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을 향한 쓴소리, 언론유감! 시즌3로 새롭게 돌아왔습니다. 수많은 언론에서 날마다 다뤄지는 20대, 청년, 대학생 관련 기사 중 20대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날카롭게 비평하는 고함20의 전통 연재! 언론유감 시즌3에서는 한 주간의 기사들 중 ‘좋음(Good)’ ‘그럭저럭(SoSo)’ ‘나쁨(Bad)’으로 각각 3개의 기사를 제시하는 형식을 재도입함으로써, 20대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인식은 무엇일지 독자와 함께 한 번 더 생각해고자 합니다.

 

GOOD: [매일신문] 해외 경험 찾아 나간 청년들.. 강은영, 강선정, 박정욱씨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8826&yy=2014#axzz3AC2myRyK
이 기사는 해외경험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인터뷰다. 해외경험이라 하면 빵빵한 스펙이나 큰 기업에서의 인턴정도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기사 주인공들이 소박하게, 일을 즐기는 모습이 그려진다. 실제로도 우리가 쉽게 경험하지 못할 일들이다. 그들의 경험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스펙, 학점, 취업에 파묻힌 대학생들이라면 그들의 경험이 새롭고 부럽기까지 할 것이다.
 
“이 기사는 토익 만점자, 대기업 입사자들의 취업 성공 팁을 담은 기사가 아님을 독자들에게 미리 알려 드린다.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 꿈을 좇아 사는 청춘들을 찾았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며 토익 점수는 아예 묻지 않았고, 출신 대학도 기사에 쓰지 않는다.”

기사 여는 글의 일부이다. 토익 점수 높게 받는 방법, 남들보다 더 취업준비 잘 하는 법을 전달하는 다른 기사들과는 다르게 신선하다. 본 기사는 진짜 꿈을 쫓는 대학생들을 응원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듯하다.

 

SOSO: [조선일보]전문대학, 4년제 아니라고 차별해서야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3/2014081304127.html

기사는 대학생 대상 프로그램에 지원했지만 전문대학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사례를 전한다. 왜 지원자격이 4년제 대학이어야 하는지, 우리 사회에서 전문대학의 역할과 위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또한 현 정부가 마이스터고, 폴리텍 대학 위주 지원에 정책의 무게를 싣고 있음을 지적한다. 본 기사가 지적하는 바는 공감할 수 있지만 기사에는 ‘왜’라는 부가 설명이 부족하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는 정원을 감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문대학의 경쟁률이 100대 1을 넘는 학과도 정원을 감축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였다.”

“전문대학은 4년제로 학생을 모집하지 못하고 3년제로 모집하였다가 입학 정원의 20%만 학사 학위 전공 심화 과정으로 선발하여 교육을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위한 제한인가?”

감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였는지, 왜 그런 제한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문장을 두고 앞 또는 뒤에 따라오지 않는다. 필자가 전문대학 교수로 전임하고 있기 때문에 더 자세한 생각을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리고 수업연한 자율화에 대해 굳이 ‘차별’을 학사 학위의 취득 여부로 결정하겠다는 말은 불편하다. 앞서 말한 4년제와의 차별을 원치 않는 필자의 생각과 거리가 멀다. 필자의 감정이 들어가 글의 논조가 다소 흐려진 듯하다.

BAD: [한국경제]청년창업으로 ‘천송이노믹스’ 이어가자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80803581
기사는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젊은이들만을 탓하는 것이 아닌 정부에서도 그들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최근 정부가 창업을 활성화하기위해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것과 공공정보를 개장하는 정책을 알려주며, 청년들의 창업과정에 있을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변화된 정부 정책은 청년들의 창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니 도전해서 세계를 개척하라 한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CEO가 직접 작성한 칼럼이기에 우리들이 읽기엔 다소 허무하다. 청년창업이 저조한 것에 대해 정부는 나름대로의 정책들을 내왔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정부 대변인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앞서 예시로 시진핑, 서울버스 앱을 만든 유주완이 등장했지만, 우리나라의 모든 청년들이 그들이 될 순 없다. 또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그 자리에 있건 그건 우리들이 알 바가 아니다. 이 예시로 하여금 필자가 청년들에게 주려는 ‘용기’와 ‘희망’은 터무니없어 보인다. 또 ‘천송이 노믹스’란 용어를 인용해, 창조경제의 사례를 든 것 역시 글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