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 [자취일기 2014], 20대 자취생활의 에피소드를 낱낱이 풀어내겠습니다. 독자분들의 자취생활을 담은 소재도 제보 받습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자취인에게도 위기는 온다.

 


전등이 고장났을 때


한명이 살기엔 조금 남고 두명이 살기엔 좁은 원룸의 대부분은 화장실 전등에 나사가 없다. 당신의 자취방 원룸 화장실 전등으로 방 전체 넓이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것에 전구 한알을 건다. 어느쪽으로 돌려 열라는 표시도 없다. 처음에는 전등의 동그란 유리 부분을 열어야 하는 줄 알고 낑낑댔다. 넘어져서 뇌진탕을 일으키면 내 학자금대출은 어쩌나 하는 걱정에 힘을 제대로 못 쓴 탓도 있는것 같다. 명절을 이용해 각종 짐을 교환해주러 온 부모님이 와서야 나는 ‘테두리’부분에 꾹 힘을 가해 돌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왜 나는 손의 위치를 바꿔볼 생각을 못했던가. 나와살고 나서야 전구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다는 것도 알았고, 내부 스프링이 틀어진 불친절한 전등을 교체하는 법은 그것을 깨는 것 뿐이라는 것도 알았다. (아직 깬 적은 없는데, 곧 그 날이 오고있는 듯한 느낌은 뭘까?) 


사다리는 물론 화장실 바닥에 디딜만한 플라스틱 상자도 없었기 때문에 세면대, 좌변기 커버 등을 받치고 서서 전등을 갈았다. 다행히 아직 넘어진 적은 없다. 이제 요령이 생겼다. 가장 어려운 전등구조가 있는 방에서 살았으니 앞으로는 어딜 가든 전등이 나갔을 때 기지를 발휘할 수 있을듯한 느낌이 든다. (놀러가서 불이 나갔는데 숙소의 전등을 멋지게 고치고 박수를 받는 나의 모습이란.) 방 위의 형광등이 아직까지 나가지 소진되지 않은것은 미스터리.

 

물건이 없어졌을 때


이 안에 블랙홀이 있다. 일기장, 옷, 양말, 휴대폰, 휴대폰 충전기, 이어폰, 빗, 고데기, 전기포트 밑받침, 쌀컵, 안경 등 수많은 물건이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비슷한 물건이 신기루인 듯 환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참 뒤 미처 못본곳에서 발견할 때엔 이미 물건을 사용할 상황은 종료. 옆에서 누가 “여기있네”라고 해줬으면 금방 찾았을 것 같아 괜히 억울하다.



자취인들은 늘 위기탈출 매뉴얼을 숙지해야 한다.


 

부엌찬장의 첫번째 칸에 물건이 있을 때


잘 쓰지 않는 물건을 첫번째 칸에 거의 던져넣듯 보관해왔다. 지금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호스 한개와(아마도 세면대에 연결해서 쓰라는 뜻일까? 혹은 싱크대에 연결해서 이 방을 물청소할때 쓰라는 뜻일까? 이 방을 물청소 해야 할 상황은 대체 무엇인가) 은색 볼이 있다. 웨지감자를 만들 때나 고기를 재울 때, 시금치 등을 씻어 잠깐 담가놓는 등 요리과정에서 유용하게 쓰고있다. 그럼에도 볼의 크기때문에 첫번째 찬장에 보관하는데, 너무 손이 안닿으면 안되니까 끝 부분에 살짝 걸쳐 넣어두었다. 


그래도 가끔 안 닿을때가 있다.(사실은 열에 아홉번은 안 닿는다) 점프하거나 부엌 조리대 위로 몸을 반 정도 아크로바틱(?) 해서 꺼낸다. 보관보다는 질서있게 꺼내고 집어넣는 게 더 어렵다고 느낀다. 생각해보니 이럴때 유용하게 쓸 그 흔한 막대기 하나 없다. 우산은 너무 유연하지 못해서 꺼내려다 그릇에 얼굴을 맞을듯해 시도하다 그만두었다.

 

다쳤을 때


어느 불금이었다. 나갈 준비를 하는데 택배가 왔다. 아무생각없이 칼로 상자를 열었는데 그만 왼쪽 검지손가락 측면이 베어버렸다. 그렇게 피가 많이난건 여행에서 발 끝을 다쳤던 후 처음이었다. 그때는 간호해줄 사람이 열 명이나 있었지만 이 방에서는 내가 주체와 객체를 모두 맡아야 한다. 화장실에 들어갈 정신도 없이 싱크대 수도를 틀고 피를 흘려보냈다. 피가 안 멈추고 계속 나서 베인 길이가 평소와 남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으로 메디폼 형식의 상처밴드를 샀다. 무슨 정신으로 술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이틀 뒤 푹 자고 일어나니 상처가 붙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다리나 팔에 멍이 들기도 한다. 급하게 계단을 올라가다 종아리 쪽을 찧인적은 있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상흔들은 상당수 자다 생긴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집에서는 침대에서 떨어지고, 자취방에서는 빙그르르 돌다 집기에 몸이 부딪힌다.

 

어깨를 다쳤을때는 한의원에 갔는데도 쉽게 나아지지가 않아 밤마다 누워서 혼자 물리치료(?)를 했다. 팔을 더 이상 기이하게 움직일 수 없을만큼 이리저리 움직였다. 팔로 요가를 했다고 상상하면 된다. 그때 누가 있었으면 좀 수월하게 근육을 풀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남몰래 눈물을 훔칠 뻔 했다.

 

물수건 찬스


혼자 물수건을 짜서 머리에 올리고, 또 다시짜서 올리고를 반복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처량하다. 나도모르게 꾀병부리는 느낌도 든다. 특히 잠이 들라치면 물수건을 갈아야 할 타이밍이 오고 그래서 잠을 늦게자고, 병이 늦게낫고. 그런 가벼운 악순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