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을 향한 쓴소리, 언론유감! 시즌3로 새롭게 돌아왔습니다. 수많은 언론에서 날마다 다뤄지는 20대, 청년, 대학생 관련 기사 중 20대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날카롭게 비평하는 고함20의 전통 연재! 언론유감 시즌3에서는 한 주간의 기사들 중 ‘좋음(Good)’ ‘그럭저럭(SoSo)’ ‘나쁨(Bad)’으로 각각 3개의 기사를 제시하는 형식을 재도입함으로써, 20대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인식은 무엇일지 독자와 함께 한 번 더 생각해고자 합니다. 

Good : [파이낸셜뉴스] 취직 생각 없는 20대 ‘니트족’.. 고용시장 ‘빨간불’
http://www.fnnews.com/view?ra=Sent0701m_View&corp=fnnews&arcid=201403270100291070015078&cDateYear=2014&cDateMonth=03&cDateDay=26
제법 탄탄한 기사다. 최신 정보가 많이 수록되어있다는 뜻이다. 특히 20대를 초반(20~24세)과 후반(25~29세)로 나누어 20대 초반 취업포기자 40만 명에 관한 대책 촉구를 문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베이비부머(55~63년생) 세대의 자녀들인 에코세대(79~92년생)의 인구 구조를 볼 때 2011년 이후 20대 초반 인구 비중이 증가하고 있으나, 증가폭에 비해 노동시장 진입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을 기사는 구체적으로 짚어냈다.
 


니트(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은 이미 언론에 무수히 오르내렸지만, 구직 활동 여부에 따라 니트족을 다시 분류해 “비구직 니트가 계속 늘고 있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기사는 그다지 흔하지 않았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최신(3월 26일) 연구를 제시하며 2000년부터 2013년까지 구직 니트는 줄었지만 비구직 니트는 배 가까이 급증했다는 내용은 자못 새롭다. 실은 새로울 뿐 아니라, 미묘하게 변화한 사회적 조류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사에서도 말하고 있듯 “20대 초반에 이미 사실상의 구직 포기자 혹은 취업 포기자 대열에 서고 있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제목은 식상하지만, 내용은 20대에 대한 적절한 ‘심층’ 분석이라고 보여 이번 주 Good으로 선정한다.

Soso [한국일보] 영어에 전공의 두 배 땀 빼는 대학생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403/h2014033020440421950.htm

한국 대학생들이 일반적으로 맞닥뜨리는 ‘영어’라는 골리앗을 이렇게 제시하니 또 새롭다. “영어 공부를 전공 공부에 두 배만큼 한다”니, 기사의 목적이 충격 효과에 있었다면 성공적이다. 대학이 취업 양성소가 되어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여실히 보여주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비용 조사(연간 사교육비용과 그 돈이 쓰인 분야)도 적절했다.

기사는 성별이나 대학 소재지 등으로 요소별 수치만 나열하고 있고,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의미가 있다. 몇 가지 아리송한 점은 있지만 말이다. 가령 주간 학습 시간에 ‘공무원 시험공부’ 같은 특정한 부류에만 적용되는 요인을 포함시켰다는 점은 의아스럽다. 또 기사의 마지막 두 문단처럼, 공부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이 많을수록 학생들이 받고 싶어하는 임금 수준도 높았다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다소 자의적으로 기준 수치를 조절한 면도 보인다. 비교가 어찌 되었든, 20대의 일면을 보여주는 씁쓸한 내용임은 분명하다.
Bad : [한국경제] 자살 징후, 이럴 때 위험하다․․․ 20대 카톡문구 바꾸고, 30․40대는 “다 내 잘못”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40191481

편견을 과학으로 착각한다면 이런 기사가 나올 것이다. 각 세대별 자살의 원인을 가정 문제와 취업․직장 스트레스로 양분이라도 하듯, (그리고 그 외에는 이유가 될 법한 것이 없다고 단언하듯) 기사는 ‘연령대별 자살 징후’를 표로 만들어 나열했다. 자살률 1위인 OECD 국가답게,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자살 사망자의 유형별 특징과 위험 요인, 징후를 분석”했다는 그 의도를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기사 제목을 보건대, 20대가 단순히 카톡 문구를 바꾼다고 해서 그것이 자살의 징후라고 한다면, 자살의 개인적 동기나 사회적 구조 등은 인식의 저편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병리적 증상 혹은 ‘신호’로서의 징후가 차기하게 된다. 위의 표가 위험한 이유는 저러한 행동과 정서, 표현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진단’할 것인가의 문제 때문이다.

기사 말미의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의 말도 아리송하다. “20대 이하인 경우 가정에서 사소한 단서를 놓쳐선 안 되며, 50대 이상은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 자살을 방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0대가 가정 문제 없이는 자살하지 않는다는 것, 혹은 50대 이상에게만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왜곡된 세대론이 관습적 편견과 결합해 기묘한 기사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