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을 향한 쓴소리, 언론유감! 시즌3로 새롭게 돌아왔습니다. 수많은 언론에서 날마다 다뤄지는 20대, 청년, 대학생 관련 기사 중 20대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날카롭게 비평하는 고함20의 전통 연재! 언론유감 시즌3에서는 한 주간의 기사들 중 ‘좋음(Good)’ ‘그럭저럭(SoSo)’ ‘나쁨(Bad)’으로 각각 3개의 기사를 제시하는 형식을 재도입함으로써, 20대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인식은 무엇일지 독자와 함께 한 번 더 생각해고자 합니다.


GOOD: [민중의 소리] 진정한 병맛 드라마에 이 시대 청춘 자화상을 쓴 ‘잉여공주’
http://www.vop.co.kr/A00000787965.html
종종 TV프로그램에서는 사회적인 이슈를 개그소재로 삼아 풍자해왔다. 이번엔 드라마다. 청춘 자화상을 드러낸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를 리뷰한 기사이다. 단순한 드라마 홍보성 기사라기에 우리 주변 청춘들의 모습을 드라마 속 캐릭터를 통해 절묘하게 잘 해석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반 드라마의 틀을 깨트린 여러 가지 코믹, 로맨스 요소들에 대한 살벌한 분석이 재밌기까지 하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저런 인물 한명은 있겠거니 싶다. 언제나 같은 레퍼토리로 ‘청춘의 자화상’, ‘20대들의 단면’을 떠드는 지루한 기사들과 달리 가볍게 다가올 수 있는 리뷰기사로 쓸쓸한 우리들의 단면을 꼬집어 내고 있다.

SOSO: [조선일보] 신용 7등급 대학생도 2400만원 대출.. 빚이 빚을 부른다
http://inside.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30/2014083000716.html

 

ⓒ조선일보

요즘 새로운 ‘푸어’가 유행하고 있다. 대학교 등록금, 생활비, 스펙, 취업준비 등으로 우리 20대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다수의 20대는 부모님의 도움뿐만 아니라 알바, 대출로 필요한 돈을 보탠다. 그로 인해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 취업을 해도 20대들은 대출금 갚기 바쁘다. 취업을 위해 썼던 돈으로 인해 취업 후에도 빈곤이 유지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들을 ‘스튜던트 푸어’라고 말한다. 본 기사는 조선일보가 ‘스튜던트 푸어’에 해당되는 실제 대학생들의 사례를 들어 그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쓴 기획기사 중 하나이다.

제목 그대로 기사는 신용등급이 낮아도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의 심각성을 이야기한다. 저금리 대출보다 고금리 대출을 받은 대학생들의 경우가 훨씬 많았다. 실제로 고금리 대출을 받아 갚고 있는 대학생 유씨의 사례를 들어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4-5개의 서류만 있으면 쉽게 돈을 빌려주는 대출업체를 ‘스튜던트 푸어’가 증가하는 원인으로 짚는다.

본 기사는 단지 “20대들이 대학 등록금, 생활비로 대출을 받는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학생 유씨의 인터뷰를 통해, 빚더미에 나앉는 20대들의 현실과 빚을 부추기는 대출업체 그리고 쉽게 돈을 빌려준다고 말하는 광고까지 먹이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고 유혹에 빠질지 모를 20대에게 경고의 메시지도 남김으로써 경각심을 준다.    
     

BAD: [한국일보] 대학가 낙서를 보니… 청춘이 웃프다
http://www.hankookilbo.com/v/bb4e50558e24438486ea02909a3061b5
기사는 대학가 주변에 적힌 연애, 알바, 학점, 취업, 스펙, 군대 등 우리 청춘들이 직접 쓴 낙서들을 모았다. 대체로 오늘 언론유감에 다룬 기사들의 소재가 독특하다. 본 기사는 GOOD으로 선정된 기사의 드라마처럼 유심히 생각하지 않는다면, 단순 로맨스 코믹 드라마 또는 병맛 드라마라고 여기며 무심히 스쳐갈 수도 있었던 것처럼 내용 자체로 너무 당연한 듯 넘어갈 낙서에 주목한다. 낙서는 누군가를 의식해 적은 글이 아닌 솔직한 우리의 심경이 담겨있다. 게다가 스크린에 비친 사람의 형성과 함께 낙서들을 모아 시각적으로 눈에 뛰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이야기는 없고 낙서만을 보여주고 있다.

“바쁘고 피곤한 청춘은 오늘도 탈출을 꿈꾼다.”
낙서를 통해 우리들의 고민과 공감을 끌어 올리려는 노력은 좋았지만, 탈출을 꿈꾸는 것으로 끝나버린 기사다. 심지어 그 무기력함을 부추기는 느낌마저 든다. 기사는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청춘을 웃프게만 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