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레이 찰스는 싱글 ‘Hit the Road Jack’을 히트시켰다. 스티비 원더는 ‘리틀 스티비 원더’라는 이름으로 11살의 나이에 데뷔했고, 영국에서는 비틀즈가 새 멤버 링고스타를 영입하며 정식데뷔의 서막을 올렸다. 수많은 앨범이 뜨고지며 음악이 풍성히 열렸던 그 해에 ‘르윈 데이비스’ 역시 ‘가스등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음식이 입에서 씹혀 목구멍을 넘어가고, 식도를 지나고, 위에 안착하는 과정이 생생히 느껴질 때가 있다. 수업시간이나 업무시간이 아닌데도 시계를 보며 세월을 곱씹는 순간이 온다. <인사이드 르윈>은 역동적인 짜임새는 없지만, 물 흐르듯 지나가는 시간이 구석구석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영화다. 
일반적인 ‘오디션’에서 연상 되는 극적인 지점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음악 영화 특유의 잔잔한 로맨스도 없다. 영화 포스터로 기대하게 되는 희망찬 의지도, 웃음거리도 적다. 이야기도 인물도 영화 전반을 휘감는 포크송에 맞춰 정적으로 지나간다. 스크린에서 그나마 활발한 존재는 주인공 르윈이 돌보는 고양이 ‘율리시스’다. 주변에서 르윈에게 쏟아내는 잔소리를 대신하듯, 율리시스는 호박색 눈으로 르윈을 지켜보기만 한다.

율리시스와 함께 지하철에 앉아있는 르윈. ⓒ인사이드 르윈 스틸컷
 
그는 특별히 착하지도 성실하지도 않다. 고양이도 억지로 맡아 돌보던 참이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누구보다 무책임하고 철없는 인물이다. 미래의 저작권료보다 당장의 현금이 급한 포크 뮤지션 르윈은, 늘 돈과 잘 곳을 빌려야 한다. 자신을 키워줄 의지가 없는 소속사 사장을 닦달하러 다니는 일도 해야한다.
영화는 그런 르윈에게 고정 거주공간이 없다는 점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기다림은 그래서 르윈에게는 안정의 다른 이름이다. 몇 시간을 내리 운전하는 것이 피곤하지만 비바람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선택이며, 오디션을 기다리는 동안 클럽에서 잠시 목을 푸는 것 역시 휴식이다. 아는 이들과 가족의 집에 들러 이것저것 부탁하러 다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정류장에 내렸다 타기를 반복하는 승객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러나 영화가 담당하는 것은 르윈에 대한 연민이 아니다.
내면과 외면의 봄을 위해 르윈은 콜롬비아 레코드라는 버스를 타야 했지만, 영화에 그런 탄탄대로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르윈이 코트가 없어 겉옷 깃을 계속 여밀때도, 오디션을 위해 눈에 꽁꽁 언 발을 참아야 하거나, 끝내 고양이를 무시하고 떠나야 할 때도 코엔 형제는 동정표를 끊어주지 않는다. 어두운 길을 계속 달려봐도 ‘시카고’까지 3시간이나 더 가야 할 때쯤 관객은 깨닫게 된다. 르윈에게 봄은 올 수도,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르윈에게는 가스등 클럽에서의 공연이 가장 규칙적인 일상이다. ⓒ인사이드 르윈 스틸컷
 
그렇게 영화는 르윈에게 어설픈 꽃길과 가시밭길을 번갈아 깔아주는 것 대신 관조를 선택한다. 거듭되는 르윈의 노래에 관객은 그의 부귀영화나 금의환향에 대한 기대감을 불쑥 마주한다. 영화는 줄 듯 말듯 그런 관객의 긍정적인 바람을 못본 체 하고만다. 그 시선은 짖궃다기 보다는 겸손하다.
한때 삶의 이유였던, 무엇도 침범할 수 없을것 같았던 음악을 르윈은 비웃기도 한다. 그가 조롱하는 누군가의 열망은 음악을 시작했을 당시 스스로의 모습인 듯 하다. 삶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 르윈의 시간 역시 현실과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족된다. 울 핑계가 필요하다면, 신파적 스토리가 부담스러운 때라면 지금 이 영화를 선택해도 좋다. 다만 이 풍경을 슬픔 만으로 설명 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