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은 총보다 강하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나라에서 본래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사건처럼 독재 정부 아래서 언론 자유를 외쳤던 기자들을 응원하기 위한 말이었다. 하지만 2014년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펜은 총보다 강하다’는 말은 더 이상 언론 자유를 위한 노력을 상징할 수 없게 됐다. 이 짧은 경구가 말하는 것은 어느덧 ‘제4의 권력’이 되어 버린 보수언론의 폭력성일 뿐이다.




한국 언론의 민낯을 드러내는 영화 <슬기로운 해법>은 흔히 ‘조중동’이라 불리는 보수언론을 정조준한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김창기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입을 빌려 완전히 중립적인 언론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좌와 우를 가릴 것 없이 모든 언론이 이념성을 띠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가 보수언론만을 타겟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의 보수언론의 지나친 이념성이 사회의 균형을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저버리고 진실을 호도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영화가 겨냥하는 것은 정확히 이러한 지점들이다.




영화 초반에 소개된 중앙일보의 오보 사례는 인상적이다. <중앙일보>는 2009년 철도노조 파업 당시 ‘열차가 운행되지 않아 고교생이 대입 면접에 응시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시민이 겪은 불편을 강조해 철도노조의 파업을 비판하기 위함이었다. 1면 머리기사였다. 하지만 이는 오보였다. 그 고교생이 열차를 이용했을 시각에는 열차가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중앙일보>의 사과는 심플했다. 2년 뒤인 2011년에야 가로 5cm의 조그만 박스 기사로 오보를 알렸을 뿐이다. 정말 ‘알리려는’ 생각이 있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소극적 대응이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보수 언론은 꽤나 악질적인 양치기 소년이 된 지 오래다. 악질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재미로 거짓말을 한 양치기 소년과 달리 보수언론의 거짓말에는 촘촘하고 견고한 이유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을 양치기 소년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광고’다. 언론시장, 그 가운데서도 신문시장이 위기에 빠졌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허덕이게 된 언론사를 구제해주는 광고주들에게 언론은 당연히 우호적인 기사로 보답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보수언론이 노무현 정부의 8.31 부동산 대책에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던 것은 신문 지면에 가득한 건설업계 관련 광고 때문이었다고 풀이한다.




보수언론과 광고의 연관성은 ‘삼성’이라는 국내 최대의 광고주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삼성은 주요 신문 지면의 광고량 1위를 몇 년째 지키고 있다. 2위와는 2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영화는 또한 2009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특별 사면을 앞둔 시점에서 보수신문인 조중동에 대한 삼성의 광고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말한다. 대신 같은 시기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등의 진보신문의 광고 지면에선 삼성이 사라졌다.




‘슬기로운 해법’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도 영화는 관객들에게 왜곡된 언론 현실을 타개할 해법을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은 90분의 러닝타임을 통해 누구나 인정할 만한 슬기로운 해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문제를 도려내기 위해선 조중동과 삼성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꾸준한 언론 감시가 그나마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해법이라는 사실만을 관객들은 느낄 수 있다.




영화가 보수언론의 문제만을 조명하는 것을 일부 관객은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야기의 태반을 차지하는 터라 2014년엔 어울리지 않는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이 지적받고 스스로 반성했던 선정적인 보도 행태와 같은 문제점은 사라지고, 거대 권력과의 싸움이라는 거시적인 측면에만 주목한 것 역시 일부 관객들에겐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슬기로운 해법>이 부제 그대로 언론이라는 ‘대한민국 제4의 권력에 대하여’ 용감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영화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제4의 권력 언론, 그 가운데서도 압도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보수언론이 권력을 남용하는 양치기 소년이 된 현실에서 ‘정의옹호’, ‘불편부당’이라는 <조선일보>의 사훈(社訓)의 의미는 무색하기만 하다. 어쩌면 영화 <슬기로운 해법>은 현대판 양치기 소년들이 저버린 ‘정의’와 ‘공평’의 의무를 다하게 하려는 작은 노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