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철 페이스북


청년은 정치와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일까. 지난 5일, 새정치민주연합 안희철 전국청년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퇴 글을 남겼다. 원인은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고, 청년 정치인을 육성할 수 없는 청년위 환경이었다. 안 위원장이 “새정치민주연합이 실제로 내부에서는 전혀 청년을 대변하려 한다거나 청년을 동등한 정치인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새정치 전국청년위원회 1년 예산이 “0원”임을 언급한 점을 보면 청년위는 청년을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청년위원회는 본디 정치권까지 닿지 않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대변하기 위한 조직이다. 청년의 삶이 팍팍하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하기 입 아플 정도이다. 취업에서부터 주거까지 어디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소수 청년들만이 청년 실업과 살 곳이 없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다. 그러나 통계는 청년 전반이 겪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결국 사회 구조적 문제 때문에 청년들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청년들의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정치권은 자신들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해 알지 못하는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청년들을 정치계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청년위원회는 탄생한 듯했다.

그러나 기성 정치는 청년위원회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인들은 청년 개개인에게 무관심하다. 자신이 정치인으로 당선되는 데 별 영향을 미치는 세력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원인 중 하나는 청년층의 낮은 투표율이다.) 그러나 청년이 지닌 ‘참신함’이라는 사회적 가면은 매력적이다. 기득권 정치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가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본디 정치인들은 청년을 대하는 데 진정성이 없었다. 그러기에 정치인들이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청년위원회 소속 청년들을 이용한 후 버리는 토사구팽식 행태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근 이준석이 새누리 ‘당혁신기구’ 위원장으로 초대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년위원회의 존재 이유가 실제로 정치적 도구였든 아니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정치권은 청년위원회를 통해 청년들의 정치 입문을 도왔다. 그렇다면 동료의식을 가지고 청년위원회 청년들을 대해야 한다. 안 위원장처럼 청년위원회의 위원들은 가까운 미래에 당을 이끌 정치인이다. 기득권 정치인들이 눈앞에 있는 당장의 이익 때문에 청년 정치인들과의 관계에서 불신을 만든다면 소속 정당은 물론, 국가의 미래마저 보장할 수 없다. 정치인은 국민 그리고 국가 발전을 위해 일하는 공인이다. 기성 정치인들은 청년위원회를 존중하며 함께 청년층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공인으로서 국가 미래에 대한 책임을 다 하는 일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