝나고 남은 1~3학점 정도를 다음 학기로 이월해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제도다. 이미 많은 대학에서 학점이월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대학에서는 그들의 사례를 들며 협상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 최근 3년 사이에 학점이월제가 총학생회 선거 공약으로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몇몇 대학의 경우 아예 1번 공약으로 들고 나올 만큼 비중을 두고 있다. 

△ 1학기 학점을 마법처럼 2학기 학점으로 옮겨주는 '학점이월제' ⓒ전북대신문


학점이월제는 ‘비싼’ 등록금을 내며 학교 다니는 학생들에게 ‘교육/수업권 보장’이라는 대의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명목을 줄 공약이기도 하다. 남은 학점은 아쉽고 등록금이 아까운 학생들이 이 공약을 반대할 이유가 없는 거다. 셀 수 없이 많은 학교에서 학점이월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최근 이를 도입한 대학들에서 ‘학점이월제가 불필요하다’는 견해를 드러낸 대학도 있어 해당 학교의 학사 제도 특성을 잘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올해 학점이월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나온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에는 한동대 ‘행동’ 선본, 강원대학교 ‘Here OZ’ 선본 등이 있다. 



졸업하기 전에 안 좋은 학점을 버리라고? :수강포기제/수강신청포기제도



좋지 않은 수강 학점을 졸업하기 전 버리고 갈 수 있게 해주는 수강신청포기제도 또한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 공약의 단골손님이다. 명지대 ‘새로고침’ 선본의 경우 명지대가 2000년대 초반 수강포기제를 운영하다가 이를 폐지했음에도 다시 수강포기제를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학점포기제는 점수가 낮은 과목의 학점을 졸업하기 전 포기해서 학생들의 학점 전반이 상승한다면 이는 결국 학점인플레를 가속해 결과적으로 취업 시 인사 담당자들이 대학 학점 시스템 자체를 불신해 학점 신뢰도를 떨어트릴 수도 있는 제도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학점 말고 다른 ‘스펙’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학점인플레를 우려해서인지 교육부에서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을 선정할 때 평가 지표 속에 학점 관리를 따로 배치해 이를 방지하고 있다. 건국대학교 ‘열혈건대’ 선본 등이 수강포기제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 이러다가 정말 '개'나 '소'나 … A+라면? ⓒ경기신문


 


일단은 버스부터 : 셔틀버스 증차/개편 



캠퍼스가 넓어 교내로 버스가 다니는 대학, 학교랑 역 사이 거리가 멀어 이를 이어줄 버스가 필요한 대학, 서울 거점마다 버스를 운행하는 대학, 버스 증차 간격이 넓어 증차 간격을 좁혀야 하는 대학, 예비군/명절귀향버스를 상시적으로 운행하겠다는 혹은 이를 지원해주겠다는 대학, 시내버스를 학교 안으로 들여오겠다는 대학, 아니 그냥 교통이 불편한 대학까지. 이렇게 보면 조사를 진행했던 모든 대학이 셔틀버스 증차 및 개편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남은 정류장이나 복잡한 환승을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학 셔틀버스 운행은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유독 특이한 점은 예년과 비교해봤을 때 ‘셔틀버스를 증차하겠다’는 공약 자체는 변함없지만,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운수와 이미 협의를 마쳤다’ 혹은 ‘시에 물어보았다’고 병기한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가 많았다. 이는 ‘공약을 어떻게 실행할 수 있겠느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사전에 준비한 것으로 판단된다. 

△ 환승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학까지! '셔틀버스' ⓒ한국일보


 



이 밖에도 복지 협상 분야에는 여성용품 자판기‧와이파이‧핸드폰 충전대‧흡연부스‧엘리베이터‧잔디밭‧공기청정기‧환풍기‧에어컨‧온풍기‧식당‧CCTV‧남자휴게실‧극장‧파라솔‧ATM기기‧사물함 설치 등의 학교에 부족한 무엇을 설치해주겠다는 공약이 포함된다.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와이파이나 핸드폰 충전대 설치는 설치된 대학을 제외하고 거의 모두 등장했으며 흡연부스 역시 공약으로 내걸지 않은 대학을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많은 선거운동본부에서 이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세종대학교 ‘액션’ 선본의 경우 흡연부스 증설을 공약으로 내세운 한편, 기존 건물 출입구에 몰린 흡연 구역에서 벗어나 흡연부스를 만들고 금연 캠페인 역시 같이 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모든 선거운동본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무엇무엇’을 설치해주겠다는 공약들의 경우 학생들의 의견 수렴이나 학교와의 치열한 협상을 진행할 생각도 없이 선심성 공약으로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학교에 다니며 당장 눈에 띄게 불편한 것들이 선본 공약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다. 한동대 ‘에헤라디야’ 선본의 경우 노래방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대학이 학문을 공부하는 장소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것이 실질적으로 적합한 공약인지는 의문이 든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공약 대부분은 지켜지지 못할 ‘공(空)약’이 되고 만다. 대통령 선거 때도 복지 관련 공약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던가. 작은 사회인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일 테다. 자신도 불편하고, 학생들 대부분 이를 불편하게 여기고 있을 테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복지 관련 공약은 그렇기에 ‘어떤’ 공약을 갖고 나왔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후보자의 성향에서 복지 관련 공약의 실행 추진력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