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서 의식주는 가장 중요하다. 모두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이다.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이 요소는 문화사회 전반으로 많은 진화를 거듭했고 ‘필수’ 이상이 되었다. ‘집’은 자본의 표본이 되어 ‘건축경기’, ‘부동산 투기’, ‘부동산 버블’ 등 경제적 용어와의 관계가 더 익숙하다. 이번 연재를 통해 ‘건축과 사람’이라는 주제로 잊혀져가는 건축물의 향수와 추억을 살펴보고 건축과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서울지하철 노선 2, 5호선에 있는 충정로역에는 일제강점기부터 2014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건물이 있다. 충정로역에서 하차해 9번 출구로 나오면 스타벅스 건물 앞으로 초록색 페인트가 덕지덕지 뜯겨 나간 건물이 바로 그 건물이다. 70년도 더 된 이 건물은 현재 아파트로 쓰이고 있다. 충정아파트라 불리는 이 아파트는 대한민국 최초 아파트라는 명성과는 다르게 매우 허름한 모습이다. 주변 신축건물들에 둘러싸여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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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아파트는 일제강점기 드라마를 연상하게 할 만큼 오래돼 보였지만 1층 상가에는 편의점, 옷가게, 부동산 등이 입주해 있어 그 일대에서 나름의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충정아파트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는데 당시 처음 이 건물을 건축한 건축주 도요타 다네오의 이름을 따 도요타 아파트라고 불렸다. 최초의 중앙난방 시설을 갖추어 당시 주택난이 심했던 서울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충정아파트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아파트 1층에 입주해 있는 부동산을 찾았다. 운이 좋게도 부동산 주인아저씨는 충정로에서만 40여 년을 사셨던 충정로 주민이셨다. 아저씨를 통해 들은 충정아파트는 놀라울 정도로 격변의 시기를 이겨낸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충정아파트가 일제강점기 때 지어져서 한국전쟁 때 UN군의 호텔로 쓰였어요. 여기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호텔 프런트 같은 걸 볼 수도 있어요. 광복 후에 아들 6명을 한국전쟁에서 잃은 분인 김병조씨에게 공로로 하사됐었는데 그게 거짓으로 밝혀져서 은행에 넘어갔어요. 그리고 아파트로 다시 용도가 변경돼서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죠” 이와 같은 주인아저씨의 말은 조한 홍익대 교수의 책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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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충정아파트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등록문화재란 국보, 보물, 중요문화재, 사적, 명승 등이 아닌 문화재 중 건설, 제작, 형성된 후 50년 이상이 지난 것 중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을 두고 이야기한다. 제1호 등록문화재로는 한국전력 사옥 건물과 제11호 지금의 서울시의회로 사용되는 옛 국회의사당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충정아파트는 아직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다. “원형이 손실 돼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어요. 아파트 앞 인도까지 아파트였는데 도로공사를 하며 앞부분이 잘려나갔어요. 한 건물이 잘려나간 거죠. 아마 그래서 보존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것 같아요”라고 충정아파트 1층 부동산 주인아저씨는 문화재 지정이 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말한 건축가 조한 교수의 책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의 손으로 건축됐기 때문에 등록문화재 지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는 또 다른 이유를 지목하기도 한다.


충정 아파트는 신기하게도 내부에 출입구가 3개나 된다. 예전에 호텔로 사용되던 때 만들어진 출구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아파트 중앙은 1층부터 5층까지 뻥 뚫려 있어 일반적인 현대 아파트의 복도식, 중앙통로 식과는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원래 충정아파트에는 5층이 없었다. 아파트가 호텔이었던 시절 5층이 새로 증축돼 거래되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5층은 재개발문제에 부딪히며 아파트 지분에 대한 갈등이 생기는 원인이 됐다.


 


충정아파트 내부 ⓒ고함20


 


아파트 내부를 돌아보면 층수 간 중간 복도에 과거 재개발 갈등의 흔적을 살펴 볼 수 있다. 현재 재개발 사업은 중단된 상태지만 재개발로 인해 이웃들 간 갈등은 심각했다고 한다. 이웃들 사이의 정보다 돈이 중요한 시대가 됐음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충정아파트 부동산 주인분은 “현재는 5층 건물인데 해방 당시에는 4층이었어요. 그 당시에 무허가로 5층을 증축해서 4층까지는 모습이 같은데 5층은 조금 달라요”라고 말씀하셨다.


 


재개발문제로 인한 갈등을 보여주는 대자보 ⓒ고함20


 


현재 아파트에는 40세대 정도가 살고 있다. 이들 중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소유주도 있지만, 소유주를 통해 월세, 전세로 입주해 있는 가구들도 있다. 예전만 해도 이웃들이 음식도 나누고 서로 도우며 살았지만, 지금은 그러한 이웃들 사이의 정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충정아파트 내부 ⓒ고함20


 


현재 아파트는 초록색 페인트가 너덜너덜해져 있는 상태인데 왜 초록색인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충정아파트 옆에 해동건설에서 사옥을 짓는다고 공사를 하던 중 돌 무더기 파편이 튀어나왔는데 그걸 핑계로 주민들이 항의를 통해 페인트칠과 건물 수리비 명목으로 합의금을 받아냈어요. 해동건설에 때가 상대적으로 덜 타는 초록색으로 색을 칠한 거죠”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하셨다.


앞으로 대한민국 최초 아파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재개발의 필요성을 말하고, 누군가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생각해 보존하자고 말한다. 서울시에서는 등록문화재 별개로 ‘미래유산프로젝트’에 충정아파트를 선정했다. ‘미래유산프로젝트’란  주변에서 문화적 보전가치를 발견하고, 문화유산 보전을 통해 미래세대까지 문화유산을 전달하여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서울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하는 취지의 서울시 문화프로젝트다. 아파트에 사는 입주자들도 대한민국 70여 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아파트를 추억하는 이들에게도 상처 없는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