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서울인권영화제(2014년 5월 22~25일) 상영작이었던 요루바 리첸(Yoruba Richen) 감독의 <뉴 블랙(the New Black)>은 동성혼 문제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동성혼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된 흑인 공동체에 초점을 맞춘다. 2012년 2월 메릴랜드 주 의회는 동성결혼보호법(Civil Marriage Protection Act)을 통과시키지만 통과된 법은 동성혼 반대세력의 이의제기로 주민투표에 붙여진다. 이에 흑인 인구 비율이 높은 메릴랜드 주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흑인 공동체 또한, 교회로 대표되는 동성혼 반대 세력과 동성애자로 대표되는 동성혼 찬성 세력으로 나뉜다.


ⓒ 공식 홈페이지(www.newblackfilm.com)

영화는 ‘흑인’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동성혼 찬성-반대 논쟁을 다루지만, 오히려 이 영화는 동성혼 문제를 ‘기독교’ vs ‘동성애’로 풀어내는 영화에 더 가깝다. 기독교도가 다수인 흑인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동성혼 지지와 반대의 의견을 교차 편집하며 기독교인과 동성애자의 목소리를 동시에 담는다.

교회는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에 동성혼을 반대한다. 동시에 그들은 “신은 레즈비언을 만들지 않았다”며 동성애자들의 성적 취향이 ‘선택’의 문제라고 보며, 그러기에 동성혼은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차별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이유로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흑인 공동체는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아직 노예제가 잔존할 때에도, 1955년 몽고메리 부인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버스 좌석에 앉지 못할 때에도, 교회는 그들의 ‘자기 존재’를 인정해주는 공간이었다. 교회 안에서만큼은 그들은 그들의 온전한 이름으로 불렸다. 오늘날에도 미국 내 흑인 공동체는 대게 교회를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마틴 루터 킹 때와 마찬가지로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흑인 공동체에서 흑인 동성애자들만은 그들의 ‘자기 존재’를 부정당한다. 그의 성적지향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 아닌, 그대로 두면 지옥에 가는 ‘정죄’의 대상이 될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성혼 반대세력이 내세우는 ‘성경’엔 단순히 동성 섹스로 번잡해진 소돔과 고모라를 다루고 있을 뿐 직접적으로 동성애나 동성혼을 반대하는 구절은 없지만 말이다. 교계의 소수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동성애자들은 위와 같은 기독교에 입장에 대항하며, 동성혼에 반대하는 것은 곧 차별에 찬성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동성애자들에게 동성애자인 이유는 그들이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동성결혼보호법을 지켜내기 위한 서명 운동을 전개하였던 ‘시스타즈’의 한 운동가는 “어떻게 동성애자가 되었냐”고 질문하는 흑인 젊은이에게 “당신은 어떻게 이성애자가 되었나요?”라고 되묻는다. 이 질문에 흑인 젊은이는 침묵한다. 이성애자들이 어떻게 이성애자가 되었는지 알 수 없는 듯이 동성애자들도 어떻게 동성애자가 되었는지 알 리 없다. 즉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선천적인 성적 취향을 이유로 동성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다.

<뉴 블랙>이 동성혼에 반대하는 교회의 의견을 전달함에도 불구하고, <뉴 블랙>은 교회와 동성애가 섞일 수 없는 대상이라고 단언하지 않는다. 영화는 여전히 신앙을 지켜가고 있는 흑인 동성애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흑인 교인을 제시하며, 흑인 공동체가 흑인 동성애자들도 품은 ‘뉴 블랙(the New Black)’ 공동체로 나아갈 것을 제시한다.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

이번 서울인권영화제의 메인 카피는 “나 여기 있어요”였다. 이는 이해의 요청이 아니다. 존재긍정의 요청이다. <뉴 블랙>은 교회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들을 그들이 기존에 속해 있던 가족, 교회 공동체에서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교회와 교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의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돌을 던졌다. 그러나 그들이 따르는 예수가 만약 2014년에 왔다면, 동성애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까. 참고로 2000여년 전에 그분은 세상 사람들이 부정하고 소외시킨 어부, 세리, 창녀들을 사랑으로 품어주셨다고, 그들의 존재를 긍정해주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