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코미디 프로그램과 예능을 ‘깠다’. 말로는 물론이고 키보드, 스마트폰 터치패드로도 열심히 깠다. 그 가운데 <무한도전>에 대해서는 유독 관대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지난 5월 24일 방송된 <홍철아 장가가자>를 시청하고 나서야 이 ‘국민예능’ 자체를 비뚤게 대하기 시작한 것 같아 조금 민망하다. 뒤이어 방영된 꼭지인 <선택 2014>처럼, 다른 컨셉의 무한도전이 방영된다면 웃으며 시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 할 수도 없다. 지난주 방영분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문제들이 무한도전의 모든 특집에서 발현될 것이 아님을 알기에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글문을 연다.


무한도전 방송화면 갈무리


‘평균 이하’ 남자들의 ‘어떤 여성’ 찾기

<홍철아 장가가자>라는 타이틀은 ‘알람’과도 같았다. 이제는 유부남 일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멤버들의 청유 혹은 강요에서 시작된 특집이었기 때문이다. 방송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결혼적령기의 미혼인 이들의 사회적 위치를 환기했다. 멤버 중 유일하게 짝이 없는 노홍철이 연애가 아닌 결혼할 여성을 찾는 흐름은 당연한 듯 전개됐다. 결혼과 장가라는 주제는 그들의 의욕을 불러일으킬만 하지만, 방송 초반 노홍철이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 아니라고 밝힌 것은 잊은 듯 했다.

‘이상형’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인권침해 등이 포함되지 않은 이상 비판의 여지가 없다. 문자 그대로 선호하는 형태에 대한 언설이다. 어떤 강요도 있을 수 없는것이 당연하다. 피차 솔직해지자는 제안은 ‘무도 차세대 리더’ 후보 공약으로 내놓은 노홍철의 각오이기도 했다. 지난주 방송 초반, 무한도전 멤버들은 이상형에 대한 환상을 잔뜩 품은 노홍철을 희화화 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예쁘고 착한, 두 어절에 교집합으로 속하는 여성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장면이다. 이상형의 모호함을 놀리는, 흔히보는 가벼운 조롱이었다. 이상형과 현실의 매치가 어렵다는 것은 굳이 손가락 셈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안다.

미래의 신부를 찾는 긴 여정의 시작에서, 멤버들은 ‘난감한’ 선택지를 노홍철에게 제시하기 시작한다. 아주 예쁘지만 성격은 ‘더러운’, 또는 반려견을 열 마리씩 데리고 다니는 등의 상상이다. 여기에 ‘애가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자꾸 백 사달라고 하는 낭비벽 있는 여자라면’과 같은 질문이 더해졌다. 싱글맘과 여성에 대한 이 발화에서 교묘한 차별의식을 엿볼 수 있다.



노홍철보다 어린 여성들에게 ‘딱 좋다, 나이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궁합도 안 볼 것이다’ 라고 설득아닌 설득을 하는 장면도 있었다. 물론 애정관계에서 나이가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을것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날 방송에서 멤버들은 어린 여성, 여대생 등을 만날 때 환호하거나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야말로 ‘나이차이는 중요하다’는 역설이자 자기모순 이었다. “애를 낳아야 하니까”라며 아직 오지않은 미래 배우자의 ‘노산’을 염려하는 것은 그 연장선이다.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 없이 모든 여성의 출산을 전제하는 부분이었다. 예능 프로에서 어떻게 그런 ‘구구절절’함을 담겠느냐고 되물을수도 있겠다. 그러나 장면과 장면 사이의 함축을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다면, 방송이 되기에 애초에 부적절한 주제가 아닌지 고려해보아야 하는 것이 맞다.



멤버들이 그의 짝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곳은, ‘조건’을 갖춘 여성들이 있을만한 곳으로 한정되며 그렇지 않은 곳을 배제한다. 그곳에서 ‘일만 할 것 같은 여성들’이 탄생했고, 더 이상 사람들이 큰 목소리로 호응해주지 않는 연령대의 여성들도 만들어졌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간’이었던 여성들은 이상형의 범위를 좁히기 위한 노력에 의해 젊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사람으로 분류됐다. 이런 장면들이 토요일 저녁 황금시간대 지상파를 탔다. 여대 앞을 지나는 버스 노선과 오피스상권, 의과 대학, 거리에서 벌어지는 멤버들의 즉각적인 외모 감상도 꽤 인상적이다. 멤버들은 생면부지 여성들에게 다가가며 손짓하고, 외모를 형용하는 말을 한다. 이 장면들이 감별이나 품평이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는가?

왜 비판에 ‘열폭’ 하시나요? 

지난주 방영분에 불편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은 “이상형 찾겠다는데 왜 난리냐?”라는 논리에 둘러 쌓여 소위 ‘열폭분자’로 취급받고 있다. 이는 ‘많은, 게다가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주말 예능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마치 분노의 시작, 또는 전부일 것이라고 예단하는 착각이라고 본다.

방송을 만든 이들이 만약 사과를 한다면, 외모지상주의를 부각하거나 성차별을 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할 것이다. <노홍철 장가가자> 군데군데 묻어난 특유의 자막과 글씨체 등에는 늘 그렇듯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방송이라는 특성상 최대한 다양한 요소로 시청자의 감각을 당겨야하고, 그런 점이 자극적으로 다가갔을수도 있다. 노홍철이 주선자에게 제시한 조건인 ‘정장 + α’ 를 떠올려 보자. 좋은 인연을 소개해 준 이에게 주는, 그가 선택한 최선의 답례임에도 불구하고 화면 구석구석 드러난 불편한 지점들 덕분에 이 답례품의 평범함은 불식되고 말았다.

예능은 이런 문제들을 지적할 수 없는 성역인가? 귀에 설익은 소리는 불편하지만 그것이 말을 그쳐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 예능을 예능으로 봐야한다는 강요는 웃음이 누구에게나 완벽하고 평등하게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웃음을 다루는 방송에서는 무엇이든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비웃을 수 있으며, 무엇이든 배제할 수 있다는 논리는 달리 말해 그 대상은 웃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다름없는 것이다. 이것이 지난주 무한도전이 보여준 예능 프로그램의 정체성 혼란이며, 문제제기가 열폭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궁금한 점은, 예고편에 등장하는 여성과의 만남이 잘 ‘성사’되지 않으면, 이 과정이 다시 반복되는지 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 역시 ‘신붓감 찾기’가 끝날 때까지 이 글을 갱신해야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