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스포주의)

지금 이곳에는 여행에 대한 환상이 넘쳐난다. 일탈만 있다면 내가 자아를 찾고, 내 일상이 바뀔 수 있을 것 같은 환상. ‘인도 여행’이 그런 부류의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주자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전처럼 내 것 같지 않은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는 여행으론 우리의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기엔 역부족이다.

 

청춘영화의 어느 부류는 무전 여행처럼 방구석을 박차고 나서야지 비로소 시작되는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를 집어넣어 낭만을 노래한다. 하지만 여름에 개봉한 두 영화 <족구왕>과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는 다르다. 두 영화 속 청춘들은 그들의 현실 속에서 발을 붙이고 살면서, 여행의 돌발 상황 따위 없어도 일상을 스스로 변화시키고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안다.


 

 

<족구왕>, 팔딱거리며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족구공 하나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족구왕>은 캠퍼스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주인공인 복학생 만섭이 전역하고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족구와 연애’지만 세상은 그에게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라”고 이야기한다. 만섭에게 계속 전화를 거는 여자는 다름이 아니라 ‘학자금 대출금 이자를 빨리 상환하라는’ 은행 여직원이다. “족구장을 건립해주세요”라는 만섭의 요구에 학교 측은 ‘취업률이 떨어진다.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라는 논리로 반박한다. 영화는 만섭에게 청년 실업, 등록금 문제, 대학의 취업학원화 등 청년세대의 문제들을 배치해 놓으면서 리얼리티를 살려낸다.

 

그러나 영화가 만섭에게 설정해놓는 것은 먹먹한 현실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만섭에게 이 막막한 현실에 ‘낭만’을 주입하는 무기를 하나 쥐여주는 데, 그건 바로 ‘족구공’이다. 만섭은 “족구하는 소리”하며 앞서 나열한 현실에 역주행한다. 공무원 시험을 권유하는 세상의 압박에 “공무원 시험 준비엔 관심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족구위해 ‘족구장 건립 서명운동’을 한다. 캠퍼스 퀸 ‘안나’를 차지하기 위해, 이제 필수가 되어버린 ‘썸’ 단계도 가뿐히 무시하고 안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취업, 학자금 등을 생각하면 절망적인 대학생활을 향해 주는 “낭만이 흥건한” 만섭의 서브는 캠퍼스를 변화시킨다. 학생들은 자기관리라는 명분으로 유예시켜놨던 족구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다. 만섭과 그의 친구 창호, 미영, 캠퍼스 퀸 안나는 물론 만섭과 족구로 결투를 펼쳤던 안나의 썸남 강민까지도 “그냥 재미”있을 뿐인 족구경기를 진행하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깨닫는다. 세상 눈치를 보면서 주눅이 들거나 숨겨뒀던 자신의 일부을 인정하고 ‘자존감’을 잃지 않고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이 일련의 성장과정을 자신의 공간, 자신의 일상 속에서 겪어낸다.




살아있는 젊음의 오후,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싸우자. 이곳은 우리들의 세계다.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하니깐”

<족구왕>이 팍팍한 현실을 담아냈긴 했어도 “그냥 재미있잖아요”라는 간단한 낭만의 메시지를 가지고 유쾌하게 질주하는 동화라면,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이하 ‘키리시마’)>는 좀 더 무겁고 복잡하다. <키리시마>는 제목 그대로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라는 소식이 학교 전해지면서 생기는 사건들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감독은 학교에 강자와 약자가 뚜렷한 현실을 집약시켜 학교와 학생들을 그려낸다.

키리시마는 배구부 에이스로 운동도 연애도 잘하는 그야말로 ‘사기캐’다. 고등학교에서 최상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키리시마가 배구부도 그만두고, 학교도 결석하면서 학교 사회엔 균열이 생긴다. 감독은 같은 시간대를 되돌려가며 이 균열이 발생되고 서서히 퍼지는 과정을 각각의 주인공의 시점에서 재구성한다. 그래서 장편이지만 단편같다는 느낌을 준다. 잔잔한 물웅덩이에 탁하고 돌멩이를 던져버린 채로 끝나는 단편처럼 <키리시마>가 주는 여운은 꽤나 오래간다.

감독이 시점자로 삼는 인물 중 학교사회의 하층민인 ‘찌질이’ 료야는 영화 제일 마지막에 배치되어 키리시마 사건이 만들어낸 조그만 균열들이 붕괴될 수 있도록 한 방을 날리는 인물이다. 좀비영화 마니아인 영화부장 료야는 선생님이 원하는 청춘 리얼리티가 아니라 그가 정말 찍고 싶은 청춘 좀비물 <학생회 오브 더 데드>를 찍는다. 좀비영화의 거장들을 떠올리며 영화를 촬영하지만, 영화반 오타쿠 친구들과 찍는 영화는 허술해도 한참 허술한 영화일 뿐이다. 게다가 찌질이 신세라 촬영 중인지도 모르고 공을 날려대는 야구부 애들에게 비켜달라 말을 할 수도 없다.

료야의 영화 촬영은 선생님의 반대로 중단 위기에 맞지만, 자신이 찍고 싶은 것을 찍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 줄 깨달은 영화부 학생들은 촬영을 계속한다. 동시에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터득한다. 그들은 영화촬영장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잘 나가는 학생들에게 “사과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위)의 만섭, (아래)의 료야

 


명분 없음에 대한 의미 부여

두 가지 영화는 충분히 현실적이지만 영화 속 청춘들이 꿈에 다다르는 과정은 결국 SF 요소를 통해 완성된다. 만섭은 피구왕 통키처럼 불꽃 CG슛을 통해 족구대회 우승을 차지하고, 료야의 영화는 그의 환상을 통해서야 구색을 갖춘 좀비영화가 된다. 그럼에도 이 두 영화는 스크린 속에서만 쓸모 있는 청춘영화가 아니다. 이 두 청춘영화는 주인공의 꿈을 장래희망으로 만들어버리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만섭은 족구선수를 직업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료야는 영화감독은 무리라고 한다.

내가 나의 일상을 끌어나간다는 느낌을 갖고서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키리시마>에서 “싸우자 이곳은 우리들의 세계다”라는 대사를 자꾸 잊어버려, 계속 읊어주는 소리를 계속 반복해서 들려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족구왕>과 <키리시마>는 자신의 삶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건, 여타 자기계발서에서 얘기하는 어마어마한 미래계획이 아니라 그저 즐겁거나 재미있음만이라는 명분 없는 행위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