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취업 준비 연령이 낮아진다고들 말한다. 4학년이 되어서야 취업 원서를 준비하기 시작하던 시절은 옛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청년 고용률이 사상 처음 30%대로 내려앉은 가운데, 취업 준비 연령의 출발선 역시 내려앉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이 처한 각박한 현실과 취업한파를 목도하는 순간 새내기는 더 이상 새내기가 아닌 예비 취업준비생으로서의 위치를 자각한다.

 


 

영남권 5개 시·도 교육청은 대입 수능시험을 치른 고3 학생들이 여유 시간을 활용해 조기에 대학 학점을 취득할 수 있도록 ‘고교-대학 연계 학점인정 프로그램(AP)’을 운영하고 있다. 고3 학생이 도내 대학에서 강좌를 수강하면 영남권 27개 협약대학 가운데 어느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이수한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때 개설되는 강좌의 범주는 교양 과목 전반이라고 기술되어 있으나 대부분 토익입문이나 영어회화 과목에 쏠려 있다. 대학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학문 세계를 미리 맛본다는 천진난만한 기존의 취지와는 사뭇 다르다. 대학이 지식의 상아탑이 아닌, 취업 양성소로 기능하게 된 현실 속에서 해당 프로그램은 일종의 선행학습을 연상시킨다. 컨텐츠만 ‘취업 준비’ ‘기본 스펙’으로 옮아갔을 뿐 이제는 대학 과정까지 선행학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영어회화 과목을 수강했던 박효은 양은 “여기저기 대학 입학 전에 미리 해두면 좋다는 것들을 조언해주었다. 입학 전까지 붕 떠버린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외국어 영역 머리가 굳기 전에 토익 점수부터 따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운영되는 프로그램은 사전 조사와 수강 신청 현황으로 해마다 변경되고 있다. 고교생의 수요가 스펙에 맞춰지기 시작하면서 강의 목록 역시 해가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07년에는 ‘15일간의 세계 영화 산책’ ‘우리들을 위한 솔로몬의 선택법’ ‘화학의 현재와 미래’과 같은 일반교양 과목을 찾아볼 수 있었으나, 2008년 들어 영어 관련 과목이 개설 강좌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서(총 24개 중 15개) 일반 교양과목은 개설되지 않았다. 영어 관련 강좌가 아닌 경우에는 일본어, 중국어 등의 제2외국어나 논술, 컴퓨터 자격증 과목 등이 소수 개설되었을 뿐이다.

 


 

한편 2011년에는 총 23개 강좌 중 영어와 관련 없는 8개 강좌가 수강인원 미달로 폐강되는 일도 있었다. 영어회화, 토익입문, 영문법 등 영어 관련 강좌에는 수강 신청 인원이 많아 분반까지 되는 가운데, 제2외국어나 일반 교양과목은 고교생들로부터 인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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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강좌의 성황과 연이은 일반 교양강좌 폐지

 


 

현재 경남대, 경상대, 창원대에 개설되어 있는 강좌 역시 생활영어회화, 토익입문 과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어 관련 강좌의 비중이 늘어가고, 일반 교양수업이 외면 받는 것은 예비 대학생들의 선택이 사회의 요구와 필요에 맞춰 이루어진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학 입학 전 겨울방학이 놀 궁리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은 물론, 자발적으로 선행학습에 뛰어드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2012년에 토익입문 과목을 수강한 김지현 양 역시 “입시가 끝나고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문득 이대로 주어진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수시 합격을 한 상태에서 이미 토익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학점도 미리 이수할 수 있다는 말에 먼 거리였지만 수강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입시 경쟁에서 한숨 돌린 고교생들은 다시금 예비 대학생이라는 지위를 부여받고, 또다시 출발 선상에 선다. 다시 말해 입시의 압박이 취업, 스펙의 압박으로 옮겨가 본격적인 대학 생활을 위한 준비 운동을 시작한다. 대학 입학 전까지의 공백기를 맞아 취업 레이스를 향한 신발끈을 조여 묶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