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여름, 날은 더웠고 마음은 급했다. 나는 당시 대학 언론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찍고 있었다. 대학 언론의 환경은 갈수록 척박해져만 갔다. 잦은 구성원의 이탈로 인한 고질적 인력난과 대학의 부속기관이라는 명목으로 기사는 학교 입맛에 맞게 길들여졌다. 학생인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므로 학내 언론에도 편집권과 기자들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그런 꿈 같은 주장을 담기 위해 ‘고함20’이라는 인터넷신문에 취재 요청을 넣었다. 고함20은 20대가 직접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서 해당 홈페이지에 올리는 매체라고 했다.

그럼 이 단체에서 중요한 결정은 누가 내리나요? 라는 질문에는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회의를 통해 모든 의결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율과 비영리라는 멋진 단어가 ‘지속 가능성’까지 포용하기란 어려운 일임을, 그들은 이를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은 웹 상에서 자취를 감춘, ‘10대 언론’을 표방하던 ‘바이러스’라는 인터넷신문 역시 글을 편집하거나 인터넷 사이트를 관리하는 운영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10대로 구성돼있었다. ‘바이러스’라는 매체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를 넘기지 못하고 없어졌다. 

고함20에 속해있는 5명의 기자를 인터뷰했고 영상에 담았다. 그들은 말할 자유를 ‘고함칠 권리’라는 말로 설명했다.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고함20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인터뷰 당시 그들이 말한 자율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떤 기사를 쓰게 만들 수 있는지가 가장 선명하게 남았다. 그들이 쓰는 기사는 그들의 의결 과정과 닮아있었다.

1년 뒤 나는 속해 있던 대학 언론 기관에서 나와 고함20과 함께 하게 됐다. 사무실은 명동 성당 옆 삼일대로, 그 앞 언덕과 몹시 좁은 계단을 몇 번이고 올라가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삼일대로 앞에서 1년이 다시 흘렀다. 그 동안 스무 편의 기사를 썼고 그보다 더 많은 회의를 거쳤다. 

좋은 기사를 썼다 자부할 수는 없지만, 한 편도 그냥 흘려 보내지는 않았다. 고함20의 많은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무엇을 써야 하는지, 어떤 것을 가장 잘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속에서 쓰여진 결과다. 

고함을 그만 둘 때가 돼서야 알았다. 어떤 사회적 단면에 답해야 하는지를 끙끙거리며 글로 고함칠 자유가 일정 부분 사라졌다는 걸, 이 역시 다른 의미의 고함이었다.
 

 

2014년 새해를 맞아 고함20에서는 새로운 기획을 여럿 준비하고 있다. 모두 구성원 간의 치열하고 끈끈한 논의를 거칠, 무엇보다 ‘돈 안 될 법한’ 결과물이다. 


3년 전에도, 그리고 고함20과의 이별을 눈앞에 둔 지금도 이 매체는 한결 같다. 처음 고함20의 구성원을 만났을 때와 지금의 고민 지점이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고함20은 5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사회의 어떤 이해 관계 혹은 자본과도 부합하지 않는 매체가 오로지 구성원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사회적 가치라는 말이 우스워 더는 하잘것없이 느껴진다고 해도 고함20의 구성원들은 그 철 지난 가치 혹은 고함20이 지금껏 어떤 단체였고 앞으로 어떤 단체가 돼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그들의 질문이 마침내 사회적 지향을 획득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절차적 과정과 그들이 바라보는 사회가 일치할 수 있기를, 고함과의 이별을 앞두고 이토록 오지랖을 펄럭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