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2일, 조희연 교육감 당선자는 서울 시내 초·중·고 학생들과 간담회를 했다. 청소년들이 아무런 장벽 없이 교육감 당선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던 행사였다. 이날 조희연 교육감 당선자는 “학생이 곧 교육감”인 학생중심주의를 표방하겠다고 하였다. 그는 선거권 연령 확대에도 찬성하는 뜻을 밝혔는데, 이날의 발언대로, 그가 정치권에 청소년 선거권 문제를 공론화하는 시발탄을 던져주길 바란다.


 


 



6월 22일, 조희연 교육감과 서울 시내 학생들은 을 가졌다. ⓒ뉴시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선거의 4대 원칙 중 하나는 ‘보통선거’ 원칙이다. 성별, 종교, 계급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원칙이지만, 예외는 존재한다. 바로 ‘나이’다. 우리나라는 만 19세 이상의 성년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몇몇 청소년들의 헌법소원으로 선거권 연령 제한 법령이 헌법재판소에 올려진 적도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합헌이라 결론 내렸고 선거권 연령은 입법부의 재량사항이라고 판단했다. 선거권 연령에 관한 사안을 정치적 판단의 영역으로 본 셈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선거권 연령 확대 사안에 관심이 없다. 때문에 조희연 교육감 당선자의 ‘청소년 선거권 확대 찬성’ 발언 이후, 그의 추후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선거권 연령 확대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면서 가장 시급한 부분은  교육감 선거다. 현재 교육 제도의 당사자인 학생들은 교육의 방향을 결정하는 교육감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선거권 확대 반대론자들은 이에 대해 ‘합리적인 제한’이라고 주장한다. 청소년은 판단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선거권을 주면 잘못된 선택을 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헌법재판소 또한 같은 논리로 선거권 연령 제한이 합리적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투표권 확대 역사를 돌아보면, 이들이 주장하는 ‘무지’의 논리는 노동자 선거권, 여성 선거권, 흑인 선거권 등의 운동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당시 지식인들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여성/흑인은 합리적인 판단 능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했다. 청소년의 합리적인 판단능력을 논증하기에 앞서, 민주주의와 보통선거가 ‘엘리트주의’에 반대말이라는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성년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이유는 ‘지적능력’의 표식이 아니다. 우리에게 투표권이 있는 이유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국민주권의 원칙 때문이 아닌가? 자신의 일을 본인이 직접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에 따라 청소년도 자신과 관련된 사안을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교육감 선거에 선거권을 허해야 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만 19세가 되면 자동으로 선거권을 부여받을 것이기 때문에, 선거권 ‘제한’이 아니라 선거권 ‘유예’라며 선거원 제한 법률은 청소년들의 참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만 19세가 지나면 졸업을 하고, 그 이후론 교육제도와 직접 관계할 일은 없다. 청소년이 정체성의 정치를 행할 기회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교육감 선거에 청소년을 포함하지 않는 것은 ‘유예’가 아니라 ‘제한’이다. 선거권 확대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무지’의 논리의 이면에는 존재하는 ‘선동’에 대한 공포도 의심쩍다. 반대론자들은 청소년들이 특정 정당과 매체에 선동당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표한다. 그러나 청소년들만 하나의 정당, 하나의 신문뿐인 이상한 국가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그들 또한 여러 정당, 다양한 논조를 가진 언론들을 접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를 유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시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 가능 연령인 만 19세 이전에 경험하는 교육제도에서, 민주주의의 중핵인 참정권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니, 학교에서 아무리 참정권에 대해 배워도 이 권리의 행사를 각종 법률이 막고 있다. 청소년은 투표할 권리뿐만 아니라, 정당에 가입할 권리, 선거운동할 권리도 없다. 청소년들은 참정권에 대한 이론만 배우다가 참정권을 얻게 되는 셈이다. 평생동안 정치적 무균상태에 있기를 요구받다가, 20대가 되면 “왜 투표 안하냐”는 비아냥을 듣는다. 민주시민은 단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점진적인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교육’에 하루빨리 선거의 경험이 추가되길 바란다. 선거는 자신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기에, 선거처럼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불러오는 유인책도 없으며, 이처럼 참정권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