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고함20은 [자취일기 2014]라는 제목으로 20대의 자취생활을 중계합니다. 소재 제보를 환영합니다!

한동안은 세 칸 짜리 우편함에서 주간지를 꺼내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얀 종이로 포장되어 왔기 때문에 각종 고지서 사이에서 접혀있는데도 눈에 띄었다. 명동이나 광화문 한복판에서 약속한 누군가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조금 오버하자면 말이다. 많은 ‘월세장사’용 건물이 그렇듯, 이 곳도 지하 PC방부터 5층의 옥탑방까지가 빼곡하다. 방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방을 굳이 반으로, 또 반으로 갈라놓은 원룸 건물이다. 많은 가구의 우편물이 깔끔하게 주인을 기다리기에 작은 철제 보관함은 턱없이 작다. 빌라 입구에 서서 가로로 된 직사각형 우편함을 뒤적거리고 있으면, PC방 출입문 앞에서 사람들이 나를 한 번씩 쳐다보고 들어갔다. 도둑 아니면 악당이라도 된 듯한 그 분위기가 좋았다.

우편함을 지나 계단을 한 줄 올라가면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있다. 주간지를 집어들 때면 ‘포장 종이를 뜯고 버리면서 올라가야지’ 생각해 놓고는 20초 뒤 바로 잊어버렸다. 집에 들어온 뒤에야 종이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그래서 주간지 포장 종이는 제대로 분리수거 한 기억이 없다.

 
내가 지냈던 곳들은 이렇게 정돈된 우편함이 없었다. ⓒ 연합뉴스

 
자취방에서의 택배 수령은 작전을 수행하는 것 같다. 먼저 2층이나 3층의 창고 비슷한 공간을 찾아봐야 한다. 창고 문을 연다고 택배가 바로 보이지는 않는다. 불을 켜고 헌 세탁기와 깨진 타일, 또 알 수 없는물건들 사이를 잘 찾아봐야 한다. 그러면 내 이름, 아니면 우리집 호수가 보인다. 출석을 부르듯 내 이름을 부르면 택배가 둥실둥실 떠오는 상상을 가끔 한다. 요즘 들어 집앞에 와보면 문 앞에 택배가 그냥 있는 때가 많은데 그건 택배기사님의 시간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문을 노크해서 대답하고 얼른 뛰어나가보면 이미 택배만 놓여있고 기사님은 종적을 감춘 뒤였던 경우도 많다. 전달할 물건은 많은데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까지 올라와야 하는 분 마음이 이해가 간다. 그래서 택배 수령정보에 PC방에 전달하고 가시라고 써놓는데 아마 그걸 읽을 여유조차 없으신 듯 하다.

기숙사에서 지낼때는 택배를 학생지원팀 이라는, 교무실 같은 곳으로 주소를 바꿔놓아야 했다. 기숙사에서 직접 택배를 받는것이 금지였기 때문이다. 무거운 몇 가지는 기숙사 주소로 바꿔놓고, 수업 중간에 나가서 받아온적은 있지만 원칙상 외부인 출입은 금지였다. 또 택배를 맡을만한 관리소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뭘 사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학교에 반강제로 들켜야 했다. 특히 택배를 가지고 가려면 학생지원팀 근로학생에게 이름을 말하고 찾아가야 했다. 싫으면 직접 가서 사거나, 사지 않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책이든 옷이든 음반이든 마찬가지였다. 그게 싫어서 친구에게 수령을 부탁한 적도 많다. 학교 우체국 역시 그렇게 기분좋은 수령지는 아니었다.

택배를 받으러 갈 때의 우리의 모습은 널리 알려져 있다.
 
 
주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을 상대가 있을 경우에는 매일같이 우편함을 확인했다. 학교 기숙사에서 지낼때는 특별한 날 엽서같은 것을 받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일도 없어졌다. 이제는 매월 20일에서 25일 사이, 진입로 계단이나 우편함의 두번째 칸에서 전기요금 고지서를 챙기는 것이 유일한 우편일과가 되었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기숙사 친구들, 건물 이웃들(?)덕분에 늘 빼곡한 우편함을 보며 나한테 뭔가 왔을수도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었다. 다가올 미래에는 우편물을 우아하게 받아볼수는 있어도, 텅텅 빈 우편함을 볼 날이 더 많아질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전에 내가 그런 곳에서 살수 있을지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