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시민이 만들었다. 10억 원의 제작비부터 배급, 마케팅비용을 모두 크라우드펀딩과 개인투자로 감당했다. 상업영화로는 우리나라 최초 사례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故황유미씨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다 보니, 선뜻 영화를 만들겠다는 투자사나 배급사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은 영화의 제작을 넘어 개봉 후 관객몰이에도 발 벗고 나섰다. 여러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연예인, 개인이 단체관람을 주도하고 있다. 턱없이 적은 개봉관 수 탓에 외압논란까지 불거진 상황에서 ‘또 하나의 약속’이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이유다. 2월 10일 오후 2시 이수역 아트나인에서 열린 ‘또 하나의 약속’ 상영회 역시 시민단체와 대학원생 단체가 함께 만든 자리였다. 상영회 후에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 황상기씨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를 표방하는 시민단체 반올림의 상임활동가 임자운 변호사가 참여한 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임자운 변호사, 영화의 실제 주인공 황상기씨, 이종란 노무사ⓒ고함20

이날 행사는 ‘반올림’과 서울대 로스쿨의 인권법학회 소속 소모임인 ‘산업재해노동자들과 소통하는 모임’, 줄여서 ‘산소통’이 주최했다. 산소통의 황호경 씨는 “애초엔 소모임 차원에서 단체관람을 하려고 했다. 상업영화관 두 곳에 문의를 해봤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한 상영관을 통째로 대관해야만 단체관람 후 황상기 씨와의 간담회까지 할 수 있었다. 단체관람에서 대관으로 외양이 커지며 반올림과 함께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다.”라며 상영회를 열게 된 계기를 밝혔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눈물로 가득했던 두 시간의 상영 후 열린 간담회에서는 여러 참석자가 ‘이 장면이 진짜냐’는 질문을 던졌다. ‘사실이 아니’라는 대답은 없었다. 그만큼 믿기 힘든 내용이 많았다. 황상기씨는 청중에게 삼성 측의 故황유미씨에 대한 사직 요구와 재판 과정에서의 증인매수, 합의금이 최초 500만원에서 10억 원 이상으로 올랐던 일화를 차분하게 소개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반올림 상임활동가 임자운 변호사는 “영화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대사까지 상당부분 실제 있었던 일이다.”라고 얘기해 청중을 놀라게 했다.


이들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황상기씨 등 피해자 8명이 제기한 소송은 현재 항소심이 고등법원에서 3년 째 계류 중이다. 또 한명의 영화 속 실제 주인공 이종란 노무사는 상영 직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故황유미씨만이 아니라 200여 분의 제보자와 어렵게 산업재해 신청을 한 40여 분 등 많은 노동자가 함께 싸우고 노력하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좀 더 많은 힘이 모여서 조속한 시일 내로 사건이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하며 이 영화에 거는 기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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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사자들의 바람과 달리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또 하나의 약속’은 관객 70만 명을 돌파해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목표 관객 수는 300만 명이다. 그러나 이를 달성하기엔 상영관 수가 너무 적었다. 임자운 변호사는 “개봉 전 배급사 관계자가 영화를 본 후 300관 정도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상영관 수는 100여개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산소통의 사례처럼 적은 상영관 수 탓에 단체관람조차 쉽지 않다. 지나치게 적은 상영관 수는 개봉 전 외압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단체관람 열풍이 생겨난 계기가 되었다. 


시민들의 노력으로 ‘또 하나의 약속’은 악조건 속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상영관 수는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중 9위지만 박스오피스는 4위다. 5위인 ‘프랑켄슈타인’보다 상영관 수가 절반인 상황에서 이뤄낸 쾌거다. 높은 좌석점유율 덕에 느리지만 상영관도 늘어나고 있다. 임자운 변호사는 “애초 예상치인 300관 정도에서만 개봉했어도, 손익분기점인 70만 명은 개봉 첫 주에 넘겼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올림은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영화 이후에도 이어갈 계획이다. 현재 삼성의 성실한 교섭 참여를 촉구하는 다음 아고라 서명운동과 3월 6일 故황유미씨의 7주기 추모문화제 홍보, 반올림 후원회원 모집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영화의 사실관계를 엮은 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이고, 단체관람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