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9일, 이한열은 연세대 정문에서 최루탄을 맞는다. 이 사건은 6월 혁명의 기폭제가 됐고, 시민들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 후, 이한열과 함께 싸우던 학생들은 민주 청년에서 386세대가 되었다. 그들은 오늘날에도 사회의 사건·사고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됐다. 몇몇은 학생운동 경험을 발판 삼아 여의도로 진출하기도 했다.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분명, 이 두 청년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386세대와 현재의 20대 청년들과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아 보인다. 몇몇 386세대는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고 투표나 집회 같은 참여활동에도 무심하다며 ‘20대 개새끼론’을 주장했다. 이에 ‘88만원 세대’로 호명된 20대는 386세대가 아직도 낭만에 젖어있다고 반박했다. 지금은 민주화가 최우선 과제인 시절도, 독재정권이 절대악인 시절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같은 불화의 상황에, 청년작가들이 모여 386세대-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를 현재의 20대로 재해석하는 전시를 기획했다. <열사에서 친구로 展(6/9 ~ 7/9, @이한열 기념관)>에 참여한 청년작가들(강영민, 낸시랭, 차지량, 임경섭, 홍태림, 박경효)은 이한열 옆에 ‘열사’라는 칭호 대신 ‘친구’라는 붙여 살아 숨 쉬는 21세기 청춘으로 변모시켰다.

포스터. 포스터 속 작품은 강영민 ⓒneolook


 
“열사를 친구라는 이름으로 불러 우리 옆에 세워 놓으면,
어떤 새로운 문맥이 생길지에 대한 의문으로 젊은 작가들이 모였다”


전시회 정중앙 벽면에는 이한열의 영정사진이 걸려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한열의 영정사진을 패러디한 강영민 작가의 <이한열 썩소(포스터 속 작품)> 작품이다. 원래 영정사진 속 이한열은 무표정하다. ‘열사’라는 칭호를 생각하면 비장해 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강영민 작가가 패러디한 영정 속 이한열은 썩소를 짓고 있다. 작가는 냉소와 썩소를 구분한다. “냉소가 실제로 웃지 않는, 돈의 가치 이외에 아무것도 믿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이라면, 썩소는 한 쪽 입꼬리라도 올리며 웃는, 청춘-진정성을 지키고 있는 아이콘의 숨겨진 마지막 자기 진실”이다.

이 시대의 시대정신인 냉소주의는 그 어떤 사회 변화의 가능성도 믿지 않는 비관주의를 의미한다. 실제로도 현재 20대의 현실은 춥다.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지난 지 오래고, 청년(15~29세) 고용률은 39.7%로 곤두박질 쳤다.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불안정노동자’는 늘어나는데, 최저임금 5,210원이 생활임금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작가는 이 같은 현실에 냉소주의자들처럼 웃지 말라고도, 386 힐링 멘토들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웃자고 말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 시대의 냉소주의와 지난날의 낭만주의를 섞어, 반은 웃고 반은 웃지 않는 썩은 미소를 짓자고 말한다.

차지량 ⓒneolook

썩소 짓는 이한열 옆에는, 차지량의 <한국난민판매 : 이한열>이 있다. 강영민의 이한열은 반이라도 웃으며 각박한 현실 인식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꿈꿨다면, 차지량의 이한열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열정을 소진한 모습이다. 최근 ‘아트스타 코리아’에 출연하기도 한 차지량은 지난 3월 페스티벌 봄을 통해 선보인 <한국난민판매>에 이한열을 등록했다. <한국난민판매>는 정치, 사회, 교육, 문화 등 “모든 시스템의 불균형을 이뤄 극대화된” 2024년 대한민국을 설정하고, 사회에 대한 ‘체념’을 머금은 개인이 국가를 떠나는 상상을 한다.

<한국난민판매> 속 이한열은 무려 ‘대한민국 남성 시위그룹’ <HOT GUY> 출신이다. 2024년에도 이한열은 사회를 바꾸기 위해 계속 노력을 한다. 그는 20세기 독재정권의 경찰 곤봉을, 21세기의 경찰 물대포를 시민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모든 열정의 시도는 전경 코스츔 파티로, 여름맞이 물대포 파티로 변형되어 “상품화”된다. “더이상 혁명가도, 개성을 위한 계몽주의 운동가도, 대안을 추구하는 이상가도” 요구하지 않는 사회에서, 이한열은 시스템에 대한 체념을 머금고 대한민국을 떠나 스스로 난민이 되기로 한다. 1987년을, 2014년을 지난 2024년의 대한민국은 독재정권 따윈 없으며 권력구조는 더욱더 복잡해져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는 사회로 그려진다. 차지량은 이 같은 미래를 예측하며, 386 세대의 방식으론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없음을 은유하는 동시에, 아직도 그러한 방식을 현재 20대에게 요구하는 ‘20대 개새끼’론의 주인공들을 비판한다.

이외에도 임경섭의 <열사에서 일꾼으로>는 2014년 6·4지방선거를 끌어와 세상이 변했음을 이야기했다. 이한열은 거리의 열사가 아니라, ‘새누리민주연합’ 서대문구 구의원 후보로 변모했다. 홍태림의 <머금고 흐르는> 시리즈는 1987년 이한열이 맞은 최루탄과 2011년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던진 최루탄을 연결했다. 낸시랭은 현재 20대 젊은이들이 사건을 기록하는 방식, ‘인증샷’의 방식으로 이한열, 박정희 그리고 마르크스 <자본>과의 만남을 인증했다.

“관습에 매몰되어 있는 기억”이 아닌, ‘적극적으로 만들어 낸 기억”에 박수를
현재 20대에게는 6월 항쟁의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민주항쟁을 다시 체험할 수도 없다. 이렇게 ‘감정이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6월과 이한열의 이미지는 아무런 자극도 주지 않는 역사 교과서 속 참고자료로 전락했다. 20대는 혁명의 치열함을 기록한 위와 같은 사진에 386세대처럼 생생하게 몰입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전시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이한열 열사를 화석화된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생생한 21세기 청년으로 해석했다는 것에서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2014년의 20대에게도 6월 혁명 386세대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