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을 향한 쓴소리, 언론유감! 시즌3로 새롭게 돌아왔습니다. 수많은 언론에서 날마다 다뤄지는 20대, 청년, 대학생 관련 기사 중 20대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날카롭게 비평하는 고함20의 전통 연재! 언론유감 시즌3에서는 한 주간의 기사들 중 ‘좋음(Good)’ ‘그럭저럭(SoSo)’ ‘나쁨(Bad)’으로 각각 3개의 기사를 제시하는 형식을 재도입함으로써, 20대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인식은 무엇일지 독자와 함께 한 번 더 생각해고자 합니다.

http://news.mt.co.kr/mtview.php?no=2014042309563692620&type=1&VML


Good: [머니투데이] “중소기업 취업 고려 지방대생 10명 중 1명 뿐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지역 대학생들의 지역 중소기업 취업에 대한 인식 조사가 기사화됐다. 정부의 중소기업 진흥책이 한참 홍보될 당시에는 좀처럼 찾을 수 없던 기사다. 기사는 지역 대학생 700명에게 졸업 후 취업처를 물었고, 이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호감도를 비교 조사했다. 



기사가 눈에 띄는 점은 서울과 수도권 대학생에 맞춰져 있던 중소기업 관련 인식조사를 지역 대학생에게도 실시했다는 것이다. ‘수도권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더 비전 있기 때문(27.6%)’이 지역 내 중소기업 취업을 고려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는 조사 결과는 지역 중소기업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지방대학생들이 지역 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원인은 눈이 높아서라기보다는 중소기업의 근로조건이 대기업에 비해 실제로 열악하기 때문”이라는 양정승 박사의 코멘트도 적절했다. 모두가 몰랐던 사실은 아니나, 근거 없는 희망찬 정책을 논하기 전에 냉정한 현실 직시가 꾸준히 필요하다고 보았기에 이번 주의 Good으로 선정한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04211605381&code=115


Soso: [주간경향] 대학생 SNS 인맥도 스펙이다




주간경향 1073호 사회면에 실린 이 기사 제목은 ‘클릭’을 유도하기 쉬운 요소를 세 개나 갖췄다. 대학생, 인맥, 스펙. 제목만 보고선 “SNS 인맥도 스펙이 될 수 있다”는 요지일 줄 알았는데 내용을 보면 “SNS 인맥을 스펙으로 이용한다”는 게 논지다. 기사는 기업이 홍보수단으로 공모전에 응모한 대학생들의 인맥을 이용하는 사례나, 취업을 위한 인맥을 스스로 넓혀가기 위해 SNS를 이용하는 사례 등을 제법 폭넓게 다루고 있다. 




다만 의아스런 부분은 “인맥도 스펙이 된 대학사회에서 소셜네트워크는 소통의 도구로 활용되기보다는 대학생들의 스펙을 올리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강화되고 있다”는 부분이다. 심지어는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한 관계를 맺는 일도 ‘감정노동’이라고 일컬었다. 





친구들을 동원해 ‘좋아요’를 유도하는 사례는 종종 있어왔고, SNS 관계맺기는 대면하는 관계보다 도구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대학생의 관계 맺기를 위한 노력을 무턱대고 ‘감정노동’이라 단정지을 수 있을까? 또 소셜네트워크의 이용 목적과 그에 따른 비율을 비교할 수 있을까? 지나친 ‘비즈니스 마인드’를 구사하는 기사의 어조가 못내 불편하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3170.html


Bad: 헤어지는 법을 못 배운 청춘들의 ‘이별 폭력’




한겨레의 기사는 20대 연인들이 이별 뒤 테러와 협박, 자해, 살해까지 저지르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이곳저곳에서 벌어진 자극적인 사례들을 나열해 이른바 ‘이별 범죄’를 20대 특유의 현상으로 규정한 뒤, 전문가들의 진단까지 내리고 있다. “연애의 기술을 알려주는 곳이 많은 ‘연애 과잉 시대’에 배신의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청춘들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기괴한 현상이 발생하는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 지점이 몹시 불편하다. 단지 20대는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인가? “목표 성취에 집착하는 사회 분위기가 청춘들의 연애와 이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은 ‘미숙하고 나약한’ 20대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뿐만 아니라 기사에 제시된 단 두 사례를 통해 범죄 집단을 20대 전체로 비화시켜 어줍잖게 세대론을 건드린다.




이별의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 있도록 성찰하는 힘을 지니는지의 여부가 세대와는 관련이 없다는 건 상식이다. 기사가 그 관련성을 기어이 입증하고 싶었다면 범죄 사례를 훨씬 더 많이 수집했어야 한다. 마지막 부분에서까지 “요즘 사회가 젊은이에게 그런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지 않다”는 문학평론가의 말을 싣는 의도는 무엇인가? 자제력과 반성 능력이 없는 젊은이들을 향한 연민인가, 아니면 사회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연애도 제대로 못 한다는 젊은이들을 비꼬는 것인가? ‘이별 범죄’로 20대를 향한 시선을 교묘하게 조작하는 기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