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나고 슬플 수밖에 없는 위안부라는 소재에 대해, 주인공인 배수나(딸)와 배문하(아버지)은 몹시도 선명하게 화를 내거나 슬퍼하며 괴로워했다. 배우들은 시종일관 몸을 떨고 있거나 거칠게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고, 인물의 감정은 과장되게 느껴졌다. 그래서 차갑게 넘길 수 있었다. ‘어차피 연극이었으니까.’


극이 모두 끝나고 어둠이 찾아왔다. 짧은 사이를 두고 무대를 배경으로 비친 영상을 통해 실존 인물들의 증언이 투사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밀려든 답답함에 한숨이 났다. 할머니들은 화와, 슬픔과, 아픔, 그리고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극의 지나침과 달리 그들의 문장에 담긴 것은 꽉 여며진 한이었다. 몸서리쳐지도록 담담했다. 그래서 더 아팠다. 그것은 연극과 영상이라는 매체의 차이라기보다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관객이든, 배우이든, 심지어 가족이든, 당사자의 경험(과 감정)을 완벽히 똑같이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그런 본질적인 차이.


 


ⓒ 연극 봉선화 포스터


 


주인공 배수나는 위안부 문제를 자신의 졸업논문 주제로 삼아,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연구의 초점은 “전쟁 당시 그들이 어떤 일을 당했나”에만 맞춰져 있을 뿐, 그 비극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한다. 배수나의 아버지 배문하는 그렇게 가벼운 의협심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뤄보겠다는 딸에게, 위안부 당사자의 비극을 넘어 그 가족이 가졌을 수치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라고 비난한다. 위안부의 과거를 가진 어머니를 ‘창녀’라고 욕하며 폭력을 휘두루는 아버지를 견뎌야 했던 배문하는 스스로 그 고통스러운 가족경험의 증인이기도 하다. 그의 고통은 어머니를 증오했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 역시 어머니가 가진 ‘창녀’의 과거를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없었던 부끄러움으로부터 기인한다.


배수나의 화와 배문하의 슬픔. 그 속에서 할머니의 목소리만 무섭도록 쓸쓸하다. “개구리가 돌을 맞은 것이 부끄러움이더나? 길을 가다가 불량배들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것이 수치더나? 내가 당한 것도 그와 같다. 억울한 일이지 부끄러움은 아니란 말이다!” 한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화일까? 슬픔일까? 외로움일까? 혹은, 화이기만 한 것일까? 슬픔이나, 외로움이 온데 섞여 주름지고 굽은 몸에 배겨 남은 한은, 첩첩이 쌓인 세월 탓에 한층 아리게 느껴진다. 그 무게는 쉽게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가. 안타까운 물음이 떠오른다. 위안부 문제는 치유의 대상이 되어 온 게 아니라, 숨김의 대상이 되어 온 시간이 너무 길었다.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우선 모두가 그것이 상처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오랜시간을 증언하고 싸워온 것이었다, 20만명이 55명이 될 때까지. 더욱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 그들을 상처입혀온 것은 일본의 무관심보다도 같은 국민인 우리의 무관심이 아니었을까. 우리 대부분은 그들의 상처의 깊이와 아픔을 이미 알고 있다. 귀머거리나 장님인 척 하기에 그 상처들은 이미 해외에까지 퍼져나간 이슈가 된지 오래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우리의 눈과 귀를 덮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절머리나는 부끄러움일 것이다.


연극에서 이야기하는 위안부였다는 과거 자체에 느끼는 부끄러움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위안부였다는 과거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뭐?’라며 모른 척 넘어가려 했던 우리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연극은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가 아니라, 관심이 없었던 우리에게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질문한다. 화? 슬픔? 불편함? 부끄러움? 어쩌면 그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렇다면 이제는 그 질문에 덧붙여 우리가 질문을 던져야 할 차례인 것 같다. 우리가 진짜로 ‘누구’에 대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봉선화> 포스터는 “시대와 관객이 다시 부른 앙코르 <봉선화>, 우리들 자신에 대한 깊은 반성의 이야기”라는 카피로 연극을 소개하고 있다. 소개 그대로, <봉선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잊혀지거나 무뎌져서는 안 되는 질문이 되어 남게 될 것이다. 이 연극은, (한국인에게) 한국인을 (남 보기에) 불편하고 부끄럽게 했기에 소외되어왔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눈물과 함께 흩날리는 군표 ⓒ 뉴스핌



 


연극 <봉선화>는 일제강점기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 지난해 11월 초연 때부터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재공연 문의가 쇄도한 탓에 올해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께 헌정하는 ‘헌정공연’의 의미로 지난 4월부터 5월 1 1일까지 앙코르 <봉선화>를 공연했다. 실제 역사적 영상에 대비되어 상징적으로 구성된 배우들의 몸짓앙상블이 좋은 호흡을 이루었고, 원작 소설인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각색하여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면서도 탄탄한 구성을 갖춘 무대였다. 다만, 일부 주연 캐릭터들의 평면적인 성격연기가 아쉬웠다. 연극 <봉선화>는 2014년 한 해 동안 서울시극단의 레퍼토리로서 세종문화회관-서울자치구 간 연계 공연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공연 일정 :
2014.05.29 ~ 2014.05.30, 강남구민회관
2014.07.04 ~ 2014.07.05, 구로아트밸리
2014.07.11 ~ 2014.07.12, 강서구민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