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부터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어느샌가 우리는 온갖 매체를 통해 범람하는 문화를 그저 수용할 뿐인 삶에 익숙해져 있다. 대체 이 많은 콘텐츠 속에서 ’20대의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 있긴 한 것일까? 단순한 수용자가 아닌 창조자로서, 20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문화예술’이라는 것에 참여하고 있는 것일까? 고함20은 <예술in 20> 기획을 통해 ‘예술을 수용하는 데에 길들여진 20대’라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창조하는 20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려 한다.


그 첫번째 주인공, 한혜민씨는 현재 어린이 청소년 연극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28세의 “창작가 겸 연출 겸 배우 겸 기획자”다. 나열되는 직업에 감탄하는 기자에게 그녀는 웃으며 “스스로 그런 걸 다 책임지고 직접 하는 사람들, 그것을 저희는 독립공연예술가로 부르죠”라고 설명했다.



ⓒ 1인 창작극 '아코'를 공연 중인 한혜민씨

 

Q. 이제까지 어떤 활동을 해오셨나요?
A. 아시테지 축제라고 국내에서 가장 큰 어린이 청소년 공연 축제가 있어요. 거기 국제교류팀에서 1년 반 일을 했어요. 그걸 하면서 (연극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많이 생겨서, 직접 팀을 모아서 25살 때부터 창작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1년에 한 편씩은 꼭 창작을 했어요. 혼자 배우로서 다른 팀 작업도 해보고, 다른 팀 프로젝트를 맡아서 국제 교류를 추진해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해외 예술가들도 만나보고… 그러면서 아이들을 많이 만나면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에는 예술교육 쪽 수업 위주로 많이 활동했죠. 가장 핵심적이었던 것은 작년에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주최로 열린 ‘작은 극장’ 프로젝트를 통해 1인극을 만들었던 경험이었어요. 스스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이자, 자기 믿음이 생긴 계기가 되었던.

Q. 어떤 계기로 연극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A. 중학교 때부터 공연 쪽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때는 그냥 공연이 좋은데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 하다가 기획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을 지원할 때도 처음에 목표로 했던 건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과였어요. 근데 한예종은 떨어지고, 미리 수시로 넣어두었던 건국대 영문과에 가게 됐어요. 그때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학교 연극동아리를 알아봐서 미리 연락하고, 참여하게 됐죠. (처음에는) 스텝, 기획을 하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1학년 때 배우를 하게 되면서 배우라는 역할의 재미를 알게 됐어요. 첫 공연은 닐 사이먼의 <사랑을 주세요>라는 작품을 한국적으로 각색을 한 공연이었어요. 거기서 11살짜리 아이 역할을 맡아서, 어린 아이로서 무대에서 막 놀면서 되게 자유로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내 안에 있는 아이다움에 대해서도 발견할 수 있었고 더 적극적으로 공연 분야에 꿈을 꾸게 됐죠.

Q. 왜 연극인가요?
A. 저는 공연을 통해서 세상에 있는 소소한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어요. 연극을 통해서 충분히 감각을 사용해서 느끼고 그런 일상적인 작은 아름다움들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최근 인상 깊게 본 야외마임 공연이 있는데, 거기서 (배우) 여러 명이 가다가 멈춰서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를 쭉 바라보는 장면이 나와요. 그러면 공연을 보고 있는 우리들도 거기 관심을 기울이게 되요. 공연에서의 하나의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이 그거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거죠. 또, 이동을 하다가 배우들이 석양이 보이는 데 앉으면 관객도 같이 앉아서 석양을 바라보는 식으로. 그런 식으로 우리가 일상속에서 지나치는 것들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인상적이었고, 저도 그런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린이 공연을 하고 싶은 것도 연극을 통해서, 정말 예술이 필요한 곳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으로 시작을 한 거에요. 그래서 꿈은 개발도상국 같은 데에 두고 있어요. 처음 2007년에 해외봉사단으로 필리핀을 갔을 때 아이들을 만나면서  너무 행복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 마을에 찾아가서 공연을 통해 만나고, 공연 이후에도 충분히 관계를 갖고. 그게 일회성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런 관계가 주기적으로 이어져서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도우면서 그렇게 관계를 맺으면서 살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보니까 공연도 자연스럽게 언어가 안 통해도 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로 풀 수 있는 그런 걸 많이 추구하는 것 같아요. 여태까지 창작한 공연도 대부분 대사가 거의 없거나, 이미지 위주이거나, 음악이나 소품 같은 도구를 많이 사용했었죠. 동시에, 조명이나 전문적인 무대장치가 없는 아날로그 방식을 추구하게 되었죠.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공연. 작은 마을 안에서 작은 극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 1인 창작극 '방울, 비'를 공연 중인 한혜민씨

 


Q. 극회 활동 당시부터 아동 청소년 극에 대한 관심을 키워 오신 건가요?
A. 당시에는 아동 청소년 극에 대한 거는 구체적이지 않았죠. 하지만 어릴 때부터 애들이랑 노는 걸 좋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장애 아동들을 위한 연극 치료 캠프에도 참여하고. 아시테지축제에서도 자원봉사를 2번 하고 하면서 어린이 공연을 접하게 됐죠. 그러면서 어린이공연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연극과 아이들과의 적합한 결합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걸 같이 할 수 있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무엇보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공연을 보고 있는 아이들의 눈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그것에 반했다고 할 수 있죠. 그러면서 내가 이런 것을 좋아하는구나.. 확실히 알게 됐죠.

또 해외작품들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내가 갖고 있었던 아동극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버릴 수 있었어요. 예를 들면, 아동극 하면 대개 유치하고, 성인이 보면 재미없고, 너무 교훈적일 것이라는 그런 선입견 말이에요. 아동극이라는 게 대상이 아이들까지 넓혀진 거지 어른들도 어른들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게 있거든요.

Q. 관계하는 예술에 대한 지향이 있으신 것 같아요.
A.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삶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고 싶죠. 물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욕구도 있지만, 결국은 그게 일회적인 전달로만 끝나면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게 결국 그 사람에게 닿아서, 그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떤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그때 가장 예술가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동 청소년 극의 경우에도) 단순히 “꿈을 가져라” 하고 말하는 것과 공연 예술을 통해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과는 다르니까. 꿈을 꾸게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연극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Q. 이제까지 관객에게 받았던 감상 중에 가장 마음에 닿았던 말이 있다면?
A. 동네 지역 주민 센터에서 아이들을 모아서 연극놀이를 진행 한 적이 있었어요. 거기에 참여했던 9살짜리 남자아이가 계속 저한테 와서 “지금 몇 시에요? 이거 언제 끝나요?”하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재미가 없는 건가?’ 걱정이 되서“왜 궁금해?”하고 물어봤더니, 아이가 “안 끝났으면 좋겠어서요”하고 대답하는 거예요.  제가 맨 처음 연극을 접했을 때도 그랬거든요. 안 끝났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계속 시간을 확인하게 되고. 그 때 정말 감동을 받았죠.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좋았어요.

또 하나는, 제가 공연이 끝날 때 항상 사람들이 감상을 적어둘 수 있도록 방명록을 열어놓는데, <아코>라는 공연이 끝나고 4학년 여자아이가 감상을 남겼어요. 그런데 그 문장에 제가 이 공연을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들,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바로 담겨있었던 거예요.  그때 창작자로서 배우로서 큰 보람을 느꼈죠.

Q. 어떤 감상이었나요?
A. 작년에 ‘작은 극장’ 프로젝트를 통해서 1인극 <아코>라는 공연을 창작했었어요. 자기의 왕코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아코라는 주인공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나가는 모습을 그린 극이예요.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관객들이 보면서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공연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아코야! 자신에게 있는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건 참 중요한 것 같아. 자신만만한 아코, 강이(아이이름)가 되어 다시 만나길 기원할게”, “코가 크다고 부끄러워하지마. 사람들은 뭐든지 특징을 갖고 있거든””라고 감상을 남겨주었죠.



ⓒ 관객과의 소통창구 '공연을 본 후 느낌을 적어주세요♬'

 


Q. 활동을 하시면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A. 가장 큰 고민은 같이 할 동료 문제에요. 대부분 사람들은 속한 곳이 있는데 저는 혼자 헤매고 있으니까 그게 외롭고, 고민이 될 때가 있어요. 지금 ‘어린이공연연구집단 앙꼬’라고 첫 어린이공연을 창작할때때 만들었던 프로젝트 팀을 극단처럼 계속하고 있긴 해요. 그렇지만 팀은 아니라서 지금은 주로 혼자 하고 있고, 그걸 키우고 싶다고 생각해요. (연극 생활을) 하다보니까 제가 만들고 싶은 공연의 색깔이 더 보이는데, 그게 내가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하고 함께갈 수 있으려면, 나를 성장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20대’로서 가지고 있는 고민이 있다면.
A. 저는 처음부터 이 길을 선택할 때 대학원이나 극단이나 어떤 학과를 선택한 게 아니라, 바로 현장으로 나온 만큼 장기적으로 구체적으로 훈련하는 기간이 없었어요. 그동안은 스스로 팀을 모으고 공연을 만들어서 하기도 했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공부할 것도 많고 훈련할 것도 많으니까요. 해봐야 내가 좋아하는 건지 알 수 있으니까 먼저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배움에 대한 갈증이 생기고. 그런 갈증이 생기면서 동시에 하고 싶은 게 더 생기기도 하고. 그걸 좀 더 마음껏 표출해내고 싶은 욕구와, 또 한 편으로는 나는 이걸 잠깐이 아니라 평생 직업으로서 하고 싶은 건데, 지금은 준비하면서 나를 쌓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고민. 그 사이에서 불안한 것 같아요.

Q. ‘배고파야 예술가’라는 말이 있는데, 연극이라는 선택에 대해 스스로 갖고 있는 걱정이나 주변에서 오는 압박이 있진 않은가요?
A. 물론 압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집에 비해서는 꽤 개방적인 편이에요. 항상 어릴 때부터 독립적으로 스스로 배우고 싶은 걸 선택해서 배웠고, 부모님도 저를 믿으셨죠. 그런데 아버지가 퇴직하시고 집의 경제적 사정이 좀 어려워지자 아무래도 저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어요. “너는 다른 거 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걸(연기)를 꼭 해야겠니”라든가 “다른 애들은…” 하는 얘기 하실 때 아무래도 ‘책임’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죠.

배고파야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먹고 살고는 싶어요(웃음). 작년에는 예술교육을 통해서하나의 직업으로서 밥을 먹고 살았었죠. 근데 저는 공연 쪽으로 좋은 레퍼토리를 개발해서 찾아가는 공연을 많이 하고 싶고. 그게 충분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이 좋으면 찾아갈 곳은 굉장히 많고 또 수요가 있으니까요.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죠. 하지만 결국 다 연결이 되면서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불안하지만 행복을 기반으로 한. 즐거우려고 하는 거니까.





ⓒ 4월 26일 '아코' 공연 홍보 포스터

 


아이들과의 빛나는 만남을 통해 오늘도 쑤욱쑤욱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독립공연예술가, 한혜민씨. 그녀는 2011년 ‘어린이공연연구집단 앙꼬’를 결성하여 현재 어린이공연을 만들고, 연기하고, 또 연극으로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뛰어놀며 행복을 누리고 있으며, 처해진 환경때문에 상처받고 마음껏 꿈꾸지 못하는 아이들과 연극을 통한 만남으로 함께 꿈을 키워나가고자 한다.
 
그녀의 다음 행보는 문래동에 위치한 극장 QDA 스튜디오가 될 예정이다. 지난 ‘작은 극장’ 프로젝트를 통해 착장한 1인극 <아코>를 4월 26일 토요일 4시, 7시 2회에 걸쳐 공연한다. <아코>는 아코디언 음악 라이브 연주와 함께 들을 수 있는 하나의 그림책 같은 공연으로, 자기의 왕코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아코라는 주인공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나가는 모습을 그린 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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