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의 2집이 나온 것은 2004년, 내가 중3 때의 일이었다. ‘팬이야’가 수록되어 있었던 자우림 4집을 접하게 된 이후로 그들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 나는, 그녀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이 발매되었다는 소식에 곧바로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던 CD점으로 향했다. 자우림의 곡들도 그렇게 밝지는 않았지만, 김윤아의 앨범의 표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음악들이 내뿜었던 약간은 음산한 기운에 뭔가 매혹되었던 기억이 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라는 이해가 갈 듯 말 듯한 어떤 의미에서는 철학적이기도 한 제목의 트랙으로 시작하는 이 앨범에서 김윤아는 사랑이라는 로맨틱해야 할 단어를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라고 이야기하며, 대신 ‘증오는 나의 힘’에서 ‘증오는 증오를 낳고’ 라는 언어를 묵직하게 읊조린다. 그녀의 세상에 대한 냉소는 마지막 트랙인 ‘Girl Talk’에서 절정에 달한다.

‘열일곱 또는 열세살 난 모순덩어린 그앨 안고 / 다정히 등을 다독이며 조근조근 말하고 싶어 / 수많은 사람들과 넌 만나게 될 거야 / 울고 웃고 느끼고 /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세상은 위선에 가득 차 / 너는 아무도 널 찾지 못할 그 곳을 향해 / 달려 달려 도망치려 했지만 / 아무리 애를 써 벗어나려 해도 너의 힘으론 무리였지 / 더딘 하루하루를 지나 스물다섯 서른이 돼도 / 여전히 답은 알 수 없고 세상은 미쳐 있을 테지 / 그래 넌 사람이 토하는 검은 기운 속에 진저리를 치며 / 영혼을 팔아 몸을 채우며 살아남진 않으리라 / 주먹을 꼭 쥐며 다짐하고 또 다짐하겠지’

 


 

이전에 내가 들을 수 있던 노래들이라고는 사랑 노래나 이별 노래,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노래들밖에 없었다. H.O.T나 젝스키스와 같은 아이돌들이 불렀던 반항적인 노래들도 결국엔 자신들이 무언가를 바꾸겠다는 희망이나 의지를 노래하고 있었다.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인 혹은 그렇게 될 서사들. 그러나 김윤아의 노랫말들에는 좋은 결말이란 없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치였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으며, 혼자 남아 다른 결말을 상상해야 하는 ‘미저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증오는 해소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 파국으로 스스로 들어가겠다고 한다.

‘Girl Talk’에서 그녀는 고작 ‘열일곱’, ‘열세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세상은 아름다운 거야’라는 거짓말 대신 ‘세상은 아름답지 않아. 네 앞날에는 수많은 고통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는 냉정하고 더러운 진실을 이야기한다. ‘아무리 애를 써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음을, ‘스물다섯 서른이 돼도’ 여전히 정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언한다. 특유의 냉소적인 태도로, 다른 노래가, 다른 세상이,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하지 않았던 세상에 대한 어떤 관점은 그렇게 고작 ‘열여섯’의 내게 폭로되었다.

그러나 기껏 중학생에 불과했던 나는 세상에 대해서 아직 맹목적인 희망을 품고 있었다. 또 그녀가 노래하는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단순히 어린 시절의 나는 묘하게 매료되는 그 음울한 분위기에,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언어들의 나열에 어떤 의미로는 중독되었다. 국어 시간의 수행평가 과제였던 생각들을 기록하는 노트에,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김윤아의 노랫말들을 옮겨 적었다. 증오가 증오를 낳는 장면이 무한반복되는 이상한 만화 컷들을 그려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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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되고 나서였다. ‘수많은 사람들과 넌 만나게 될 거야’, ‘너는 아무도 널 찾지 못할 그 곳을 향해 도망치려 할 거야’, ‘넌 사람이 토하는 검은 기운 속에 진저리를 칠거야’와 같은 그녀의 예언이 어떤 뜻이었는지, 내게도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말이다. 대학생이 되고 나면, 어른이 되고 나면 모든 것이 아름다울 것만 같았던 세상이었다. 그러나 나 또한 다른 20대들이, 또 다른 어른들이, 김윤아도 했을 사고의 경험에 이르게 됐다. 인식하는 과정. 그 세상이 생각보다 만만하지는 않다는 것을, 산다는 것 자체가 고행이고 엄청난 수행의 과정이라는 것을, 스무살이 넘고 시간이 지나도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앞으로도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을.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세상에 대한 냉소를 고음으로 쏘아대는 김윤아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그렇게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들을 거쳐 간 이후로는 ‘Girl Talk’의 냉소가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현실을 냉소하는 노랫말은 오히려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을 직면해서 바라보고, 그냥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이상한 힘을 주었다. ‘그건 원래 그런 거야’, ‘너한테만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야’와 같이 잘못 포장했다가는 싸구려 힐링 멘트가 될 법한 그런 따뜻한 위로를 가장 차가운 언어들 속에서 느끼는 특별한 경험. 김윤아가 써내는 차가운 노랫말 안에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Girl Talk’의 마지막 가사가 잘 보여주듯이.

‘열일곱 또는 열세살난 상처투성인 그앨 안고 / 다정히 등을 다독이며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


9집 앨범을 발표한 자우림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을 때, 김윤아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간절하게 원하면 다 이루어져 이런 얘기는 거짓말이잖아요 사실은. 그러니까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그냥 저희가 느껴왔던 것? 20대 때부터, 10대, 20대 때부터 느껴왔던 것, 지금도 그냥 확 떨쳐버릴 수 없는 어떤 불안감 같은 것, 그게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얘기를 많이 섞었어요.” 참 한결같이 좋은 그녀의 음악과 생각. 2013년 이제 스물다섯이 된 나는 자우림 9집에 수록된 ‘이카루스’에서 또 한 번 ‘따뜻한 냉소’를 체험한다.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 찬란하게 타오르는 줄 알았고 / 난 나의 젊은 날은 뜨거운 여름과 같이 / 눈부시게 아름다울 줄 알았어 /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사소한 비밀 얘기 하나 /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글. 페르마타(fermata@goham2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