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세 가지가 의, 식, 주라고 했다. 모두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들이다.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이들은 그저 우리의 필수조건에서 문화사회 전반으로 많은 진화를 거듭했고 ‘필수’ 이상이 되었다. 이 중 ‘집’은 자본의 표본이 되어 ‘건축경기’, ‘부동산 투기’, ‘부동산 버블’ 등 경제적 용어와의 관계가 더 익숙하다. 이번 연재는 ‘건축과 사람’이라는 주제로 잊혀져가는 건축물의 향수와 추억을 살펴보고 건축과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할 생각이다.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이 사람들에게 알려진지는 어느 정도 됐다. 특별한 건축방식으로도 각광 받았지만 부암동 나름의 온화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탓에 평일에는 400명 정도의 방문객들과 주말에는 1200명 정도의 방문객들이 온다고 한다. 윤동주는 부암동 일대인 서촌에 살았던 당시 소설가 김송의 집에 하숙하며 연희전문대(현재 연세대학교)를 다녔다. 윤동주가 하숙하던 한옥집은 아쉽게도 1995년 철거되어 그곳에는 주택단지가 들어서 확인 할 수가 없다. 철거 할 당시에는 아무도 그곳이 윤동주가 살던 집인것을 몰랐다고 한다.


윤동주 문학관은 2009년까지 수도가압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1974년에 세워진 이 수도가압장은 지대가 높은 청운동 일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세워졌다. 건물은 2009년 용도를 다하면서 종로구로 이전됐다. 그러면서 이곳 위에 조성되어 있는 ‘시인의 언덕’을 연계지어 이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고심하던 종로구는 윤동주 문학관을 2011년 건축가 이소진(서울 아뜰리에옹 대표)에게 맡기게 됐다.


 


이곳은 부암동과 청운동이 맞붙어 있는 서촌의 끝이다. 서촌에는 옛날부터 예술인들이 많이 살던 동네였는데 1930년 대부터 화가 이중섭, 이상범, 시인 노천명, 이상, 윤동주, 소설가 현진건 등 당대 유명했던 예술인들이 살았었다.


 


윤동주 문학관의 입구에 들어서면 시인 윤동주를 소개하는 소개말과 그가 남긴 글귀들을 전시해 놓았다. 제 1전시장에 전시해 놓은 글귀들과 그가 남긴 연습장들을 구경하고 제 2전시장으로 넘어가면 과거 수도가압장시설이었던 문학관의 모습이 여실히 들어난다. 제 2전시장은 제 3전시장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는 윤동주를 기리는 어떠한 글귀, 전시물들이 배치되어 있지 않다. 그 길목 자체가 전시물이자 윤동주를 상징하는 어떠한 공간인것 이다. 윤동주의 시 <별헤는 밤>을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진듯한 이 공간은 비를 막아주는 천장이 없이 하늘을 바로 볼 수 있게 뚫려있다. 제 3전시장으로 향하면 밀폐된 동굴에 온 느낌을 준다. 공간을 정사각형으로 만들어 막아 놓았다. 이 곳이 물탱크의 중심일 것이라 추측된다. 이 깜깜한 공간에는 빛이 들어오는 작은 개수구가 있다. 어떤 이는 이 개수구가 윤동주의 시 <자화상>을 표현했다고도 이야기한다. 


 


제 3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예전 개수구의 흔적


 


 


윤동주 문학관 제3 전시장, 윤동주 시인의 죽음을 기리듯 어둡고 우울하다.


 


이 날 운이 좋게도 윤동주 문학관을 건축한 이소진 건축가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날 이소진 건축가는 동대문구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건축탐방’의 큐레이터로 윤동주 문학관을 찾았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개수구를 살려놨다고 이야기한다. “물탱크로 쓰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개수구를 살려놨어요. 이 공간의 시간을 느낄 수 있게끔 그냥 두었어요” 그녀의 설명을 듣던 어떤 분은 벽면의 위쪽은 흰색으로 색칠을 했지만 밑쪽은 일부러 누렇게 물자국을 두었냐고 물었다. “일부러 안했습니다. 만약 이걸 도색을 하면 물탱크의 기억이 다 사라지기 때문에 두었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것을 의도적으로(예술적으로) 칠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셔요. 이 자국은 실제로 물탱크로 사용될 때 물이 올라가고 내려올 때 생긴 물 자국이에요”라고 답했다. 건축 공간의 기억과 추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예전 물탱크 시절 물이 올랐다 내렸다 했던 흔적이다.


 


 


예전 물탱크 시절 활용되었던 개수구이다. 건축가 이소진은 건물의 기억을 위해 남겨놓았다고 한다.


 


윤동주 문학관 관람을 마치고 문학관 위에 조성된 ‘시인의 언덕’을 구경하러 나왔다. 시인의 언덕을 통해 내려다본 부암동은 자주색 건물들이 아기지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 같이 느껴진다. 시인의 거리를 걷고 있다 50대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아주머니는 부암동 주변을 운동 삼아 걸은지 10년이 다 되간다고 했다. 이 공간이 원래는 이렇게 아름답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10년을 이 쪽으로 산책 나오는데, 지금 많이 좋아진 거예요. 전에는 공사를 하지 않아서 모래랑 돌 밖에 없었어요. 이렇게 공사를 해서 많이 좋아진 거지 주말에는 저기 노천공연장에서 음악회도 하고 그래요. 원래 우리 집 아저씨랑 같이 나오는데 오늘은 아저씨가 일이 있어서 혼자 나왔어요” 공간과 사람, 사람이 공간과 맺는 것은 삶의 일부분이다.


 


시인의 언덕에서 내려다 본 부암동


 


 


시인의 언덕을 따라 이어진 성벽


 


최근 이곳저곳 문학관 유치에 힘을 쓰면서 2000년대 초반 3~4개 였던 문학관이 2013년에는 한국문학관협의회에 등록된 문학관만 60여개가 넘는다. 지역에서 문학관 유치에 힘쓰는 이유는 관광자원 때문이다. 소설가 이외수씨가 화천에 정착한 첫 해에 2000명이었던 관광객이 2012년 2,5000명으로 10배를 넘어섰다. 역사유적지나 관광자원이 없는 지자체의 경우 유명 시인, 소설가들을 스카우트해 지역에 거주하게 한다거나 문학관 등을 유치해 관광자원으로 삼는다. 그렇게 되다 보니 무분별한 문학관 유치 그리고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들어서는 뜬금없는 문학관들이 문제가 됐다. 그래서 윤동주 문학관이 더 특별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나면 이 연재를 읽는 독자들도 윤동주 문학관에 많이 찾아가보면 좋을 것 같다. 오래된 것의 추억을 느껴 보고 싶다면 더욱 추천한다. 또 새 것만을 고집하는 분들에게도 이 곳을 추천한다. 이 곳에 오면 다른 생각이 들 수도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