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cm 두께의 베니어판을 사이에 둔 나와 ‘김 검사’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정말이지, 동거가 아닐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 쪽에서도 책상을 구르는 볼펜의 소리라든지, 또 훌쩍 코를 들이켜는 소리 같은 것을 너무나도 생생히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끔 미치도록 ‘쟁쟁쟁쟁’이 그리울 때도 있었지만, 무섭게 충혈된 작은 눈을 떠올리며 꿀꺽 침을 삼키고는 했다. 나는 점점 조용한 인간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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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체류기(김정우, 이주희 연출, 박민규 원작 2008) 캡쳐

앞서 인용한 박민규의 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의 주인공은 고시원을 이렇게 정의했다. 지긋지긋한 ‘정숙(嚴肅)’이라는 여자랑 동거한 곳이라고. 고시원의 좁은 방과 ‘실내정숙’이라는 대원칙 아래 주인공의 자존감도 점점 작아져만 갔다. 고시원은 홈리스가 되는 것을 막아 준 소중한 곳이긴 했지만, 그 속에선 그 어떤 인간다운, 쾌적한 삶은 기대할 수 없었다.

값싼 월세가 허락하지 않는 인간다운 주거환경

고시원이 더 이상 고시생들의 공부방이 아니라 빈곤층의 주거공간이 된 지 오래다. 경제적 기반이 없는 청년들도 보증금이 없고 월세가 싼 고시원으로 몰리고 있다. 2013년 한국소비자원이 발간한 ‘고시원 이용실태 및 개선방안’에 따르면, 고시원 이용자 절반은 20대(5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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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이용자들은 ‘특별한 거처가 없어 임시거주 목적으로 이용한다(44.3%)’, ‘보증금 없고 월 단위 계약이 가능하다(23%)’, ‘주변에 대체할 수 있는 거주시설이 없다(15.2%)’는 이유로 고시원을 택했다.

경제적인 사정으로 고시원을 택한 이들은, 그들의 주거환경에 거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고시원 거주 사유로 ‘자유로운 생활환경’을 꼽은 이용자는 8.7%에 불과했다. 고시원 이용자 4명 중 3명은 고시원 생활이 ‘불편하다(77%)’고 답했고, 그 구체적인 이유로는 좁은 방(91.6%) 1위, 소음(89.6%)이 2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공동생활의 불편이 87.7%, 창문 구조가 82.1%, 안전에 취약한 구조가 70.5%를 기록했다.

여전히 열악한 고시원의 ‘일상’

고시원 화재가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은 이후, 2007년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하 ‘다중이용특별법’)’이 마련되어 정부의 관리·감독이 시행되었다. 다중이용특별법이 적용되지 않는 2007년 이전의 고시원에 대해서는, 서울시가 2012년부터 매년 ‘노후고시원 안전시설 설치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고시원 이용자들의 불만 순위 5위였던 ‘안전에 취약한 구조’는 그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는 셈이다.

빈곤층의 열악한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과 정부는 고시원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그에 따라 고시원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안전에 대한 대책은 생사의 순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주지만 평소엔 그 중요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시원 이용자에게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방법은 가장 ‘일상’적인 ‘소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렇지만 고시원 방 간 소음에 대한 논의와 대책 여전히 미비하다.

정부는 2010년 건축법을 개정하면서, 고시원 방의 칸막이벽에도 건축 기준을 규정했다. 건축법 제53조에 따르면, 고시원은 방음을 위해 건축자재에 따라 10cm~19cm 이상의 두께 칸막이벽을 설치해야 한다.

2011년엔 경향신문, 2013년엔 머니투데이가 고시원 소음 문제를 다루며 개정된 건축법에는 흡음재 규정이 없음을 지적했다. 흡음재는 소음방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건축주들이 낮은 단가를 위해 값싼 흡음재를 사용하는 것을 제재할 수단은 없다. 2014년 4월에도, 건축법에는 여전히 흡음재 규정이 없다.

고시원이 집중된서울시의 경우도, 고시원 소음에 관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고시원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는 서울시 건축기획과에 고시원 소음 대책에 대해 문의하자, “처음 듣는 이야기”라 답했다.

아파트는 되고, 고시원은 안 되는 소음대책

층간소음으로 시작된 다툼이 살인, 폭행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자 정부는 층간소음에 대해 나름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층간소음이 아파트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면 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알선·조정·재정이나 법원의 소송을 통해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

2014년 2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층간소음 피해 배상액을 30% 인상하여 보상 정도를 한층 더 높이기도 하였다. 또한, 본 위원회는 수인한도(사람이 참을 수 있는 소음 기준)를 5분 평균 주간 55dB, 야간 45dB에서 1분 평균 40dB, 35dB로 기준을 엄격히 하였다. 최고소음도(순간적인 소음 정도) 기준도 주간 55dB, 야간 50dB로 신설하였다.

그러나 고시원 벽간소음에는 이러한 대책 모두가 적용되지 않는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문의한결과, “층간소음은 공동주택의 경우만 해당하기 때문에 층간소음 제도를 고시원 소음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라고 답했다. 고시원 거주민은 누군가를 배려하며 살고 있지만, 그들의 배려해 줄 정치인이나 정부는 없다. 고시원 거주자에게 주어진 벽간소음 대책은 오롯이 ‘내’가 정숙하는 방법뿐이다.

글. 릴리슈슈(kanji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