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신촌 메가박스에서 8일 간 진행된 제 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막이 내렸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이번 축제는 1997년 처음 개최하여, 현재 아시아 최대의 여성영화제로 발돋움하고 있다. 90년대 여성주의 문화운동의 흐름에 따라 여성영화인 모임이 결성되고, 서울여성영화제를 시작한 이래로 이들의 지향점은 한결같다. ‘전도유망한 여성영화인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여성감독은

 

이들은 왜 여성감독을 늘리는 것에 주목할까? 실제 영화계에서 ‘여성’의 존재에 대해 살펴보면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지난 해 70편이 넘는 한국영화가 개봉했다. 관객 동원 수를 기준으로 한 박스오피스 상위 10편의 영화 중 단 한 편만이 외국영화일 정도로 2013년은 한국영화가 강세였다. 그러나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 중 ‘여자’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하나도 없었다. 지난 해 영화를 발표한 여성 감독은 손에 꼽았다. <집으로 가는 길>의 방은진, <연애의 온도>의 노덕, <환상 속의 그대>의 강진아, <앵두야, 연애하자>의 정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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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방은진 감독, 노덕 감독, 강진아 감독

 

여성은 영화판에서 ‘이방인’이다. 제작자부터 투자자,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조명‧음향‧미술팀 스탭에 이르기까지 영화 생산 계층의 대부분은 남성이다. 아직은 ‘남자들의 세계’인 영화계에서 여성 감독 역시 극소수에 불과하다. ‘왜 여자 감독이 많지 않은가’라는 의문에 일부는 감독을 지망하는 인원 자체가 남성이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여성이 3D업종인 영화판에서 버티기 힘들다고 말하고, 아직 영화계가 여성들에게 보수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여성 감독 부족이라는 현상을 낳았다.

 

여성감독이 필요한 이유

 

영화 생산계층의 절대다수가 특정한 성별이라는 점은 영화 소재나, 이를 다루는 방식 등의 콘텐츠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야기한다. 올 초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국제포럼에서, 보스니아 출신 여성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는 “영화 산업에서의 여성의 부재는 영화의 이야기를 (남성의 시각으로) 한정시키며, 이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심각한 불균형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남성감독의 남성 캐릭터와 여성감독의 남성 캐릭터는 다르다. 남성감독의 여성 캐릭터와 여성감독의 여성 캐릭터 역시 다르다. 성에 따른 사회화는 인간의 사고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감독이 여성이냐 남성이냐의 문제가 영화의 전반적인 성향이나 인물을 다루는 방식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수십 년간 영화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더 ‘잘’ 그려왔고, 누군가의 이야기는 소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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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캐릭터의 내면을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은 여성감독들이 지닌 강력한 힘이다.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는 소외된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과의 소통 문제를 개성 있게 그려 호평을 받았으며, 김미정 감독의 <궁녀>는 신선한 소재를 섬세한 시선으로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하린 감독의 <앵두야, 연애하자>는 서른을 앞 둔 평범한 여자들의 성장 드라마를 유쾌하게 그려내기도 했다. 네이버 영화리뷰 파워블로거 M씨는 “현실적으로 여성감독이 남자보다 더 남성적인 영화를 만들며 살아남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하며, “여성의 섬세함을 잘 살리고 여성적인 측면이 활용되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해에 흥행을 거둔 여성감독의 영화가 두세 편 가량 나오면 ‘여성감독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냐는 설레발 가득한 보도가 이어진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여성감독이 연출한 수백만 관객 영화가 손에 꼽을 수 없이 많아지는, 진정한 ‘여성감독 전성시대’가 오기까지 여성영화인 육성은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