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을 향한 쓴소리, 언론유감! 시즌3로 새롭게 돌아왔습니다. 수많은 언론에서 날마다 다뤄지는 20대, 청년, 대학생 관련 기사 중 20대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날카롭게 비평하는 고함20의 전통 연재! 언론유감 시즌3에서는 한 주간의 기사들 중 ‘좋음(Good)’ ‘그럭저럭(SoSo)’ ‘나쁨(Bad)’으로 각각 3개의 기사를 제시하는 형식을 재도입함으로써, 20대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인식은 무엇일지 독자와 함께 한 번 더 생각해고자 합니다.

GOOD : [뉴스1] ‘성과주의’사회…대학생·교수도 ‘취업형’으로


http://news1.kr/articles/1667990


고통을 자랑하는 시대가 왔다. “이번 달에 발표를 연달아 두 개나 해야 해요”라는 A의 말에 B는 공감을 표하거나 위로를 하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저는 세 개를 해야… 하나는 영어로…” 기사에서 제시되고 있는 사례의 대화는 정말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대화들이라 씁쓸하다. 대학생들끼리의 대화라고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기사에서 제시되고 있는 사례는 ‘교수’이니까.


대학생들이 스펙에 맞추어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관계 등을 정립하는 ‘취직형’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기사는 흔하다. “너희는 젊으니까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타박은 지겹다. 기사는 이 일반적인 문제의식으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 비단 대학생 뿐 아니라 실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교수 역시 사회가 강요하고 있는 ‘성과주의’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한다. 남과의 비교를 그만두고 스스로를 성찰해야한다는 뻔한 결말로 흘러가기는 하지만, 적어도 ‘스펙’과 ‘성과주의’의 문제를 학생의 문제로 한정시켜 소외시키지 않았다는 점이 시원했다.


 


SOSO : [조선비즈] 희망퇴직 받았더니 20대 신참이 신청을…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5/08/2014050802160.html?main_hot


소재가 재밌다. 기사는 기업이 “비용 효율” 운운하며 불필요한 인력을 내쫓기 위해 내건 ‘희망퇴직’이라는 카드가, 오히려 기업의 젊은 인재들이 제 발로 회사를 걸어나가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50대의 경우 희망퇴직을 받아들이면 곧바로 은퇴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젊은 직원들은 이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사에서 특히 지적하고 있는 것은 증권사의 사례인데, 많은 청년들이 ‘높은 연봉’ 등의 이유로 자격증을 따가며 오래 준비하는 금융기업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 읽던 도중, 기사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연말에 성과급으로 수천만원을 수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새내기 직원들은 “그런 시절이 또 올리 있겠느냐”며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는 마무리로 뚝 끊겨버린다. 현상에 대한 포착만 있을 뿐 그 모순에 대한 의미부여와 분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기사의 경우 소재 자체가 충분히 풍자적인 성격을 품고 있어 스트레이트 기사의 소재라기보다는 르포 기사의 소재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 개인 혹은 매체의 관점을 담아 칼럼식으로 나가든지, 아니면 보다 현장의 스케치를 풍부하게 담아 묘사적 성격을 강화했더라면 더 좋은 기사가 되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BAD : [오마이뉴스] 부산 청년구직자 64.6%, 자살 원인에 동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9199


기사는 구직활동이 청년들의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있고, 그 스트레스가 자살을 한 번 정도는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로 서두를 연다. 200명이 채 안되는 표본의 수는 넘기더라도, 기사의 결말에 이르면 아무래도 이 설문조사가 순수한 조사 목적으로 실시된 것인지, 아니면 결론을 뒷받침할 충격적인 자료를 만들기 위한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게 된다. 기사는 이렇게 끝난다. “청년유니온은 이날 오전 부산시청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장기적으로 질 좋은 일자리를 확대하는 동시에 단기적으로 취업비용으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자살 충동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구직촉진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앞 부분의 조사와 뒷 부분의 주장이 개별적인 기사였다면 오히려 가볍게 공감을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붙여버리니 (정부에게) 스트레스 받는 우리가 자살하기 전에 용돈 달라는 징징거림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공감되는 이슈라고 볼 수 있으나, 술자리 농담이 아닌 ‘정보’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기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