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처음 겪은 세상과의 만남 역시 모태와의 이별의 순간도 함께였으니, 만남과 이별은 사람에게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만남보다는 이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것과의 만남은 언제나 설레는 것일테지만, 만남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별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겐 각자의 이별이 있고, 각각의 이별은 모두 눈송이처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고함20의 새로운 연재인 <이 별에서 이별까지>에서는 20대라면 겪었을 법한,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겪을 이별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별에서 사는 당신의 이별은 어떻습니까?


대학 입학 전까지 안경을 쓰지 않았던 필자는 이따금씩 주변 친구들을 보며 쓸데없이 불안해
하곤 했다. 그래뵈도 공부를 안 하지는 않았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의 필수품인 안경을 쓰지 않는 나 자신이 학생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건가 싶었다. 안경 때문에 불편하다는 친구들의 볼멘소리는 매번 낯설었다. 

대학에 들어간 뒤 마침내(?) 안경을 쓰게 된 순간, 나도 이제 진정한 학생이 된 것 같아서 은근히 안도했다. 그런데 금세 나는 또다시 이방인이 되었다. 많은 친구들이 너나할 것 없이 지긋지긋한 입시에서 벗어나자마자 하나 둘씩 안경을 벗어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20대의 초입은 안경과의 이별로 시작된다.



 

대부분의 시력저하는 후천적 근시가 원인이다. 가까운 곳을 오래 주시하게 되면 카메라의 필름에 해당하는 눈의 망막이 변성되거나 위축된다. TV도 모자라 컴퓨터와 핸드폰을 하루종일 끼고 사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의 눈은 방황할 여지가 없다. 시야에 여백이 생길 틈이 없다. 눈길이 갈 곳을 잃는 순간 그들은 불안해진다. 가공의 이미지더미에서 벗어나는 순간 잽싸게 비집고 들어오는 현실은 낯설고 황량하다.
안경은 필수품이 되었다. 아주 어린 꼬마가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 더는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점차 이 필수품이 서서히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뜨거운 음식을 먹을라치면 뿌옇게 김이 서려오는 안경알. 하루종일 눈과 코 사이를 짓누르는 코받침. 걸핏하면 힘없이 흘러내리는 안경대까지.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하루종일 안경과 사투를 벌인다. 그리고 점점 지쳐간다. 

그때부터 슬슬 안경으로부터의 도피가 시작된다. 렌즈와의 외도를 벌인다. 하지만 안구 표면에 찰싹 붙은 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렌즈는 마치 걸핏하면 아내와 이혼하라며 발목을 부여잡는 일일드라마 속 불륜녀같다. 결국은 렌즈에게서도 도망간다. 이제는 만악의 근원이 되는 망막의 표면을 직접 손보기 시작한다. 깎거나(라식), 불려서 긁어낸다(라섹). 


하지만 이러한 도피는 10대 시절에는 쉽게 용인되지 않는다. 10대의 대부분을 무력한 미성년
자이자 지루한 학생 신분으로 보내는 이들에게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허락되는 것은 입시 준비다. 이제나 저제나 안경은 그들이 공부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는 것, 아니 삼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표다. 정작 그들의 눈은 책보다는 핸드폰 액정을 훑는 데 익숙한데, 부모와 학교는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다. 입시 준비를 제외한 모든 것이 유예된다. 

그러다 입시가 끝나는 순간, 그리고 20대가 되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진다. 달라져야만 한다. 
이제 청춘이라는 이름의 20대는 교실 구석에 쳐박혀 공부에만 얽매여서는 안 된다. 책상머리에만 앉아있으면 안 된다. 좋든 싫든 밖을 내다봐야 한다. 그렇게, 안경과의 이별은 ‘허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