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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를 고대라 부를 수 없는 내가 ‘서자(庶子)’ 같다”

 


대학교 본교와 분교의 해묵은 논란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기 위해 분교생을 인터뷰했다. 인터뷰이는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김정윤(22) 씨. 본교생과 함께 학보사 활동을 하고 본교에서 이중전공을 공부하면서 본교와 분교 양쪽에서 많은 경험을 했을 그에게 ‘분교’와 ‘학벌’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었다. 정윤 씨의 생각을 모든 분교생의 생각으로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본교생이 분교에 가지는 인식이 제각각이듯 분교생의 인식도 제각각일 수 있음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고대신문

Q. 분교에 재학 중이다. 진학을 결심한 과정은 어땠나. 학벌에 대한 욕심이 있었나.

순전히 학벌에 대한 욕심으로 세종캠퍼스에 진학했다. 아들의 대학이야기가 나왔을 때 머뭇거리실 부모님의 모습이 싫었다. 당시 지원 가능한 대학 중엔 숭실대, 상명대, 단국대 등도 있었지만 연세대 원주캠퍼스, 고려대 세종캠퍼스, 건국대 충주캠퍼스에 원서를 넣었다. 교수진이나 커리큘럼, 학과의 수준 같은 건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명문대’라는 타이틀이 갖고 싶었다. ‘그래도 명문대’라는 생각이 우선했던 것 같다.

Q. 당시로 돌아가 다시 원서를 쓴다면 어떤 결정을 할 것 같나.

절대 분교는 지원하지 않을 거다. 분교라는 틀에 갇혀 주눅 들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가 않다. 본교로 진학했다면 지금과 같은 인터뷰를 할 필요도 없었겠지. 비꼬는 건 절대 아니다.(웃음) 지금은 분교 스트레스를 극복했지만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었다. 과거로 돌아갔을 때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선택이 분교가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Q. 명문대 타이틀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입학했다. 그 환상은 여전히 유효한가.

결과적으로 말해 유효하지 않다. 그 타이틀은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대한 건 ‘고려대 안암’이었는데 현실은 ‘충남에 위치한 지방대생’이라는 걸 알게 됐다. 환상이 컸던 만큼 패배의식에 사로잡혔다. 대학에 들어온 첫 학기는 그 ‘갭’ 때문에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분교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나를 괴롭혔다. 분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걸 어렴풋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겪어보니 또 다르더라.

Q. 겪어보니 어떻게 다르던가.

우선 외적인 차이를 확연히 느꼈다. 학교 시설이 부럽더라. 개인적으로는 지리적 요건이 가장 부러웠다. 지하철이 있어 어디든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점 말이다. 문화생활을 즐기기에도 훨씬 좋고. 여러모로 세종캠퍼스보다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학생 수준은 내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차이가 느껴지긴 했다. 본교 학생들의 학문에 대한 열의가 더 강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학회의 수 등도 본교가 압도적이고. 학교 주최든 학생 주최든 외부인 초청 강연도 분교에선 드물지만 본교는 잦더라.

Q.
그런 차이 때문에 본교에서 학보사 활동과 이중전공 공부를 하게 된 건가.


학보사 활동은 개인적으로 언론에 관심이 있어서 시작했다. 분교에 있었다면 분교에서 했겠지. 다만 이중전공(철학과)을 선택할 땐 ‘본교에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작용했다. 본교에만 있는 학과들 중에서 평소에 가장 관심이 있었던 철학과를 고르게 됐다.

Q.
학보사 활동을 하면서 본교와 분교의 차이를 느꼈다고 들었다.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제도를 취재하게 됐다. 본교와 분교 양쪽을 모두 취재하면서 학교 조직의 체계나 구성이 본교가 우위에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본교 직원들이 학생들을 위해 진정으로 뭔가 해보려고 하는 것이 느껴진다면 분교 직원은 ‘본교에서 시키니까 해야지’라는 느낌? 본교에는 있는 학교 조직이 분교에는 없는 것도 있었고. ‘이런 차이가 교육의 질로 연결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Q. 학교 밖에서 분교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경험이 있나.

학보사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이들 중 일부는 내가 분교생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태도가 바뀐다. 본교 교수님을 인터뷰하러 갔는데 세종캠퍼스라고 소개하니 태도나 말씀하시는 것 등이 은연중에 바뀌더라.

Q. 사회에서 본교와 분교를 차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차별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입학 당시의 성적에 차이가 있기도 하고, 차별 자체가 비단 학벌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깔린 문제기 때문에 이 차별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받는 차별이 차이에 근거한 정당한 차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지금 분교생에게 가해지는 시선은 차이에 비해 과하다. 본교생들이 분교생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어느 정도 우월주의에 빠져 있고.

Q. 본교생과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

분교생을 싫어하는 일부 본교생이 있다. 소속변경제도를 이용해 본교에서 공부하게 된 학생들에게 ‘학벌세탁’ 딱지를 붙이는 식이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에게 오히려 물어보고 싶다. 4학기 내내 학점 4.4 이상을 유지하고 토익 만점과 면접을 거쳐도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본교에서 공부하려는 마음 하나로 버티는 건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건가.

Q. 차별의 근간에 깔린 ‘학벌주의’에 대해선 어떤 생각인가.

학벌주의는 학벌주의를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2년 전 고려대라는 타이틀만 보고 원서를 넣었던 나는 학벌주의의 피해자였다.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학벌의 제약을 극복하고 능력을 발휘해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많이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 내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나의 능력을 쌓을 수 있을까’다. 내가 학벌주의를 믿지 않으니 학벌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다들 나처럼 생각하면 학벌주의가 없어질 것 같기도 한데.(웃음) 취업할 때 되면 생각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Q. 본교와 분교의 관계를 정의한다면.

‘적자(嫡子)와 서자(庶子)의 관계’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 아버지는 같지만 불편한 관계. 엄청난 능력을 가진 적자와 항상 비교당하는 서자, 문제를 일으키면 필요 이상으로 비난받는 그런 서자가 분교 같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는 분교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중앙일보의 대학평가에서 종합 12위를 차지했다. 다른 대학교의 분교도 에리카캠퍼스처럼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교 구성원들이 분교를 얕잡아 보는 사회적 인식에 상관없이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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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리

    2014년 3월 4일 09:38

    후배님이네요! 저는 객원기자 파이리입니다. 제게 지면을 준다면
    다른 시각의 기사를 써볼게요! 다양한 의견을 지니는 게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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