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 [자취일기 2014], 20대 자취생활의 에피소드를 낱낱이 풀어내겠습니다. 독자분들의 자취생활을 담은 소재도 제보 받습니다.

인생에서 공식적인 화장대를 아직 가져보지 않았다. 화장대가 들어오기엔 방 크기가 작기도 하고, 왠지 필요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 집에 놀러가면서, 여자애들 방에는 화장대가 있구나 하는(최소 내가 가본 남자애들 집의 그들 방에는 화장대가 없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이나 토론에 영향력이 전무한 고정관념이 생겼다. 나는 스물 둘 정도가 지나서 언젠가 화장대를 갖게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직사각형 모양의 파우더룸 테이블 앞에 앉아 드라이를 하고 마스카라를 올리는 로망을 나날이 키워가고 있다.

나의 어머니도 이사를 하던 중간 과정에서는 화장대가 없었다. 대신 매일 아침 현관에 달린 거울 앞에서 작은 탁자에 빗이나 도구를 놓고 화려한 제스처로 메이크업을 했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화장은 원래 저렇게 하는거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중학교 때 쯤 새로 바꾼 가구 세트에 화장대가 포함되어 있어 어머니는 그걸 사용하신다. 

첫 색조화장품을 살때쯤에야 나는 서서 화장하는것이 얼마나 중노동인지 알게됐다. 손으로 거울을 들 경우, 팔이 수시로 아프다. 하지만 파운데이션 등을 균일하게 바르려면 버텨야(!)한다. 앞머리가 내려온 사람의 경우, 앞머리를 잡고 거울도 들면서 손을 움직여야 한다. 벽에 붙은 거울에 다가서서 화장 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거울로 몸을 더 붙이게 되는데, 그때 탁자에 있는 물건들을 건드려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아이라인을 그리는 경우에는 더할것이다. 나는 아이라이너를 사서 1회 사용 후, 늘 굳은채로 버렸기 때문에 ‘화장대가 아이라인에 미치는 영향’은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래서 화장대의 필요를 잘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팔꿈치를 안정적인 곳에 지지하고 라인을 그리는것이 훨씬 편할 것이라고 추측만 하고있다.

나의 화장 동선은 그동안 주로 90도를 이뤘다. 왼쪽에 화장도구가 있는 수납칸이 있고, 정면에 거울이 있는 식이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책상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럴때는 탁상거울이 꼭 필요했는데, 거울 위치를 계속 옮기고 각도를 맞춘다고 계속 이리저리 기울였다. 거울 면적 문제로 머리를 손질하는 위치와 본격적인 화장을 하는 위치는 다르게 선정됐다. 나의 짧은 화장대의 역사다. 기숙사에서 지낼때는 공간이 더 좁았기 때문에 나는 화장을 하면서 주변의  책, 양치도구, 고데기 등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저녁에야 제자리로 돌려놨다.


어쩌면 자취인에게는 이 정도 크기의 화장대가 알맞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사각 거울 화장대 다음으로 자주 본 화장대는 오래된 친구인 C의 것이다. 흰 테이블에 타원형 거울이 붙어있고 얇고 굴곡진 철제 장식과 다리가 달려있다. 풍성한 테이블 위는 건물이 빽빽한 도시의 골목을 생각하면 된다. 콧대높은 미스트, 균형을 잡고 서 있는 역삼각형의 클렌저, 하얀 병의 스킨, 매력적인 디자인의 수분크림, 주로 무채색을 이루는 눈화장 도구 등등이 매일 아침(혹은 저녁의) 주인의 모습을 위해 모여있다. 이곳 역시 볼 때마다 조금씩 디자인이 바뀌어 있다. 철수된 화장품도 있고 새로 기세등등하게 들어선 화장품도 있다. 그래서 화장대 앞에서는 늘 얘기가 길어진다. 그 화장품은 왜 버렸는지, 어떤 이유로 새로 구매했는지, 먼지쌓인 화장품이 방치된 이유 등등의 이야기다. 친구는 스무 살 이후 칙칙한 얘기만 하게 된다며 이런 ‘걸스토크’를 하면 기분전환이 된다고 좋아한다. 그런 사소한 것을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면 난로 앞을 지나칠 때의 순간적인 열기같은 위안을 느꼈다. 

화장대가 없으면 화장품 보관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 갯수가 늘어나거나 새로 들여놓은 화장품 모양이 바뀌면 화장품 바구니의 위치를 바꾼다. 화장품 정리는 의외로 재미있다. 잊고 지냈던 화장품도 나오고, 나한테 이런 화장품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왜 책장 정리를 할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샘플과 마스크팩도 몇개 씩 나온다. 주로 친구들이 자고가는 날 사용된다. 세네명이 마스크팩을 붙이고 조르륵 누워서 잠이 오기 전 수다를 떠는것은 분명 자취인에게 긍정적인(?) 장면이다.

화장품 보관이 화장대 위보다 압축적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여행을 가거나 놀러 갈 때도 화장품만은 효율적으로 챙기게 된다. 말하자면 ‘최소 용량으로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온갖 세면도구를 다 챙기지는 않는다. 자취인이라는 명목으로 치약이나 샴푸 등은 다른이에게 미리 위탁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동안 비밀이었는데 이젠 이런 핑계도 못 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