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대학 근처의 식당가에선 함께 밥을 먹으며 친해지려는 선‧후배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문화가 활발한 고려대에는 선‧후배간의 식사 약속을 가리키는 ‘밥약’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선‧후배간의 친목을 쌓기 위해 시작된 밥약엔 어느 정도 정형화된 공식이 있다. 밥은 선배가 샀다면 후식은 후배가 사는 식이다.


이제 막 선배가 된 대학 2년차 김상혁(고려대 사회학2‧21) 씨는 그 공식에 ‘기부’를 집어넣어 보기로 했다. 선배가 밥을 사주면 후배가 1000원을 기부하는 ‘착한밥약’ 캠페인은 그렇게 탄생했다. 개강 후 첫 일요일인 9일, 착한밥약 기획팀의 상혁 씨와 김혜린(고려대 사회학2‧20) 씨를 인터뷰했다.

고려대 사회학과반 과실에 부착된 착한밥약 안내문 ⓒ고함20

– ‘착한밥약’ 캠페인이 뭔가요?

‘착한밥약’ 기획팀(착한밥약) : “선배에게 밥을 얻어먹은 후배가 1000원을 기부하는 거에요. 방법은 간단해요. 캠페인에 참여하고 싶은 후배가 밥약을 잡으면서 ‘착한밥약’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거죠. 기부는 선배와의 밥약 후에 인터넷 모금함을 통해 하면 되고요. 모금액은 저소득층 학생들의 진로교육을 위해 쓸 예정이에요. 학생들의 돈을 모은 것인 만큼 교육과 관련된 곳에 쓰고 싶었어요.”

– 밥을 먹는 것과 기부를 하는 것엔 어떤 관계가 있죠?

착한밥약 : “밥약은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가 아니잖아요. 낯선 선후배가 만나서 밥을 먹으며 친해지는 즐거운 과정이 모두 밥약의 일환인데, 그 과정의 즐거움을 기부로 돌려보자는 거죠. 우리가 즐거운 만큼 사회도 조금 더 즐거워질 수 있도록 하자는 거에요. 보통의 기부가 슬픔과 동정심에서 나오는 것과는 정반대죠.”

– 어떻게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나요?

착한밥약 : “원래부터 기부 문화에 관심이 있었어요. ‘비카인드’라는 모금 사이트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고요.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일상을 기부와 연결시킬 수 없을까 생각하다 착한밥약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비카인드는 개인이 생일을 맞아 공약을 내걸고 모금을 하도록 돕는 사이트다. 비카인드를 활용하면 기부하려는 사람이 기부할 대상을 찾아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착한밥약 캠페인은 비카인드를 통해 진행 중이다.


기획팀이 캠페인을 구상한 시점은 개강이 얼마 남지 않은 2월 중순이었다. 친한 선배와 동기에게 의견을 물었다. 2월 말에는 새내기 새로배움터(새터)에서 만난 새내기 몇 명이 캠페인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진행상황을 알려주는 착한밥약 그래프. 5일만에 3만원이 모였다. ⓒ고함20



– 3월 첫째 주가 지났어요. 반응은 어떤가요?

착한밥약 : “5일 만에 3만원이 모였어요. 원래 목표가 5월까지 12만 5000원을 모으는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인 것 같아요. 새내기들도 취지를 알고 긍정적인 반응이었어요.”


과실 한편에서 인터뷰를 듣고 있던 새내기 류하윤(고려대 사회학1‧20) 씨가 “원래 기부나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지만 이렇게 재밌는 기부는 처음이었다”며 말을 거들었다.


캠페인에 긍정적으로 반응한 것은 새내기만이 아니었다. 고려대 사회학과반 내에서 진행되던 착한밥약의 소식은 다른 단과대학으로 번졌다. 7일에는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학생회에서 참여의사를 전해왔다. 보건과학대학은 3월 둘째 주부터 단과대 내에서 착한밥약 서포터즈를 모집하고 있다. 혜린 씨가 “사회학과가 속한 문과대학의 다른 과반에도 캠페인 동참을 제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착한밥약 페이스북 페이지에 인증사진도 올라오던데요.

착한밥약 : “캠페인의 또 다른 모토가 ‘즐거운 밥약’이에요. 가장 중요한 목표는 기부지만 밥약 그 자체도 더 즐거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밥만 얻어먹고 끝나면 아쉽잖아요. 기발한 인증사진을 올려주면 추첨해서 작은 상품을 주고 있어요. 만약 기부를 하지 않았더라도 인증사진에는 참여할 수 있어요. 물론 모든 밥약이 착한밥약이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괜찮아요. 착한밥약은 아니더라도 인증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운 밥약이 됐잖아요.”

– 캠페인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착한밥약 : “사실 선배가 후배에게 밥을 사주는 건 학기 초에는 일상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그라들잖아요. 착한밥약이 학기 초에만 그치지 않았으면 해요. 보건과학대학의 경우에는 동기끼리의 밥약도 포함시킬 거라고 들었어요. 이렇게 생각하면 한국 사람들의 ‘내가 쏠게’하는 문화도 충분히 착한밥약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밥을 먹는 일상 속에 기부라는 긍정적인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어요. 더불어 ‘대학생의 일상을 착하게 만들자’라는 목표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