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 A씨, 과 술자리에 나갔다가 남자 선배들의 ‘융단 폭격’을 받는다. 그녀를 비롯한 과 여학우들의 얼굴과 몸매에 대한 직설적인 평가, 남자친구가 있는지, 있다면 진도는 얼마나 나갔는지. 그리고 술에 점점 취해가자 술게임의 벌칙으로는 러브샷, 불필요한 신체 접촉 등이 벌어졌다. 술김의 짓궂은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A씨의 인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자신의 개인적인 성적 영역과 그것을 결정할 자신의 의지를 타인으로부터 침해받지 아니할 권리)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었다.


A씨처럼 대학을 다니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특히 여성이라면) 술자리에서 술 취한 사람들로부터 불쾌한 농담이나 행동을 겪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비단 술자리뿐만이 아니라 엠티, 농활 등 박 일정이 들어가는 행사에서도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에 항상 맞닥뜨려 있는 것이 모두의 현실이다. 그러한 현실은 대학 역시 사회와 다를 것 없이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는 억압적인 문화를 그대로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가에서는 학생회를 중심으로 ‘반(反)성폭력 내규’를 제정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단지 여학우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우들이 성폭력에 반대하고 자신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내규의 요지다. 그러한 요지를 바탕으로 대부분 학내 자치단위에서 시행하고 있는 내규는 ‘성적 자기 결정권의 보호를 통해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위치에서 우애롭게 하나가 될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내규는 새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행사에서 집중적으로 교육되며, 박 일정이 들어가는 행사나 술자리 등에서도 재차 환기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현재 내규가 제정되어 있는 과나 단대의 경우 내규의 목적과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러한 ‘앎’이 곧 동의와 실천, 그리고 나아가 궁극적인 목표인 성폭력의 추방과 양성 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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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규의 존재를 구성원 모두가 알고 있음과는 별도로, 그것이 실질적으로 강제성이 있는 규약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내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규가 실질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거나, 농담의 소재로 전락해버리는 경우를 그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그러한 모습은 모두가 그 내규를 가볍게 바라보는 데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술자리에서 실제로 불쾌한 일이 일어날 경우 반성폭력 내규를 들며 자신에게 그러지 말아 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분위기는 조성되기 어렵다. ‘술자리의 분위기를 깰 수 있다’, ‘나중에 어색해지는 것이 싫다’ 등의 이유로 정당한 문제제기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또 내규는 구속력이 있는 것이라기보단 농담의 소재가 되어버리곤 한다. 실제로 ‘이런 말 하면 내규에 걸리는 거 아니야?’, ‘그런 말 하면 양성평등센터에 신고한다’ 등 내규 그 자체와 평등의 원칙에 대해 무시한 농담조의 발언들이 들리는 경우가 많다.


내규가 농담의 소재가 되는 순간, 모두가 지켜야 할 원칙으로서의 권위는 사라진다. 아무도 지켜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단순히 농담의 소재로 소비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술자리, 농활과 MT 등을 비롯한 모두의 일상에서 불평등한 일이 일어나는데, 내규가 그러한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모순적인 일이자 내규가 존재하는 근간에 대한 위협이다.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의 약속으로 만들어진 것이 자치규약이자 내규다. 그리고 그러한 내규가 구속력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체적인 공동체에서 내규를 지키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라는 구성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누구나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 중 하나로 성폭력과 남녀 간의 불평등을 꼽는다. 그렇다면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대학 내의 첫걸음인 반성폭력 내규를 언행일치로 존중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