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을 뺀 일주일에 6일, 비가 오지 않으면 여대생 A씨는 저녁 무렵 텔레비전을 켜고 케이블 스포츠 채널을 맞춘다. 그녀는 한 프로야구 구단의 팬으로 경기를 꾸준히 챙겨 보고 있다.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친구들과 직접 야구장을 찾기도 한다. 


지난 2013년,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통계에 따르면 프로야구의 총 관중이 약 674만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절반은 A씨와 같은 여성임이 드러났다. 남성에게 더욱 인기가 많을 것이라고 여겨지곤 했던 프로 스포츠, 그 중 규칙이 어려운 편으로 접근 장벽이 높다는 평이 있는 야구에도 여성들의 관심이 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14년 프로야구 시즌 개막 전, 각 구단의 선수들과 감독들을 중심으로 팬들을 초청하여 미디어 인터뷰를 갖는 ‘프로야구 미디어데이’ 행사가 처음으로 이화여대에서 열렸다는 것은 그만큼 늘어난 여성 팬들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이렇게 여성 관중이 늘어나자, 구단들은 그녀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두산 베어스의 경우 여성을 겨냥한 디자인의 다양한 의류와 팬시상품 등을 발 빠르게 내놓아서 많은 여성 팬들을 확보하였고, 최근 엘지 트윈스 역시 2014년 시즌부터 헬로키티 캐릭터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여 다양한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품 마케팅뿐만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관중을 유치하고자 하는 행사도 기획되었다. 특히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여자 대학교에 직접 찾아가서 야구 규칙을 설명해주고 경기 초대권을 주는 등 실질적으로 야구의 접근 장벽을 낮추고 자신들을 홍보하고자 하는 강연회 형식의 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여성들을 대하는 시각과 태도는 철저히 기존 야구팬들을 대하는 그것과는 ‘달랐다’. 그녀들은 언제나 야구 규칙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 가르쳐주어도 잘 이해를 못하는 야구 팬 세계의 2등 시민과도 같은 취급을 받곤 한다. 이러한 시각은 강연회의 제목이나 이를 홍보하기 위한 포스터에서도 엿볼 수 있다.


넥센 히어로즈 구단 주최의 야구 강연인 ‘야구 in Girl’ 포스터를 보자. 야구에 대한 무지와 더불어 자신을 꾸미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는 편견을 더한 여성들의 이미지를 반영한 듯 야구공을 쥐고 있는 손가락에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엘지 트윈스의 강연회 제목인 ‘여자가 사랑한 다이아몬드’는 여성들이 허영심에 가득 차 있다는 편견을 돌려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모습들은 그들이 여성에 대해 차별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뿐이다.


 



넥센 히어로즈 구단의 야구 강연회 홍보 포스터




 


그리고 기존의 대부분의 팬 층을 차지하고 있던 남성들 역시 여성들을 ‘다르게’ 대우하고 있다. 남성이 대부분인 인터넷 야구 팬 커뮤니티에서 ‘여팬’은 일종의 조롱의 대상이다. 그녀들은 제대로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닌 잘생긴 선수를 좋아한다. (이는 속칭 ‘얼빠’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그녀들은 야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야구 선수들을 연예인 대하듯이 좋아할 뿐이다. 야구장에 가는 이유? 야구를 보려는 게 아니라 응원이 재밌고, 친구들과 놀러 가는 거다. 대표적인 여성 야구팬들에 대한 비난이다.



이와 같은 ‘얼빠 논란’ 뿐만이 아니다. 야구의 영역에서 여성들이 동등한 팬으로 인정되기는 힘들다. 소위 말하는 ‘훌륭한’ 외모를 지닌 여성들은 곧장 야구장의 여신이라는 칭호를 획득하고 화제가 된다. 또한 야구를 같이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상대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여성들은 단지 야구 선수들의 얼굴만을 좋아하는 ‘수준 낮은’ 팬이 되어버린다. 결국 이 과정에서 기존의 여성을 억압하던 ‘외모’는 다시금 힘을 얻어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문제로 지적되던 스포츠 아나운서와 치어리더의 외모를 화젯거리로 삼는 것이나 여성 성 상품화 논란을 넘어선다. 야구를 좋아하고자 하는 모든 여성들은 이렇게 기존의 차별적인 시각에 고착되어 있다.


스포츠는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열려 있는 지극히 평등한 영역이다. 그것을 어떻게 좋아하는지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여팬 혹은 얼빠, 그 무엇으로 불리든지 간에 마찬가지다. 특별대우, 혹은 차별 모두 여성에 대한 오해와 고정관념으로 물든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녀들을 가두고 있는 것이다.


야구팬들 사이의 우스갯소리로, 야구가 ‘그깟 공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 야구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이 있다. 야구는 공을 갖고 하는 ‘놀이’다. 놀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누구에게나 재미있을 수 있다. 그것을 즐기는 사람의 성별과는 전혀 관계없이 말이다. 모두가 즐겁게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평범한 ‘야빠’가 되는 세상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