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대악 척결’을 내세운 이후, 적극적으로 가정폭력 근절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월 ‘가정폭력 삼진아웃제’를 도입해가며 9월까지 총 90명의 가정폭력 사범을 구속했다는 것이 성과라면 성과지만, 재판이나 실형으로 이어지는 ‘교훈’이 잇따르지 못하고 가해자의 ‘반성’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주변의 무관심까지 더해져 피해자들이 제때 도움을 못받는 일이 빈번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 9월 현재 가정폭력 사범 검거건수는 1만 2,94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601건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흔히 가정폭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매맞는 아내’를 떠올리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맞고 사는 것은 아내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는 계모에게 학대당해 죽은 초등학생의 기사가 보도되어 충격을 일으켰다. 폭력은 노부모까지 덮쳤다. 2012년 접수된 노인학대 신고건수는 9,340건으로 2011년에 비해 8.6%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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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아이, 노인.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공통점은 우선 경제적으로 약자라는 점이다. 짧지 않은 기간동안 필연적으로 부모에게 의존적일 수 밖에 없는 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피해 노인의 69.1%는 저소득층으로 경제적으로 자립이 불가능해 폭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장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한국의 가정구조 상 ‘아버지’의 위계는 거의 절대적이다. 문제는 이런 권력을 지닌 아버지가 그 힘을 가정을 지키는 데 사용하는 게 아니라 폭력을 휘두르는 데 쓰고 있다는 점이다.

가정폭력의 배경에는 사회적으로 뿌리깊은 ‘가부장적 사고방식’도 단단히 한몫 거들고 있다. 사실 경제력보다 피해자들을 더 절망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회의 시선이다. 한국일보가 지난 1주일간 기획기사로 다루었던 ‘안방의 비명’ 보도 내용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가정폭력의 가해자는 바깥에서는 유순하고 성격이 좋아보이는 경우가 많아, 신고를 하더라도 되레 “여자가 맞을 짓을 했겠지”라는 반응이 돌아온다고 한다. 외갓집 식구들을 해치겠다는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는 경우도 빈번하다. 노부모 피해자 같은 경우에는 한층 비참하다. 5년동안 폭행을 당했다는 할머니는 “자식한테 맞았다고 소문나면 어차피 내 얼굴에 침 뱉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회적 인식이나 학습된 사고방식으로 인해 피해자 뿐 아니라 제3자까지도 그런 폭력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가정폭력이 ‘가정내 문제’일 뿐이고, 타인이 섣불리 끼어들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은 무관심의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다. 경제적 능력의 부족 등 자력으로 폭력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피해자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쳐버리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실제로 신고 당시 “가정폭력 사건은 가정 내 해결이 우선”이라며 미적지근하게 대응한 경찰 탓에 가정폭력의 노출이 더 어려워지고, 피해자는 보복성 폭력에 추가로 시달리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시점이다.

가정폭력은 더이상 ‘가정내 문제’라는 방패 속에 숨겨져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가정폭력이 심각한 범죄행위고, 엄중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4조 1항에 따르면 “가정폭력은 집안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범죄이고, 따라서 누구든지 가정폭력을 알게 된 경우에는 경찰(☎ 112)에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교육/의료 기관 종사자 등에게는 신고 의무를 부과하여 의무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법을 쓰고 있지만, 사실상 가정폭력이 폐쇄된 집 안에서 일어나 발견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제3자의 관심과 신고가 한층 필수적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