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을 향한 쓴소리, 언론유감! 시즌3로 새롭게 돌아왔습니다. 수많은 언론에서 날마다 다뤄지는 20대, 청년, 대학생 관련 기사 중 20대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날카롭게 비평하는 고함20의 전통 연재! 언론유감 시즌3에서는 한 주간의 기사들 중 ‘좋음(Good)’ ‘그럭저럭(SoSo)’ ‘나쁨(Bad)’으로 각각 3개의 기사를 제시하는 형식을 재도입함으로써, 20대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인식은 무엇일지 독자와 함께 한 번 더 생각해고자 합니다.

GOOD : [매일경제] 일·학습 병행…청년 취업 한국의 현실
http://news.mk.co.kr/newsRead.php?sc=&year=2014&no=430987

정부는 ‘일·학습 병행’ 제도가 청년 취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장담해왔다. 국내 언론 역시 해외의 유망 사례들을 들며 장밋빛 미래에 대한 보도를 해왔다. 국내에서 실제로 ‘일·학습 병행’ 제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막연한 희망 때문에 가려져왔다. 기사는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의 예를 들어 교육부의 규제 때문에 학생들은 교육을 받을 공간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고, 정부 부처 간에 서로 다른 용어와 행정 절차로 인해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를 심층적으로 논의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이런 문제가 있다더라’에 그치는 보도기는 하지만, ‘일·학습 병행’ 제도를 청년 취업 문제의 완벽한 해결책으로 포장하는 데서 벗어나 현실 문제로 인식해 다뤘다는 점이 새롭다.

‘일·학습 병행’ 제도는 누구를 위한 제도일까? 기사는 정부의 입장이 아닌, 대학과 기업의 입장에서 제도를 바라보려고 했다. 일자리는 기업과 취직준비자들의 문제다. 기업과 취직준비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조성되기 전에는, 정부가 아무리 혼자 애쓴들 취업난이라는 난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당사자와 현장이 결여된 행정이 성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SOSO :
[한겨레] 희망 대학과 목표 대학은 다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628613.html

대학에 직장을, 학업능력에 스펙을 대입해보면 깨닫게 된다, 취업에 치여 사는 20대나 입시에 치여사는 10대나 크게 다를 것은 없는 것을. 의도적으로 끼워맞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유사한 패턴의 삶에서는 그만큼 규격화되어 있는 사회의 모습이 비친다. 대학과 직장 모두 과거에는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였다. 그러나 칼럼 본문이 밝히고 있듯 현재 빠르게 변화하는 직업 세계에서는 현재의 진학이 반드시 미래의 진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뭔가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변화에 휩쓸려 도태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꿈꾼다. 그 꿈에는 생각할 여유가 없다.


칼럼은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라며, “기회비용이 뒤따르는 대학 진학을 꼭 해야 하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문장이지만 어딘가 아프다. “세상사가 희망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오죽 좋으련만, 그러나 어디 그러한가.” 글쓴이는 꿈을 이야기하며 대학 진학을 개인의 문제로 내려버리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학 진학은 이미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구조적 문제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학생의 ‘희망 대학과 목표 대학이 다르다’는 문제는, 진로나 목표 대학에 대한 성찰 이전에 자신의 꿈과 대학 진학 여부 자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닐까.



BAD :
[뉴시스] ‘학습된 무력감’ 강요받는 청년들… 3포세대 전락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315_0012789434&cID=10301&pID=10300

기사를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청년들이 반복적 실패와 좌절로 인해 학습된 무력감을 강요받고 있다. 이런저런 원인이 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정책이 필요하다.” 무력함을 강요받고 있는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를 하겠다고 외치고 있는 구호가 왜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졌을까? 아무래도 방점이 ‘청년’이 아닌 ‘정책’에 찍혀있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 기사가 정치인의 구호에 설득력을 싣기 위한 방법으로 청년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끌어왔을 뿐,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분석이나 논의는 생략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기사는 청년세대가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게 되는 원인으로 낮은 청년 취업률을 꼽으며 ‘스펙의 비극’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대한 대책은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등으로 대학서열을 완화하는 것”이라는데, 문장은 이 정책이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끝나고 있을 뿐 해당 정책이 ‘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독자는 정책의 현실성과 타당성에 대해 의식할 새도 없이 오로지 하나의 정치 구호만을 접하게 된다. 이 기사는 누구를 위한 기사인가? 독자가 원하는 것은 정치인이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약속을 했느냐가 아니고 그 말과 약속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