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생동하는 계절, 봄이 왔다. ‘새로움’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3월의 첫째 주에 푸릇함과 잘 어울리는 젊은 에디터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가 가방에서 꺼내놓은 것은 3가지 크기의 동일한 책. “출판사 아티초크에서는 국내 최초로 3가지 판형으로 책을 제작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최초’가 한둘이 아니다. 그녀가 풀어놓은 신세대적 출판사의 이야기는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갓 돌을 맞이한 신생 출판사 ‘아티초크’의 박준 에디터를 소개한다.

박준 에디터가 3가지 판형의 책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고함20
아티초크의 아이디어: 책은 라이프스타일의 동반자다
아티초크는 2009년부터 출판사를 구상해오던 박헬렌 대표에 의해 2012년 2월 시작된 출판사로, 박준 에디터는 프리랜서로 기획 과정에서 합류하게 됐다. 미술 교사이던 박씨는 평소 디자인과 출판, 특히 책 제작과 인쇄 과정에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꼭 책을 만들어보겠다던 꿈을 아티초크와 함께 실현한 셈. “출판 디자인을 공부하려고 혼자 강의를 듣고, 인쇄소에도 여럿 돌아다녀봤어요. 그러던 중 운 좋게 합류하게 되어 에디터 일을 하게 됐죠.”
크지 않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아티초크의 목표는 확실했다. ‘편안하게 나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오락으로서의 책.’ 박 에디터는 책이 더 이상 지식과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읽고 즐거이 소장할 수 있는 일상적인 ‘아이템’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제작할 때에도 디자인에 가장 공을 들였다. “독자들마다 책 읽는 스타일이 있어요. 예를 들어 누구는 핸드백이나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책을 읽고, 누구는 쇼파에 누워 장시간 읽죠.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서 책을 만들었어요.”
이것이 바로 ‘3종 사이즈 책’이 탄생하게 된 경위다. 올해 2월 아티초크가 내놓은 첫 책 <꿈 속의 꿈(애드거 앨런 포우 시 선집)>은 실제로 포켓 / 레귤러 / 라지 사이즈로 개별 제작됐다. 주로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층을 타겟 독자로 선정했다. 한국에서 드물게 쓰이는 판형이라 제작비용이 꽤 많이 들었을 법도 한데, 에디터는 다들 그런 걱정을 하더라며 웃었다. “생각보다 비용은 훨씬 덜 들었어요. 내지로 기존의 다수 책에 쓰이는 반짝거리는 종이를 쓰지 않았고, 거추장스러움을 덜고 그립감을 좋게 하기 위해 띠지와 책날개를 없앴죠.” 
제작비용이 높지 않아 가격이 합리적으로 조정될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티초크는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 납품하지 않고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바로 책을 구매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직영’ 스토어를 운영한다. 유통구조를 최소화했기에 비싸지 않은 가격(6,900원)에 1권만 구매해도 무료 배송이 가능하다. 물론 ‘자기 색깔이 확실한 서점’ 몇 군데에는 납품을 하고 있으며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전화나 모바일 주문 등 판매 방식도 다변화할 계획.
디자이너와 필자들은 주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으며, 판매와 홈페이지 관리 등은 에디터가 맡아 하고 있다. 업무가 많지 않냐는 물음에 박씨는 “직접 하는 게 힘들기는 한데, 그렇게 해야 최상의 품질로 제공해줄 수 있어요. 어디서 어떤 문제가 터질 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최대한 빠르게 대처하는 데에는 장점이라고 봐요.”라며 쾌활하게 답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면 그것에 대해 굉장히 많은 준비가 필요한데,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각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는 그녀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가면 ‘놀 수 있다’?
대형 서점을 통해 책을 팔지 않으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홍보하는 데 골치가 아팠을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에디터는 “당연하다”고 답했다. “처음 판매를 시작할 때 주변 분들이 홍보 방법으로 SNS를 적극적으로 추천하셨어요. 그런데 페이스북의 ‘좋아요’나 트위터의 ‘리트윗’ 기능으로 좀 더 알려지기는 해도, 바로 구매로 연결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홈페이지 꾸미기’다.
아티초크의 홈페이지(www.artichokehouse.com)에 들어가보면 마치 팝컬쳐 웹진처럼 다양한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공진호 번역가가 한국인의 영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재 ‘브로큰 잉글리시’를 비롯해, 영화와 관련된 에세이와 소설을 다루는 ‘뜨거운 것이 좋아’, 라이프 스타일의 소소한 아이디어와 간단한 요리 레시피를 제공하는 ‘선데이 하이쿠’, 저자부터 일반 독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코너 등등. 필진 섭외가 완료되면 총 6개의 카테고리로 이루어질 ‘아티초크 저널’은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바로 구독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아티초크는 단순히 활자를 인쇄하고 배급하는 출판사가 아니라, 다양한 아이디어로 가득 찬 재미있는 창고 같이 느껴진다. “젊은 층도 지루해하지 않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감각적으로 구성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책과 관련된 인물이나 영화, 음악까지 다룰 수 있도록 리서치에 정말 공을 들이고 있어요. 저희의 아이디어를 다함께 즐길 수 있도록 일종의 구독 시스템을 구축한 거예요.”
이번에 출간된 첫 책의 주인공 애드거 앨런 포우를 비롯해, 앞으로 한 달의 주기를 두고 하나씩 출간될 작가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아티초크만의 의미를 부여했다. “문단을 넘어서 대중이 가장 사랑한 작가들이에요. 단지 글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다양한 부분에서 많이 재탄생했으니 그만큼 팝 컬쳐에 영향력이 컸던 거죠. 그건 그 작가들이 그만큼 대중과 적극적으로 교류한 셈이에요. 대중과 밀착해 소통하려 했다는 점에서 아티초크가 지향하는 바와 연결되죠.”
실제로 애드거 앨런 포우의 추리 소설은 한국에서도 유명하고, 그의 시들은 영화 <인셉션> 에 인용된 것(“우리가 보고 믿는 모든 것이 꿈 속의 꿈일 뿐인가요?”)을 비롯해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유쾌한 패러디로 재조명되기도 했다. 아티초크는 이렇듯 이곳저곳 산재한 이미지들에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시 선집에는 영화 스틸컷을 비롯해 포우의 사진들, 관련된 그림이 60여 점이나 포함되어 있다. 서문 또한 문학 평론가가 아닌 황인찬 시인이 썼다고 하니, 통념을 타파하는 유쾌한 시도들이 아닐 수 없다.
박준 에디터는 대중문화에 한 획을 긋고 싶다는 포부가 있느냐는 물음에 그런 표현은 너무 거창하다고 말했다. “사실 아티초크가 한국 출판계에서 새롭게 시도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에요. 저희의 이런 도전이 천천히 습관이 되어 사람들에게 구석구석 파고들었으면 좋겠어요.”
아티초크는 다음주부터 “책 한 권은 마끼아또 한 잔”이라는 첫 캠페인을 시작한다. 커피 한 잔처럼, 종이책 한 권도 바쁜 일상 속에서의 여유와 멋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커피와 함께 저희 책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려주시면 선불제 카드를 드릴 거예요.” 이렇게 ‘깨알’ 같은 이벤트라니, 아티초크답다.
“아티초크의 비전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책과 독서는 내 스타일대로!”라는 박준 에디터의 말처럼, 지금 서점에 가서 제목과 작가, 디자인이 ‘딱 내 스타일’인 책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리하여 독서가 무언가를 깨우쳐주는 무거운 계몽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멋지고 지혜로운 친구”임을 스스로 발견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