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진 예수님의 말씀에는 비기독교인들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부분이 많이 있다. 그는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차별하지 않고 모든 이웃을 사랑한다. 인간 가까이에서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고자 하는 분이기도 하다. 모든 이들을 동등하게 포용한다는 그의 뜻도 알려져 있다. 현실에서 이 이야기들은 관념에 근거한, 이상적인 주장으로 들릴수도 있다. 그러나 ‘보편적 인류애를 추구한다’는 명제는 철학적 측면에서 수긍할 만하고 실현됐으면 하는 말씀들이다. 비기독교인들이 공감하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러나 지난 7일 서울 신촌에서 개최된 ‘LGBT 퀴어 퍼레이드’에서 기독교인들이 보여준 모습은 교회의 핵심과 그 정신에 대한 환멸을 불러일으켰다. 퀴어 퍼레이드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퍼레이드 인파 사이를 돌아다니며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주장했다. 자리를 채운 LGBT들을 마주보고 그들의 정체성을 무시한 것이다. 자신과 다른 성적 가치관을 가진 이들을 사랑하기는커녕 근본부터 개조하려 한 셈이다. 이 날 오히려 퍼레이드에 참가한 이들이 행사를 방해하는 기독교인들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이 날 호모포비아 기독교인들에게 ‘함께 사는 세상’을 지향해야 한다는 공동체 정신은 부재했다. 

호모포비아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따라 동성애를 금기시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누구도 이들에게 동성애를 사랑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교회 밖에서도 종교적 가치관이 통할 거라는 사고방식이 애처로울 뿐이다. 회개하고 뉘우치면 동성애를 용서 받을 수 있다는 논리는 교회 안에서나 통한다. 퀴어 퍼레이드나 퀴어 영화제가 열리고, 동성애자 인권이 공론화되는 시대다. 동성애자들은 현실과 가까이서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종교적 신념의 실천은 화합과 평화처럼 인류애 구현이라는 명분을 가질 때 비종교인들 사이에서도 수용 가능해진다. LGBT 퍼레이드를 방해했던 기독교인들이 보여준 ‘믿음’은 사회 통합 대신 갈등을 유발할 뿐이었다. 그들이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자를 면전에 두고 부정하고 스님에게 전도를 시도하는 사람들이다.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불신지옥 예수천국’을 온몸으로 외치는 기독교인도 있다. ‘일부’라는 극단적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대명사가 되었고 모든 기독교인들은 ‘개독’이라는 멍에를 얻었다. 여기에 비기독교인들의 불신까지 사게 됐다.

21세기 현재, 예수님의 복음은 충분히 전파되어 사회주의·이슬람 국가에까지 가 닿았다. 더 이상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예수님의 뜻을 전달하거나 강요할 필요가 없다. 비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몰라서 믿지 않는것이 아니라 그를 믿지 않겠다고 선택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참 좋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나누며 사랑을 실천해보는 건 어떤가. 동성애를 죄악시하라는 둥의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성경 말씀 대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