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하는 박노해 시인의 ‘시선’을 공유할 수 있는 사진전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다른 길’이라는 타이틀의 사진전에서는 박노해 시인이 지난 14년간 티베트, 인도, 버마, 라오스, 파키스탄에서 만년필과 35mm흑백필름카메라만을 가지고 찍은 사진과 짧은 글들을 함께 보고, 읽고, 느낄 수 있다.


노동운동가, 시인, 사진작가 박 노 해


보통 사진작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여는 사진전이지만, 이번 사진전에서는 ‘시인’이라 불리는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이다. 사실 그는 시인이라 불리기에는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던 사람이다. 박노해 시인의 본명은 ‘박기평’이다. 박노해라는 이름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위하여’의 줄임말로 그가 가진 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고등학교 졸업 후 여러 분야의 노동자로 일하던 그는 1984년 당시 100만부 가까이 발간된 <노동의 새벽>을 통해 천민 노동자를 이야기했다. 이를 계기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된 박노해 시인은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년을 복역하게 된다. 옥살이 중에서도 <참된 시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펴낸 그는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사로 출소하게 된다.
 
그 이후 정치권 혹은 사회운동에 힘쓸 것이라 여겨졌던 세간의 기대를 저버린 채 2000년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홀로 세계 빈곤지역을 돌아다니며 평화운동 등을 펼치다가 2010년부터는 한국으로 돌아와 시인, 사진가, 진보운동가 등으로 활동 중에 있다. 2010년 이후 박노해 시인은 첫 사진전 <라 광아>와 <나 거기에 그들처럼>을 열며 활발히 사진가로써 활동하였는데, 이번 ‘다른 길’사진전은 아시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고, 읽고, 들을 수 있는 ‘다른 길’


‘다른 길’사진전에서는 다른 사진전이 갖춘 오디오 가이드가 없어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오디오 가이드가 없어도 되는 이유가 있었다. 이는 작품 옆에 자그마한 글이 함께 있어 작품에 이야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도슨트의 시간을 맞추기도 힘들뿐더러, 오디오 가이드 또한 추가적인 비용이 필요해서 구매를 망설일 때가 있는데, 짧은 글만 읽어도 충분히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박노해 시인의 사진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짧은 글도 좋았지만 전시회장 전반적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배경음악도 좋았다. 전시장 내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박노해 시인이 직접 고른 음악들로 채워진 배경음악에 대한 반응이 좋아 게시판에 따로 링크(http://anotherway.kr/board/free/810)를 올려놓았다고 했다. 이처럼 ‘다른 길’에서는 사진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읽고 들을 수 있는 자그마한 배려가 사진전의 질을 높여주고 있었다. 버마, 인도, 파키스탄, 라오스 등 아시아에서도 아직 잘 살지 못하는 나라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전이기에 흑백사진과 그에 맞는 박노해 시인의 글, 그리고 이에 어울리는 배경음악 등은 그 나라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는 듯 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미숙한 전시회장 관리와, 성숙하지 못한 관람에티켓의 합작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한국 순수예술의 요람으로 불렸던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사진전이었고, 사진전의 수준 또한 높았지만 그에 걸맞은 세종문화회관 측의 관리와 관람객의 에티켓은 찾을 수 없었다. 세종문화회관 측에서는 관람객들에게 입장 전에 사진촬영 가능하지만 촬영 음을 무음으로 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하지만 전시회장에는 디지털카메라 혹은 DSLR의 셔터 음부터 스마트폰의 촬영 음까지 더해져 소음공해로 관람을 방해하였다. 심지어 사진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을 비키게 하여 DSLR카메라로 모든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사진전을 감상하러 온 것인지, 사진을 찍으러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세종문화회관 측에 이런 문제에 대해 문의해보니 “이번 사진전은 스폰서도 없을뿐더러, 따로 광고도 하지 않아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홍보해 주십사 하고 사진촬영을 허용하고 있다. 평일에는 어느 정도 관리가 되는데 주말에는 관리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라며 관리의 잘못을 일부 인정하였다. 관람객에 대한 관리가 되지 않는다면, 사진촬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사진촬영이라는 주최 측의 호의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관람매너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사진전 살펴보기 


 

주인을 위로하는 말 ⓒ박노해


 


“황하가 처음으로 몸을 틀어 아홉 번 굽이쳐 흐르는 황하구곡제일만 언덕에서 관광객을 말에 태워 산정 전망대까지 데려다 주는 티베트 여인. 종일 숨찬 걸음에도 손님을 태우지 못한 모양이다. 집에서는 가족과 아이들이 기다리는데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붉은 석양이 무거워 여인을 능선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오랜 동료이자 식구인 말은 손님을 태우지 못한 자신의 등이 미안해서인지 고개 숙여 주인을 위로한다.”


노래하는 다리 ⓒ박노해


“인레 호수 마을과 고산족 마을을 이어주는 이 나무다리는 매년 우기 때마다 휩쓸려 나간다. 장마가 끝나면 여러 소수민족이 함께 모여 다시 다리를 세우고 잔치를 벌인다. 해마다 새로 짓는 나무다리의 역사를 따라 서로의 믿음 또한 시간의 두께로 깊어진다. 오늘도 이 다리를 오가는 다양한 발걸음들은 마치 오선지 위에 어우러진 음표들처럼 가슴 시린 희망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함께하는 혼자’로 진정한 나를 찾아 좋은 삶 쪽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는 분명. 다른 길이 있다.”


 

내가 살고 싶은 집 ⓒ박노해


 


“높고 깊은 산맥에 소중히 숨겨진 기쿠치 마을. 흰 만년설과 푸른 하늘과 붉은 흙집과 노란 나무가 저마다의 색깔로 빛나는 가을날. 남자들은 산 위에서 야크를 치고 땔감을 구하고 여인들은 양털을 자아 옷감을 짜고 빵을 굽는다. 따사로운 가난마저 고르게 빛나는 마을. 단순하고 단단하고 단아한 작은 흙집. 마음까지 환해지는 내가 살고 싶은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