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 [자취일기 2014], 20대 자취생활의 에피소드를 낱낱이 풀어내겠습니다. 독자분들의 자취생활을 담은 소재도 제보 받습니다. 


언제부턴가 옷이 하나씩 사라졌다. 몇년 전부터 잃어버리고 발견하지 못한 옷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옷 뿐만이 아니라 장갑이나 목도리도 종종 잃어버렸다. 나와서 산 ‘연차’가 길어질수록 옷이 사라지는 빈도는 점점 늘었다. 옷가지들은 머릿속에서 생생한 색과 섬유 감촉으로 넘실대다 사라진다. 그럴때면 옷이 지구상 어디엔가 부유하고 있을 것 같아 약간 감상에 젖는다. 괜찮다. 쓰레기통 안에만 없으면 된다. 어딘가에서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면 차라리 답답하지는 않을 것 같다.

 

처음에는 별별 생각을 다 했다. 누굴 빌려줬나 싶어 기숙사, 하숙집, 지금 사는 방 근처에 거주하는 친구와 선후배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내가 그.. 검은색 자켓처럼 생긴건데..” 본 적 없는 옷의 이미지는 아무리 설명해도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들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혹시라도 보이면 알려주겠다는 다짐을 받아뒀지만 그뿐이었다. 궁금증은 꼬리를 물었다. 다른 재활용품에 섞여 버려졌는지, 의류함에 헌 옷과 함께 딸려 들어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취하는 사람이 의류함에 옷을 버리면 얼마나 버린단 말인가. 아침에 너무 바빴던 와중에 옷장 어딘가에 숨겨져 못 찾는건 아닐까? 비슷한 색깔 옷 사이에 보호색 마냥 끼어있는건가? (사라진 옷을 찾은 경우의 대부분이 이 두가지 경우이긴 했다) 심지어는 내가 몽유병이라서 자는 사이에 누굴 주거나 어디다 던져버린것은 아닌지를 의심했다. 자존심따위 던져버린 상상의 끝에도 옷은 돌아오지 않았다.



 

옷이 없어졌을 때 비슷한 옷을 사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썩 시원한 해결법은 아니다. 한창 아끼던 옷 하나가 없어졌을때 누군가는 “비슷한 옷을 사면, 그때 방 아무데에서 그 옷이 불쑥 나타날 거다”라고 말해줬다. 그 상황에서의 내 억울함을 감히 짐작할 수 없어 나는 ‘재구매’를 포기했다. 금전적 문제로 보나 머피의 법칙으로 보나 잃어버린 옷은 그냥 그 채로 두는게 맞나보다 하는 생각이 굳어져간다. 이젠 옷이 사라져 있으면 어딘가 있겠거니 하면서 편하게 마음먹으려 노력한다. 길에서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치면 흠칫 놀라긴 하지만 말이다.

 

옷과 늘 이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기상천외한 곳에 옷은 숨어있다. 기숙사에서 지낼 때는 빨래하는 다용도실에서 방까지 가는 길에 옷을 자주 떨어뜨렸다. 그럼 다음순서로 빨래하는 기숙사 친구가 챙겨주곤 했다. 원래 살던 집과 나와 사는 방을 오가는 과정에서 자주 입지 않는 옷을 두고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생각나서 입으려고 찾으면 아무데도 안보이다가 동생 방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종종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허리 위까지 오는 검은색 블루종(신기하게도 거기 달려있던 탈부착 후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슬프게 옷걸이에 매달려있다.), 실연 한달 기념으로 친구와 함께 산 분홍색 후드집업, 빈티지샵에서 산 와인색 반팔 피케티, 스파브랜드에서 산 회색 트레이닝 반바지, 각종 니트, 캐미솔, 하얀색 티셔츠 등등이 어딘가에 잘 살아있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